2월 1일 화요일,
언제인가부터 일월은 공짜 같은 느낌이 들었다. 12월의 시끌벅적한 축제 기운이 가라앉고, 새 해 시작을 알리는 1이지만, 아직 1 같지 않은 애매한 그 상태 때문이다. 이는 음력으로 1월 1일이 지나야 진짜 새해라 여기는 한국 풍토 영향이 크다. 더불어 새해 시작을 한 달이나 미루고 싶은 아주 사적인 마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해 계획을 세우고, 생전 잘하지 않는 일을 계획하고, 시도하면서 새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는 세상에 가득하다. 근데 난 적어도 일월에는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작정했다. 일월에는 의욕만 너무 앞서 지켜지지 못할 계획만 무성했으니.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무어라도 가졌으면 내어 놓아야 하는 게 세상 이치인데 억지스럽지만 일월은 공짜라 정해둔다. 그래야만 시작하는 마음에 힘을 좀 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시작은 거침없이 하는 난 끝맺음이 약한 편이다. 무언가 쉽사리 시작하며 다짐을 내어놓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 만들어 버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이제 지쳤다. 굳이 스스로 지치게 하는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것은 시작을 잘하는 게 문제라기보다 머릿속에 그려 둔 이상적인 결과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코 시작과 끝은 만날 수가 없다.
머릿속에 그리는 이상이 낮을수록 실행으로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일월을 대하는 마음에 기대를 한없이 낮췄다. 한국에 있을 땐 1월 1일은 새벽같이 해맞이 산이라도 올라야 한 해가 잘 풀릴 것만 같았고, 거창한 계획이라도 손에 넣어 놔야 일이 진행될 것만 같았다. 첫 해 첫 하루는 절대 그럴 수 없다. 중요한 하루를 이불속에서 늦은 아침까지 보내버렸다면, 그날 할 수 있는 다른 일들마저 접어 버린다. '에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놀자!" 뻔한 인간의 뻔한 스토리.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임을 받아들인다. 어디서 그런 기대가 생겼는지 몰라도 '뻔하지 않을 수 있어, 난 할 수 있다고!'라는 자신만의 프레임을 지워 내는데 시간이 꽤 들였다. 그 생각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 올려놓아 자신을 옳아 매고 있다는 걸 천천히 알아간 이후로는 말이다.
"일월은 공짜야."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우리에겐 진짜 새해가 있으니, 그때까지는 마음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러면서 주야장천 마음을 놓아 버린다, 어차피 공짜니까. 요즘 사람들은 자기 발전,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에 집중하고 몰두하는데 오랜 시간을 쓴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자면 나 또한 지금 여기 머물면 안 되겠구나 싶은 조바심에 온 정신과 몸이 바쁘다. 나라는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또 무언가 시작을 하고, 배우고, 세워 놓은 계획에 좀 더 다가가려 시간을 쓸 것이라는 걸 알기에 일월만은 공짜라 여겨도 괜찮다 해 본다.
빈둥빈둥 누워 네 권의 책을 읽었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뒤적거리며 사람 사는 이야기에 심취도 해 보고, 인스타를 마구 수영하며 한껏 꾸며진 사진을 구경했다. 마음껏 먹었고, 마음껏 무어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공짜는 원래 그런 건가 보다. 그냥 막 써도 아깝지 않은 것. 그런데 세상에는 공짜 따위는 없다. 마음껏 먹어 찐 군살을 정리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 테고, 제대로 쓰지 않은 시간에 대한 결과를 마주해야 할 테다. 하지만 그러면 그러라지. 한 달이라도 공짜 좀 마음대로 써보자! 그래야 또 숨 쉬고 살지. 여백이라는 게 그래서 필요한가 보다. 공짜 일월을 그렇게 다 써버렸다. 근데 일월은 다시 돌아오니 너무 아쉬워는 말자. 그리고 어차피 날짜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니, 쉬고 싶으면 또 공짜라고 정해놓고 쉬면 되지 뭐! 다 마음먹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