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고 그런 하루만 보내다가
비 내리는 런던이 뭐 그리 대수라고 지난 며칠 주야장천 그야말로 회색 하늘만 내어 주는 하늘을 아침마다 그리도 탓했는지... 지금도 지난 몇 일간의 권태로운 시간을 보낸 내 모습을 날씨 탓으로 돌리려는 옴팡진 시도를 하는 중이다. 오늘은 월급날이다. 죽지 않을 만큼의 금액이 통장으로 꽂힌다. 일도 하지 않는데 이렇게 따박따박 통장으로 입금받을 수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몇 달을 위로 중이다.
영국에 록다운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비행은 없지만 월급은 또박 또박 제 날짜에 들어온다. 그게 벌써 다섯 달인가 여섯 달째다. 지금쯤이면 말을 해줄 만도 하련만, 아직도 회사에서는 앞으로 계획은 감감무소식이다. 말로는 다 내려놓았다고 하지만, 이 꼼짝 마 상태의 지진함은 일상 어디라도 조금씩 좀먹는 듯하다.
김지수 기자가 쓴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행복하려면, 끝없이 포기에 성공해야" 장기하 단념의 미학> 최근에 출간 소식을 알리고 있는 장기하, 그의 가사를 좋아한다. 가사 가득 술렁이는 리듬이 재밌다. 전자책을 기다리고 있는 중에 인터뷰 기사를 먼저 읽는다.
지금 일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어서 움직여야 하는 건 아닐까? 너무 늦은 걸까? 코로나인데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려고? 동료들의 행보가 궁금해 괜스레 여기저기 찔러나 보는 모습이 영 별로다. 비행이 멈추고 매일을 놓지 않는 일은 이렇게 뭐라도 쓰는 일뿐인데, 이것은 과연 어디로 날 이끌고 갈까? 아니 난 이걸 어디로 이끌고 가야 하나? 이런 생각에 꼬리를 물다 보니 이른 아침 글 쓰는 시간을 제외하고, 산책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별 다른 방도가 안 보여 그저 권태로운 시간만 똑딱이고 있다.
자신의 빛을 내며 사는 사람들을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다. 적어도 나에겐. 주목받기를 죽기보다 싫어했던 초등학생 시절엔 매 년 반장 선거에서 기권이라는 패를 던졌고, 그렇게 성인이 되어서도 내가 드러나는 일에는 두려움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결국 사람들 틈에서 꽁냥꽁냥 그렇게 여느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자꾸 반짝 거리는 사람들, 자신의 색을 내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 눈이 가다가 심지어 한 번은 그래 보고도 싶다는 마음이 왜 자꾸 삐쭉 모습을 내비치는지 도통 미궁이다.
그래도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굳게 다진 이들의 이야기는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찾아온 장기하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니 영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하기보다 빼기를 하며 본인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그곳을 찾아 확실한 입지를 다진 사람, 인터뷰 속 장기하의 모습이다.
한 번 사는 인생 두각을 나타내고 싶었다는 장기하
치열한 자기 관찰... 못하는 걸 빼면, 개성 남아
장기하에게 단념은 전념을 위한 알리바이처럼 보였다.
"두각을 나타낼 수 없는 일에는 흥미를 못 느끼는 인간이 아닌가 합니다."
"네. 두각을 나타낼 수 없는 건 다 포기해요. 세상에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고,
잘하지 못하면 고통받으니 신속하게 단념하는 거죠."
"안 되는 게임은 포기하고 범위가 작아도 내가 1등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야죠."
어정쩡하게 서 있는 지금 모습이 불만스럽다. 불만의 통증이 일상으로 스미려 할 때, 권태가 얼굴을 내민다. 이 권태의 늪에 다시 빠질 수 없다.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답을 찾는 중이다. 불투명한 지금을 그렇게 성실히 닦아내려는 중이다. 그래서 전념의 알리바이를 단념에서 찾은 이 남자의 이야기를 남겨둔다.
다 같이 힘들다고 어깨 내려두고 권태로운 일상을 매일 맞는 건 나답지 않다. 까만 날을 지나면 보일 그날도 만나보지 않았던가. 중요한 건 움직임라는 것도 안다. 오늘 입금된 먹고 죽지 않을 만큼의 월급 통장을 보며, 생각이 더 많아졌다. 아직 런던은 아침이다. 하루가 다시 내 앞에 놓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 끝에 항상 떠오르는 문장 하나를 되뇐다.
송영길 데이터 분석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남긴 말,
"이걸 알면서 왜 아무것도 안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