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승무원의 승객 관찰기
계획대로라면, 지금 즈음 비행이 고된 일이라 불만을 잔뜩 내어 놓으며, 연 초에 계획한 휴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무렵이다. 그 징글징글 코로나로 지난 4월부터 비행 일정이 전혀 없는 난, 강제 백수 현직 승무원이다. 요즘은 그 고된 비행을 너무도 그리며 매일 글을 쓰고 있고, 앞으로 비행을 다시 할 수 있을지 의문의 물음표만 당당당 찍어내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비행을 그리는 애달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진정시켜 보고자 승객들이 쏟아내는 컴플레인트, 불만의 순간들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코로나 전에는 매주 총 400명 이상의 사람과 공간을 나눠 쓰며, 주 24시간 이상 긴 시간을 거침없이 날아다녔다. 공간을 나눈 사람의 숫자만큼 가지각색의 승객들을 만나다 보니 어이없고, 황당하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사건까지 참 많은 일들이 온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어있다. 그중 승객들의 불만은 그 범위가 그야말로 다채롭기가 이루 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그 다채로운 사연의 대부분은 극도로 사소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 다채롭고 사소한 불만을 다루는 방법을 익히고 행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 사람 마음이라는 걸 조금씩 알고 배우게 된다.
음료 주문을 받고 다른 일로 바빠 깜박 잊어버렸다. 한참 지나 승객이 조금 불편한 듯한 말투와 표정으로
"왜 주문한 음료가 아직까지 오지 않는 거죠? 기다린 지가 꽤 된 것 같은데."
"아, 그런가요? 그럼 가져다 드릴게요."
하고 등을 돌려 휙 하고 가버리는 순간, 이 단순한 상황은 (승객의 성향에 따라) 음료만 가져다주면서 끝나게 될 수도 혹은 더 큰 문제로 발전할 수도 있게 된다. 이럴 때 확실히 불만의 불씨를 꺼버릴 수 있는 방법은
"아, 오래 기다리셨죠, 제가 다른 일로 깜박 잊었네요. 어머 죄송합니다. 어서 가져다 드릴게요."
라고 말을 하고, 음료와 함께 스낵도 챙겨 온다면 상황 처리 센스는 상급에서 최상급으로 달라진다. 더불어, 음료를 전달하며 재차 기다리면서 생긴 불편한 마음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면, 승객은 자신이 표현한 불만에 멋쩍음을 드러내는 경우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때 승무원은 단순히 음료를 가져다준 것뿐 아니라 자신의 요구가 무시된 듯한 상황에 느꼈을 불편한 승객의 마음을 잘 읽고 표현함으로써 승객의 불만을 잠재운 것이다.
자주 비행하는 등급이 높은 승객들은 회사 입장에선 아주 중요한 고객이다. 비행 전 승무원들은 특정 등급까지 승객 이름과 좌석 번호를 미리 알아두고, 서비스하며 그 승객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아주 가끔 본인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인사도 하지 않았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승객도 왕왕 있다.
"아니 비행 시작한 지가 언제인데 사무장이 아직까지 인사도 하러 오지 않는 거죠?
비행 이렇게 많이 하는 동안 이런 대우는 처음이네요! 사무장 이름이 뭐죠?"
그 구역을 담당하는 승무원에게 이런 식의 어투와 언짢은 표정으로 말을 시작할 때, 그 첫 번째 대처가 어떠했느냐에 따라 사무장이 흘려야 할 진땀의 양은 무조건 달라진다. 만약 그 승무원이
"네, 그럼 사무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만요."
이런 기계적인 대답만 남기고 가버린다면, 사무장은 내려와 본인이 아직까지 인사를 하지 않았던 부분과 승무원의 태도에 대한 불만을 두 배, 세 배로 듣게 될 수도 있다. 여기서도 승무원이 승객의 마음을 읽고, 인사를 나누지 않은 적적함을 알아주고 표현했더라면, 그 불만은 금세 고마움과 친근함으로 변하는 지점을 만나게 될 수도 있었다.
어딘가가 불편한 듯한 승객의 미세한 표정이나 표현을 봤다면, 반드시 그 불편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잘 읽고 표현해 주어야 한다. 만약, 그 불편의 원인을 모르겠다면, 최소한 "비행 어떠신가요? 더 필요한 것은 없으세요?"라고 먼저 관심의 말은 건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승객들은 극도의 사소한 일로 쉽게 불만과 불편함을 느끼고 표현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내 승무원은 이런 사소함을 읽고, 표현하며 해결할 수 있는 섬세함이 꼭 필요하다.
이 글은 불만을 내어놓는 승객을 탓하려는 의도도, 그런 승객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내어놓는 승무원의 고단한 업무 스트레스를 이야기하려는 의도도 아니다. 다만, 이렇게 사소한 불만을 내어놓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그것을 나눠보고 싶은 것이다.
- 불만의 깊은 속내
사람의 마음은 위 아더 월드여서 표현의 문화적 차이만 있을 뿐 그 깊은 속내는 다 비슷하다는 것을 지난 6년간 승무원 업무를 하며 배우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상대에게 불만을 토로할 정당한 상황만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라도 결국에는 꼭 표현을 하고 만다.
그리고 그 불만의 깊은 속내에는 물질적인 보상을 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감정적 불편함을 좀 알아달라는 고요한 외침이 숨어있다. 나를 왜 챙겨주지 않는지, 다른 승객과 나는 왜 다르게 대접을 받고 있는지, 본인의 요구는 왜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등.
그런 감정적인 마음을 알아 먼저 읽어 표현해 준 후, 불편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을 하다 보면 불만 10개 중 9개는 잘 넘길 수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상황이 잘 진정되고 나면, 불만을 토로한 승객과 그것을 잘 처리한 승무원의 결말은 대부분 웃음과 이해라는 해피엔딩이라는 것이다.
얼었던 감정이 이해와 공감의 마음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 승무원만 해야 하나요?
이렇게 불만을 다루는 기내 사연을 사람들과 나누다 보면,
"아... 참으로 어렵고 까다로운 일을 하고 있구나."
"내 마음도 잘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이 왜 저러는지까지 헤아려야 해?"
"노노노 미안하지만 이건 내 일이 아냐... 난 못해.."
"왜 그렇게 미안하다고 해야 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난 절대 그 일은 못할 것 같아."
"내 자식이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일을 한다면, 너무 속상할 거야."
이런 식의 반응과 함께 대충 대화의 주제를 환기시키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 쉽지 않다. 하지만 어렵다고 넘기기엔 좀 더 중요한 요소 하나가 남아 있다.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승무원이라는 직업적 필요에 의해서만 행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 동료 등 우리가 맺고 있는 무수한 관계를 위해서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섬세한 관심이다.
승무원 일, 이 년 차 때 업무 스트레스를 나도 모르게 가족에게 짜증으로 털어내는 모습을 발견하고 얼굴이 뜨거워진 경험이 있다. 승객을 대하는 표정, 태도와 비교할 때 달라도 너무 달랐다.
'승객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의 마음이 더 중요하잖아. 가깝다고 소홀해도 되는 건 아니잖아'
이런 생각이 들면서 소중한 사람들을 더 잘 챙기고 싶어 졌다. 그래서 그 잘 챙긴다는 말속에 무엇이 들었을까 가만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든 생각이, 불만을 쏟아내는 이유 속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리고는 승무원으로서 기내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일, 승객의 불만을 감지하고 읽고, 표현하며 그들의 마음을 감싸주는 그 일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 관계를 푸는 비밀, 타인의 불만에 기울인 관심
경험에 비춰보면 불만은 "내 마음을 좀 알아줘!"라는 표현의 한 방법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사람을 "잘 챙긴다"라는 말속에 숨어있는 의미는 바로 불만을 잘 읽어내는 일이 아닐까? 상대의 표정을 읽고, 불편한 무언가가 보인다면 왜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 상대를 더 정성스레 바라보고, 그 불편한 마음을 나도 알고 있다 표현을 건네며, 함께 그 불편한 마음을 해결해 보자 방법을 찾아가려는 그 태도, 이것만으로도 관계 속에서 발생한 문제 팔 할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 이게 관계를 열고 푸는 비밀의 열쇠였구나.
불만을 표현하는 마음에 숨은 마음, "나를 알아줘. 네가 그걸 알아주면 좋겠어." 그 마음을 이해하고 비록 해결 방법을 아직은 알지 못한다고 해도 내가 너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표현하는 일 그리고 그 불만에 관심을 기울이는 정성. 이것이 관계를 푸는 열쇠다.
승무원 일을 하면 승객을 대하는 감정적 업무가 제일 힘들지만 동시에 가장 의미로운 순간으로 남기도 한다. 그 업무를 충실히 해낸 후 생각의 영역을 더 확장하다 보면, 그 업무를 수행하며 얻은 경험이 내 주변을 채우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까지 가 닿게 된다.
그렇게 직업적 어려움을 배움으로 읽어내 실천하다 보니 관계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더 깊어지게 되고, 아직도 부족하지만 주변인들과의 관계 형성은 조금씩 부드럽고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직업의 고충을 삶의 지혜로 승화해 보려는 노력의 결과라고 본다. 그리고 이것을 난 성취감과 감사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승무원은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그 안에서 나누고 배울 수 있는 지점은 너무나도 풍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