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흔들리는 마음은 움직이는 몸으로 다독다독

by 김라희


요즘처럼 다채로운 일상이 안면을 자주 치고 들어올 때면 제일 먼저 걱정하게 되는 건 마음이다. 요즘 런던 분위기가 다시 심상치 않다. 비단 런던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코로나에 다시 몸살이라고 매일 더 심하게 떠들어댄다. 언젠가 다시 비행할 수 있겠지 하는 순순의 기대는 이제 저 멀리 내다 버렸다. (그래도 10% 정도의 기대는 마음에 품고 있지만) 이번 주 중에는 회사에서 발표가 있을 것 같은데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다. 남편이 일하는 대학에서 인사팀과 미팅 일정이 잡혔다고 한다. 좋은 소식 같지는 않다. 다시 돌아온 런던이 좀 차가울 줄은 알았지만, 아... 이 정도 일 줄이야.




육상 선수였다. 달리는 것이 즐거워 막 달렸더니 선생님께서 학교 대표 100미터 선수 제안을 하셨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다. 매 달 학년 별 계주 대회에서는 언제나 맨 처음 아니면 맨 끝 주자로 달리곤 했다. 오래 달리기도 자신 있었다. 하루는 심심해서 친구와 달리기 시합을 한 적이 있다. 아마 인생 처음으로 얼마큼의 경쟁심을 타고났는지 알아챌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기고 싶어 친구가 지쳐 떨어질 때까지 계속 뛰었다. 결국 그 날 학교 운동장 15바퀴를 뛰고 이겼다. 그 친구보다 한 바퀴를 더 뛰어 버렸다. 그래서 달리기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길게 가지는 못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체육을 끔찍이도 싫어하기 시작했다. 체육복 갈아입을 때 나는 먼지와 땀 흘리고 돌아오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쾌쾌한 교실 냄새 그리고 체육복이라도 안 가지고 온 날이면 부랴부랴 옆 반가서 빌려야 하는 부산스러움, 이 모든 번거로움과 불쾌한 느낌이 너무 별로였다. 체육 선생님은 또 어떻고! 무식한 매너에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주먹구구식 수업 방식 때문에 고1 때부터 체육 시간이 돌아오면 아프다는 꽤 병으로 양호실로 직행하는 날이 꽤 많았다. 그때부터 운동 싫어증에 걸린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운동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단 한 번을 제외하고.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그래 봤자 그 당시 유명해지기 시작한 덴마크식 식단과 모델 이소라 비디오테이프가 전부였지만. 거실에서 팔과 다리를 마구 뒤틀었다. 그리고 근처에 살던 친척 언니가 있었지. 그 언니의 다이어트 의지는 내 것의 세네 배는 훌쩍 뛰어넘는 그런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매일 새벽 5시 즈음이면 벨이 조용히 울렸다. 그리고 우리는 동네 공원 아주머니, 할머니들 틈에 끼어 에어로빅으로 사지를 흔들어 댔다. 덕분에 고3 스트레스로 찐 살은 다 뺄 수 있었지만 운동, 움직거림은 더 귀찮고 하기 싫은 것으로 더욱 날카롭게 진화했다.





그렇게 운동 싫어증을 달고 산 지 수년이 지날 무렵, 제대로 첫 실연의 아픔을 마주하고 요가를 하겠다고 안국역으로 매일 발걸음을 옮겼다. 그야말로 온몸을 마른오징어 찢듯 쫙쫙 찢어대던 날들이었다. 요가 자세를 통해 자잘한 고통을 느끼며 살아있음을 감사해보자는 요가 선생님의 말에 충실히 따랐다. 인간 몸에 근육이 그렇게나 많이 붙어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렇게 근육과 대화를 한 시간 정도 하고 나면 그 홀가분한 마음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아직도 그 밤공기의 홀가분한 느낌이 생생하다.


움직이는 몸이 마음을 다독여준다는 걸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운동 싫어증은 점점 자취를 감추었고 이제 마음이 흔들리거나 무거울 때는 달리기도 하고, 걷기도 한다. 요즘처럼 찬 비바람이 거의 매일인 런던 새벽을 걸으러 나가는 마음은 쉽지 않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이불속에서 미루다 보면 영영 나갈 수 없게 된다. 두터운 외투를 하나 든든하게 걸치고, 모자 하나 무심히 쓰고는 산책을 나선다. 추워도 상관없다. 가랑비에 옷이 젖으면 좀 어떠랴. 밤 사이 찌뿌두둥한 몸과 머리를 유연하게 풀어주는 시간,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을 즐기고 감사할 수 있는 건 지금이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그 명상에서 돌아올 때면 가끔 사람이 달라져서 당장의 삶을 지배하는 다급한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솔길에 몸을 맡기고 걷는다고 해서 무질서한 세상이 지워주는 늘어만 가는 의문들을 면제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숨을 가다듬고 전신의 감각들을 예리하게 갈고 호기심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걷는다는 것은 대개 자신을 한곳에 집중하기 위하여 에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걷기 예찬> 다비다 르 브르통, p9





그렇게 오늘도 아침을 걸었다. 그리고 몸을 움직인다. 기분이 떨어질 때면, 자신감이 사라질 때면, 마음이 저 심연으로 가라앉으려고 할 때면, 세상에 나 홀로 일 것 같을 때면, 몸이 찌뿌둥하면, 지는 해가 궁금하면, 바람이 불어올 때면, 봄 꽃이 만발하는 그 오후에는, 행복한 감정을 되찾고 싶을 때면, 바쁜 일이 있을 때면, 배가 부를 때면, 구름이 두둥실 흐를 때면, 생각이 깊어지고 싶을 때면, 좋은 음악이 흐를 때면 그리고 당신이 그리울 때면.



자, 지금이야!

어서 나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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