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엄마가 달아 준 자유

by 김라희

문득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 매일 아침 먹는 식재료 그리고 필요하다 요구했던 물건으로 가득 채운 장바구니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건 내가 아니야! 잘 먹고 잘 사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언제나 스스로를 제일 앞에 세우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가족이라고는 남편과 나, 딱 둘인데 만약 아이까지 있었다면, 과연 이 장바구니 안에 나를 위한 물건은 몇 개나 채울 수 있었을까?


변했다. 어느 시점부터 남편에게 필요한 혹은 사주고 싶은 것들 위주로 소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행복감이 느껴진다. 말도 안 된다.


160센티도 채 안 되는 엄마는 그 작은 체구로 두 손 가득 무거운 장바구니에 가족들이 먹고 싶다던, 필요하다 던 물건으로만 잔뜩 채워 오셨다. 딸은 그런 엄마의 따뜻한 사랑 안에서 무럭무럭 173센티나 자랄 수 있었다.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던 모녀지간이었는데, 살다 보니 내 안에서 느껴지는 엄마 모습이 더욱 진해진다.


엄마는 까스락지고 차갑다. 큰 고모 품에 안겨 밥을 먹었던 기억은 있어도 엄마품에 안겨있던 기억은 거의 없다. 몸으로 치대는 것을 싫어하시는 엄마가 곁을 내주었던 건 겨우 무릎에 누워 귀 팔 때 정도였다. 엄마도 젊어서는 본인을 꽤나 앞에 두고 사셨던 분이었겠구나.


말은 또 얼마나 직설적인지. 그야말로 돌직구다. 맞으면 가끔 아니 자주 아팠다. 사느라 바빠 고운 말 이쁜 말로 포장할 줄 몰랐다고 그리 얘기하신다. 이거 하나만은 엄마를 똑 닮았다. 내가 던진 냉정한 돌직구에 여럿 아파했다. 그러니 이건 삶이 변화시킨 모습이 아닌 엄마 본연의 성격일 테다. 딸에게도 고스란히 왔으니.


손은 또 얼마나 큰지, 음식을 하면 무조건 대용량이다. 종갓집에서 자라 끊이지 않은 손님에 객식구까지 먹여 살리느라 살림은 무조건 크게만 배웠던 엄마는 뭐든 작게 하는 게 제일 싫다고 하신다. 덕분에 먹는 거 하나는 흐드러졌다. 음식 솜씨도 훌륭해 입 호강하면서 살았던 덕에 내 요리 실력도 꽤 괜찮다.


매운 눈빛도 곰곰이 생각하니 비슷하다. 학교 다닐 때 웬만한 거짓말은 시도도 할 수 없을 만큼 그 눈빛이 참 매서웠다. 한 번 안된다고 한 건 절대 안 될 만큼 칼 같던 엄마의 성격과 그 눈빛은 잘도 어울린다. 요즘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내게도 강한 분위기가 있다고, 안다. 이건 다 엄마에게 온 눈빛이라는 걸.

닮은 구석 하나 없다던 딸이 세월을 몸에 입으니 엄마 모습이 되어가는구나.





엄마에 대한 기대 같은 건 없었다. 엄마는 그냥 엄마니까. 그러다 혹독한 사춘기를 보내고 대학도 다니다 자퇴하고 몇 개월 방황하다 다시 입학하고, 잘 들어갔다 싶었던 회사는 다니다 그만두고 갑자기 영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에도 이 모든 고비마다 그 방황과 결정을 믿어주고 맘껏 가고 싶은 곳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준 건 엄마다. 보수적인 아버지를 설득하고 설득해 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길을 터 준 것도 엄마다.


영국 생활 초창기에 엄마는 손편지를 자주 보내셨다. 일 년을 계획했던 나에게 공부를 더 해봤으면 좋겠다고 제안한 것은 엄마였다. 그 제안으로 더 긴 시간을 홀로 외롭게 지내게 했다는 미안함 때문인지, 편지에는 엄마스럽지 않은 따뜻함과 격려의 표현으로 항상 가득했다.


사랑한다 내 딸, 혼자 잘해나가는 걸 보니 자랑스럽구나, 잘 난 어른이 될 필요는 없다. 그저 네가 더 큰 생각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기만 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엄마에게 너는 항상 멋진 딸이다. 그렇게 엄마는 내 날개에 따뜻한 빛을 얹어 주셨다.




눈빛 매섭지만 따뜻한 글을 쓸 줄 아시는 엄마는 벌써 여섯 번의 항암을 하시느라 민둥 머리가 된 지는 이미 오래고, 열 시간이 넘는 수술을 이겨내시느라 살은 다 빠져 딸을 더 거인으로 만들었다. 아버지랑 둘이 치료받으면서 잘할 수 있으니 영국에 있으라고 당부하던 분이 한 걸음에 달려온 딸 앞에서 눈물을 흘리신다. 강했던 엄마의 모습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눈물 앞에서 내 반짝이던 날개가 꺾이는 듯 아팠다.


차가운 엄마는 흘리던 눈물을 금세 추스르신다. 직설적인 엄마는 훨씬 더 오래 살 것이라고 칼같이 말씀하신다. 손맛이 좋은 엄마는 본인에 맞는 음식을 척척 잘도 해내신다. 매운 눈빛은 살고 싶은 의지로 더 매워졌다. 그런 엄마라 다행이다. 그리고 그 슬픔이 짧아 더 다행이다.


지난여름을 엄마 곁에서 오롯이 보내며 또 다른 엄마를 알아갔다. 훨씬 더 어리광쟁이 철부지였다. 늦둥이 막내로 태어나 호랑이 외할아버지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엄마는 딸 앞에서 막둥이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그런 엄마 곁에서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나를 만난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엄마와 딸 사이라는 걸 마음으로 알아간다.


아빠는 어느 날 아버지가 되어도 엄마는 어머니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딸에게 엄마는 엄마다. 그런 엄마가 어서 보통의 것으로 가득한 평범한 일상 속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엄마의 일상 속에서 다시 자유롭게 훨훨 날갯짓할 수 있기를 욕심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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