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금요일,
새해가 도착하기 전 꼭 하고 싶던 일 하나를 해치웠다. 만두 빚기, 한 해를 보내며 묵은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혼자 빚는 만두가 얼마만인지 기억에는 없지만 반복적인 동작으로 손을 쓰다 보니 만두가 하나씩 빚어질 때마다 머릿속 엉킨 생각은 순서를 잡아가고, 빈 틈 없던 머릿속에 공간이 하나 둘 들어서는 듯 가벼워진다. 한데,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는 질문 하나가 영 거슬린다. 이 녀석은 중요한 순간마다 나타나 생각의 문을 두드리곤 한다. 처음에는 스쳐가는 바람처럼 부드럽게 다가왔는데 내가 찾아낸 대답이 영 시원찮다고 여겨졌는지 다시 날 찾아올 때면 문이 부서질 듯 두드리며 답을 찾아내라 소란을 피운다. 반갑지 않은 이 손님의 무례한 인사를 이제는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아 그 소리가 거세어지든 말든, 문이 부서지든 말든 내버려 둔 채 나만의 속도로 답을 찾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올 한 해를 보냈다.
그 질문은 다름 아닌 "직업인으로서 난 무엇을 하면 좋을까?"이다. 중요한 순간마다 괴롭히는 이 질문을 처음 만난 건 대학 졸업 즈음이었다. 그때는 어디라도 취직이 되어 돈을 벌고 싶다는 조바심에 무엇을 원하는지 진중하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인지도와 연봉만 따져 입사하며 답을 내어 버렸다. 그 결과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불편한 회사 생활을 견디다 못한 퇴사였다. 그리고는 "세상 어딘가에는 맞는 옷이 분명히 있을 거야!"라는 굳은 믿음과 "매일을 반복하며 살아야 하는 그 지난한 고리는 끊어 낼 수 있는 것이야!"라는 호기로운 자신감으로 미래를 그려갔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하며, 경험을 쌓아갔지만 석연찮은 구석은 계속 남았고, 지금을 살아간다기보다 이 보다 더 좋은 곳, 만족할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아 신기루 쫓듯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그렇게 살아왔다.
원한다면 일자리는 무어라도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제는 좀 더 능동적으로 직업인으로서 스스로의 위치를 그려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좀 여유롭게 상황을 바라보며 지내보자 했다. 그런데 의외로 꽤 많은 시간을 "반복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생각을 하며 보냈다. 매일 아침 커튼을 올리며 하루를 시작할 때 부쩍 그 반복이 무겁고 지겹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척 달라붙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버지의 삶을 돌이키곤 한다. 매일 아침 7시 30분 경이면 여지없이 구두를 신고 "다녀올게." 하고 나가셨다가는 저녁 7시가 좀 넘으면 "아빠 왔다." 하며 아침보다 조금은 지친 기색으로 구두를 벗고 집으로 들어오셨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여느 날과 같이 출근하시는데, "아... 참 지루하시겠다. 매일 똑같이 회사에 가야 하니..."라고 읇조렸다. 아마 그때 즈음 나도 매일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꽤나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나 보다.
매일 같이 학교에서 시간을 써야만 하는 학창 시절에는 '어른이 되면 이 반복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거야. 아빠와는 다른 어른이 돼야지.' 하는 기대와 기다림으로 12년 지각도 없는 개근을 마쳤고, 기대와 달리 별반 다르지 않은 반복이 이어지던 대학생 시절에는 허락된 일탈을 벗 삼으며 겨우 반복의 늪을 건넜다. 직장인이 되어 매일 같은 시간에 계단을 오르내리며, '내가 바라던 어른의 삶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하며, 지긋지긋한 반복의 늪을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으로 런던을 택했다. 공간이 바뀌고, 언어가 달라지니 서울에서 하던 일마저도 새로웠다. 지나고 익숙해지면 그것도 끊어낼 수 없는 반복의 한 부분임을 모른 채 젊은 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이제야 시끄러운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듯하다. "직업인으로서 난 무엇을 하면 좋을까?"
피할 수 없다는 걸 깊이 받아들인다. 살아있는 한 반복의 굴레를 벗어날 방법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그 굴레를 벗어나려 저항하지 않는다. 다른 것으로 관심을 돌려 그 굴레를 외면하지도 않으려 한다. 권태로운 삶도 하얗게 불태우듯 살아가겠다는 헤세의 다짐처럼 무엇을 선택하든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반복을 불태우자. 반복의 시간 속 무기력한 사람으로 남지 않기 위한 고민과 고통을 마음껏 느끼며 강해지자. 내일을 바라본다. 거기 그 끝에 오늘이 있다. 지금의 반복을 불태워야 원하는 내일을 만난다는 비밀을 이제야 안다. 반복의 아름다움도 느낀다. 잔뜩 화가 난 손님을 다시 마주할 준비도 이제야 된 듯하다. 긴 시간 글을 쓸 수 없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오늘도 산책을 다녀왔고, 식사 준비를 하며 내일의 가장자리 그 끝에 살포시 앉은 오늘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