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이 낯설어

도시를 걷다 보니

by 김라희


이번 주 내내 동료들의 정리해고 소식에 몸살을 마음으로 앓았다. 이번에는 넘겼다 하더라도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 그 고비를 앞에 두고 그저 지금을 감사하며 지내는 수밖에 없다고 마음을 다독인다. 오랜만에 해가 뜬다. 런던을 걸어보려 나섰다. 반짝 햇빛이 들어선 거리에 단풍은 그 빛이 더욱 쨍하고, 가을 파란 하늘은 하얀 구름이 더욱 파랗게 밝혀준다. 오랜만에 런던 동쪽 동네, 쇼디치 근처를 걸었다. 젊음의 생기가 언제나 가득하던 그곳의 요즘 안부가 문득 궁금했다.


지금 즈음이면 베이글 맛있기로 소문난 이 집 앞에는 최소 이십 미터 이상 사람들이 줄지어 있어야 하는데... 그래도 문은 열었다. 온 김에 연어 크림치즈 베이글 하나 먹고 가야지.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문을 했다. 기다림 없이 안부를 주고받으며 건네는 주문이 영 낯설다. 가게 앞 벤치에 앉아 베이글을 먹는다. 언제부턴가 코로나를 크게 개의치 않고 싶다. 마스크와 손세정제 사용은 꼭 하고 있지만, 집 콕과 공원만을 오가던 무수한 날이 조금 아깝게 느껴진다. 가을이라 그런가.


지금을 추억하기 위해 조심히 길로 나섰다. 기차와 오버그라운드를 이용하며, 사람들을 피해 다닌다. 그렇게 베이글과 앉아 바라본 거리에 공허가 느껴진다. 한 집 걸러 하나 문 연 가게에는 들고 나는 사람이 없다. 온통 늘어선 세일 광고판만이 지나는 사람들을 발길을 잡아보려 애쓰고 있다. 맛은 여전하다. 폭신 폭신 따듯한 베이글에 크림치즈와 짭조름한 연어가 끝내주게 어울린다. 베이글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손을 닦고 다시 걷는다. 푸드 트럭에서 내뿜는 햄버거 패티 굽는 냄새, 바비큐 고기를 굽느라 눈 따갑게 올라오는 연기, 두 손 가득 든 음식에 갈 우왕좌왕 발걸음으로 행인을 방해하던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다.


그 길에 모퉁이 작은 가게 앞 알록달록한 귀걸이가 눈길을 잡는다. 태국에서 오신 주인아저씨가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는 5파운드짜리 귀걸이들이 줄 맞춰 걸려있다. 레고 머리, 긴 다리, 츕파츕스, 구름, 각양각색 이모티콘 그야말로 네온 형광으로 아기자기한 귀걸이 구경에 한참을 멈춰 서 본다. 십 대인지 이십 대인지 모를 그 소녀들 틈에서 거리두기 한다며 눈치 보고 있는 모습이 우습다.


스피타필드 마켓 (Spitafield Market)으로 들어선다. 이곳에서도 들어오고 나오는 구역을 나눠두었다. 잠시 헷갈린다. 마켓 안에서 마스크를 써야 할까? 주변을 둘러보니 안 쓴 사람이 더 많다. 그래도 이곳은 좁은 간격으로 사람들이 들고나는 장소이니 마스크는 쓰자. 이제야 생기가 조금 느껴진다. 매주 목요일이면 이곳엔 안틱 마켓이 열린다. 자세히 보니 제법 눈에 익은 상인들이 보인다. "코로나 전에는 저 쪽에 있었는데 자리를 옮겼나 봐요?" "언제부터 나오기 시작하신 거예요?" 반가운 마음에 질문을 내어본다. 상인분들도 마스크 쓴 내 모습에 긴가민가하며 대답을 나눠준다. 진열해 둔 물건은 예전에 비해 훨씬 깔끔하고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다. 이런저런 대화만 나누고 그냥 가는 발걸음이 미안해 가장 싼 국자 하나를 집어 본다.


이제야 느껴진 생기에 안도감이 든다. 조용한 전쟁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죽은 듯한 거리 틈에 사람들이 모여있고, 시끄러운 소음과 요란한 음식 냄새가 공간을 채우고 있다. 예전에 비하면 말도 못 하게 작은 숫자이지만, 이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집 밖을 나와 도시를 걷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도시의 생기를 느끼고 싶어서였다. 기대는 없었다. 맛있는 점심 식사 한 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나온 길이다. 점심도 잘 먹고 커피 한 잔도 따뜻하게 잘 마셨다.


하지만 생기가 다 빠진 런던 거리를 걷는 길이 무척이나 낯설었다. 그것을 기대한 마음이 욕심이었다. 사람은 살아있는 한 생기; 싱싱하고 힘찬 기운, 살아있는 활기를 찾아 마른 목을 축인다고 한다. 도시의 생기는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본다. 허상이었을까? 찬란한 도시의 불빛과 사람들의 움직임 속에서 느꼈던 그 생기는. 텅 빈 런던을 걷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좀 허전하다. 그래도 이런 생각을 남겨준 오늘을 고마워한다. 그리고 공허를 바라보는 눈길이 공허하지 만은 않아 다행이다.


생기란 무엇일까? "적당한 운동과 노동, 음식과 섹스의 절제, 문학예술을 감상하거나 창조하는 것" 등의 중용적 방식의 생기를 말하던 글이 떠오른다.


"생기를 충족시키는 방식에는 '극단적인 방식'과 '중용적인 방식'이 있다... (중략)... 극단적인 방식은 일시적으로 삶에 큰 생기를 부여하지만, 그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사람을 불행과 죽음으로 몰아가곤 한다. 그러나 중용적인 방식은 반대다. 쾌감의 크기는 작지만, 육체와 정신을 풍요롭게 만들고, 삶을 건강하게 유지시켜준다." <인문 내공> 박민영


서울과 런던 그리고 홍콩을 오가며 살고 있는 도시 거주자, 나를 위한 사유라 여겨 메모해 두었다. 코로나가 들춘 도시의 민낯을 바라보며, 허공을 향한 숨 가쁜 발짓으로 삶의 생기를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가만히 바라보고, 흐르는 구름에 눈을 올려본다. 항상 곁을 지켜주는 변함없는 것들을 떠올려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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