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 승무원이 나누는 그것
딩. 드디어 기내 안전벨트 사인에 불이 꺼졌다. 승객들은 비행기를 떠날 준비에 분주하고, 승무원들은 그들과 작별 인사를 위한 준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긴 비행의 끝이 보이는 순간, 몸은 이미 녹초고 마음은 어서 빨리 밖으로 나가 신선한 공기와 마주하고 싶다. 여느 승무원과는 달리 나의 비행 루트는 런던-홍콩뿐이다. 오늘은 그 12시간 긴 비행시간 동안 가장 좋아하는 순간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당연지사, 회사원이라면 퇴근 시간을 승무원이라면 모든 승객이 내리고 난 후 호텔로 돌아갈 준비 혹은 집으로 갈 준비를 하는 그 시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도 이 순간이 제일 달콤하다. 그런데 내가 이 기내 퇴근 시간을 아끼는 데는 좀 특별한 이유가 있다.
12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승객은 그들의 가장 사적인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낼 수밖에 없다. 먹고, 자고, 게임도 하고, 책도 읽으며 집에서 하는 거의 모든 활동을 이 좁은 기내 안에서 하게 된다. 그 모습을 장시간 마주하고 나면 승객들과 요상한 정이 드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또 일하는 구역에 사교적인 승객들이라도 타고 있어 예상 밖의 주제로 즐거운 대화를 나누거나, 단골 승객들을 만나 농담을 주고받다 보면, 체감 비행시간 절감은 물론 그들과 헤어지는 안녕 인사를 나누는 게 아쉬울 때도 제법 있다. 더욱이 아픈 승객을 돌보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 후에는 큰 탈없이 비행을 마친 환자나 그 주변 모든 승객들에게 고마움의 마음이 자연스레 솟아오르기도 한다.
공적이지만 사적인 장소, 기내에서 긴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땡큐 인사와 함께 요상하게 정든 승객들을 보내는 시간이 되면 고마움과 뿌듯함이 따라온다. 어떤 승객은 비행에 지칠 대로 지쳐 눈인사마저 귀찮아 그냥 지나치기도 하고, 쑥스러움이 가득 보이는 승객은 얼굴이 붉어지더라도 수줍게 눈을 맞추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땡큐"를 기꺼이 나누어 준다. 저 멀리부터 쾌활함이 묻어나는 승객은 여지없이 서비스와 안전 비행을 이끌어준 승무원과 기장에게 여러 고마움의 말을 남기며, 커다란 미소와 함께 밝고 경쾌한 에너지를 선물하고 떠난다.
"땡큐"라는 한 단어 속 승객 수만큼이나 다양한 표현 방법을 마주할 때면 내가 그들에게 남기는 감사의 인사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승무원도 사람인지라 항상 땡큐를 나누며 한결같이 고마움의 마음을 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타성에 젖은 땡큐를 남발하다가 어느 순간 승객의 진심 어린 감사 인사가 마음으로 느껴지면, 나머지 승객들에게라도 진심의 인사를 전하려 마음 새를 가다듬게 된다.
승객과 땡큐 인사를 나누는 순간은 찰나이고, 그마저 제대로 나누는 승객 수를 헤아려보면 반도 채 안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그 수와 상관없이 사람들과 깊이 있는 땡큐 인사를 나누는 순간으로 퇴근 시간을 채우다 보면, 긴 시간 쌓인 피로는 이미 반으로 줄어든 듯싶고, 짜증으로 일그러졌던 마음은 대부분 잊힌다. 이 순간을 난 땡큐의 마법이라 칭한다.
타인과 눈을 맞추고 서로에게 수고했고, 고마웠다 인사를 나누는 이 짧은 순간에는 강한 힘이 숨어있다. 비행을 하며 받아도 보고, 전해도 보니 그 땡큐라는 말 한마디 안에는 노력에 비해 훨씬 더 값진 것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친 마음을 보살피는 이 단어에는 긍정의 에너지가 분명히 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땡큐의 순간을 나눌 기회는 정말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떤 승객의 모습을 하고 그 순간을 표현하는지 돌아본다. 타성에 젖은 땡큐보다 마음을 담은 고마움의 표현이 전해지길 항상 바란다. 부메랑 같은 땡큐의 마법은 받는 사람은 물론 주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돌아오는 것을 알기에.
(아! 비밀이지만, 승객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성격을 추측해 보는 개인적인 재미 또한 기내 퇴근시간의 숨은 재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