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작성이 재밌을 줄이야

글쓰기가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죠

by 김라희

돌이켜 보면 꽤 다양한 직장에서 일했다. 거기에 학교 다니면서 한 아르바이트까지 하면 거쳐온 직군이 참으로 다양하다. 현재는 하늘을 날면서 돈을 벌고 있지만, 종국에는 내 이름을 걸고 경제 활동하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글도 쓰고, 다양한 분야에 책도 읽고, 트렌드도 읽으려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그중 요즘 가장 열을 올리고 있는 분야는 글쓰기다. 글쓰기는 개인적인 삶을 지탱하는 지지자도 되지만 직업적인 부분에서도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개인적 경험에 비춰 봤을 때 경제 활동을 하면서 글쓰기가 가장 빛을 반짝였던 순간은 무엇보다 업무 이메일 작성할 때였다고 할 수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제일 친한 친구가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친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서로 많은 부분이 통했던 사이라 우리는 꽤나 오랜 시간 항공 봉투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그리움을 달래곤 했다. 그 시절 편지를 주고받으며 글 쓰는 재미를 깊이 알아갔다. 캐나다로 이민 간 친구는 말솜씨, 글재주가 탁월했다. 그런 친구가 보내는 편지에는 감성적이고 격정적인 십 대 이민자의 희로애락이 온통 담겨 있었다. 그 감성을 받아 나 또한 한국에서 보내는 사춘기 소녀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끓어오르는 마음으로 쓰다 보면, 편지지 열 장은 순식간에 채울 수 있었다.


그 후로 글쓰기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두고 지냈다. 그러다 대학 졸업하고 입사하게 된 첫 직장에서 글쓰기의 또 다른 재미를 알아갔다. 계획에도 없던 법률 사무소가 첫 직장이었다. 교수님 추천으로 면접 보러 가던 날이 아직도 기억에 쩅하다. 한 겨울 눈 내리던 그 아침에 정장에 구두를 신고 나가는 딸 넘어질까 싶어 택시 타고 가라던 엄마의 배려, 회사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내렸을 때 K 법률 사무소가 뿜어내던 엄숙하고 압도적인 분위기, 가진 건 젊음밖에 없던 대학 졸업 예정자의 쫄보 자신감.


그렇게 1,2차 그리고 임원 면접까지 끝내고 입사하게 된 부서에서 앉게 된 자리는 미모의 과장님 옆이었다. 출근해서 얼추 커피 타임이 끝나갈 즈음, 어김없이 이면지 메모지에 음성 번호와 비번을 적어 주시며 음성을 들어보라고 하신다. 온갖 억양의 외국인들이 밤 새 컴플레인트 혹은 요청사항 등을 남겨 놓았다. 악센트 때문인지, 어려운 회사 이름 때문인지 들어야 하는 정보가 잘 들리지 않아 여러 번 반복해 들으며 땀 꽤나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메시지를 듣고 나면, 관련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이 회사에서 이메일 작성은 가장 조심스럽고 중요한 핵심 업무였다. 부서 특성상 클라이언트와 프로 사이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듣고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정확히 이해해야 했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이메일은 간단명료한 포맷으로 최대한 이해가 빠르게 작성해야 했다. 워낙에 바쁘게 돌아가는 회사다 보니 군더더기 쓸데없는 문장으로 늘어지는 이메일은 과장님의 필터에 걸리기 일쑤였다.


내용은 물론 어투, 단어 그리고 문체 등 신경 쓸게 한 둘이 아니었다.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이메일을 작성하고 과장님께 검토받는 과정을 지나야 했다. 그렇게 과장님 손에서 돌아온 원본 이메일엔 빨간펜이 지나간 자리가 가득했다. 그 시뻘건 A4 용지를 받아 들고 자주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아니 왜... 영어도 아닌 국문 이메일인데 이렇게 빨간색이 많을 일이나며... 그렇게 몇 주 트레이닝을 받다 보니 어느 순간 검토 없이 이메일을 그냥 보내도 되겠다는 피드백이 왔다. 야홋!




그렇게 누군가의 요청사항 그리고 전달할 내용을 중간에서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적어 내려가다 보니 탄력이 붙었는지 내용이 복잡할수록 쓰는 재미는 늘어갔고, 그로 인한 성취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정신 사납게 중구난방인 요청 사항을 잘 들어 빠짐없이 메모하고, 그 내용을 논리와 정황에 맞게 간추려 전달하는 내용의 메일을 적다 보면, 적절한 단어를 찾아야 하고, 문장의 톤도 조절해야 한다. 그렇게 순간 집중하며 이메일 쓰던 시간이 돌이켜보면 직장 생활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건 아마도 글쓰기를 알게 모르게 즐기던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 아닐까 한다. 복잡한 이메일을 발송한 후 빨간펜 과장님에게 이메일 내용과 문장에 대한 칭찬이라도 받는 날이면, 그 재미와 성취감은 몇 배로 상승하곤 했다. 그때부터 싹이 트고 있었던 것일까? 결국 이렇게 글 쓰는 일에 빠져 매일을 쓰며 정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말이다.




첫 직장에서 제대로 배운 이메일 에티켓 덕분에 직장을 옮겨가더라도 업무 이메일 쓰는 일 더불어 업무 관련 문서 작성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승무원이 되고 난 후 이메일을 쓰는 횟수는 현저하게 줄었고, 그 내용도 비교적 간단명료한 내용이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이곳에서 쓰는 이메일의 톤 앤 매너였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틀이 몸에 배어 있던 터라 이곳에서 이메일 쓸 때도 비슷한 느낌으로작성하곤 했다. 그러다 동료나 선배들이 써 놓은 메일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느낀 점은 문장 내 친절함과 따뜻함이었다. 오피스 업무를 할 때 쓰던 이메일도 친절한 매너로 글을 작성하는 건 기본이었지만, 그것과는 좀 다른 분위기였다. 읽는 이의 마음을 배려한 표현 속에서 객실 승무원의 친절한 미소가 보이는 듯했다. 이를 통해, 회사 성향과 분위기에 따른 톤 앤 매너를 적용하는 일은 중요하구나 하고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직장 생활을 돌이켜보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둔 글쓰기의 쓰임새가 유용했다. 쓰는 일에 거부감이 없으니, 꽤나 복잡한 사안들을 써 내려가는 일에도 부담이 없었고 나중에는 즐길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무엇이든 처음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잘 배운 이메일 매너 덕분에 추후 직장 생활이 한결 편해졌고, 따뜻한 표현 한 문장으로 읽는 이의 공감을 얻으며 시작하는 이메일이 주는 효과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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