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의 신세계

사소함에 얽힌 진중한 이야기

by 김라희


그야말로 사소함의 극치다. 오늘 점심에 저 건너편 카페에서 산 샌드위치 속 오이가 정말 싱싱하더라. 게다가 새로운 점심 식사 세트가 있는데 거기에 포함된 음료, 후식까지 싸고 실해. 너도 한 번 먹어봐, 추천추천! 아... 날씨 너무 하지 않아? 어제 이탈리아 친구가 휴가 갔다 돌아왔는데 검게 그을린 모습이 보기 좋더라. 데미안 허스트 다녀갔는데, 오늘도 또 에그 샌드위치 먹었어. 돈도 많은 아티스트가 식성은 별로인 것 같아. 등등등... 이처럼 사소한 잡담은 어디서든 귓가를 스치는 바람처럼 곁을 따라다녔다.


물가 비싼 런던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준다던 친구가 소개해 준 갤러리 인포메이션 센터의 풍경이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화장실은 어딘가요?"라는 질문과 동료들과 나눈 잡담으로 넘처나던 시간, 관광객과 방문객에게 치일 대로 치여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는 발길을 끊었던 장소. 이렇게 추억도 지나고 나니 어렴풋이 애틋하다. 그 3년여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배운 것 하나는 바로 잡담의 진가였다.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울타리 속에서 충분히 쾌활할 수 있었고, 친구들도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 선생님께 반항한다며 야간 자율 학습 땡땡이나 모의하던 그런 천방지축 철없는 학생으로 고등학교를 보냈고, 대학에 가서야 내가 온실 속 화초같이 자라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엔 다양한 배경 속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진지함은 경계를 모르고 커져만 갔고, 가벼움은 너무 가벼워 쓸데없다고 치부했다. 그러다 들어간 K 법률 사무소에서 사용하는 진지함의 언어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렇게 진지함을 몸에 휘감고 영국으로 갔다. 언어가 익숙해질 무렵부터 이 쓸데없는 진지함의 무게 때문에 힘들었던 시절이 꽤나 길었다. 다시 들어간 대학에서 이제 갓 스물이 된 그 아이들의 대화는 너무 유치했고, 그런 대화에 끼여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깝게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잡담 따위를 하지 않아도 주변에 내 사람들로 넘쳤고, 영국에서 이런 것이나 하려고 시간과 돈을 쏟고 있는 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맞다. 오만한 자의식과 쓰잘 떼기 없이 입고 있던 말도 안 되는 권위 의식이 그곳에서는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일 년이 지나도 학교 생활은 즐겁지 않았고, 운 좋게 잡은 갤러리 아르바이트 자리에서는 말없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홀로 남겨진 시간 속에서 묵묵히 내 일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마음이 자리 잡을 무렵 무슨 이유에서인지 천천히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었던 건 잡담이다. 서로 잘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잡담의 핑퐁을 주고받을 여유만 있다면 그것은 어디든 존재했다. 거기에 어이없을 만큼 싱거운 농담도 함께였다. 지극히 사소한 잡담을 나누며, 친분을 쌓고 그런 다음에 중요한 대화가 오고 갔다.


어느 날부터 이 핑퐁 놀이에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이것도 그들의 문화이니 배워보자는 다짐에서였다. 핑이 한 번 갔다 퐁이 돌아오지 않는 실패의 무안함이 많이도 쌓였다. 안 하던 것을 하려니 잘 들리던 영어도 안 들린다. 핑이 왔는데 뭐라고? 다시 말해줄래? 만 돌려주니 은근슬쩍 등을 보이던 사람들, 유머를 진지함으로 받아버린 센스 제로 잡담력, 무슨 주제든 결론을 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강박, 웃자고 시작한 가벼운 고민에 다시 진지함으로 달려들던 민망함. 이런 시선으로 그때를 돌이키면 그야말로 이불 킥 백만 개는 거뜬하다.




잡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커져버린 자의식과 쓸모없이 입고 있던 진지함을 벗어버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깨를 내리고 얼굴의 근육을 풀고 릴랙스, 그거면 된다. 근데 이게 말은 쉽지 행동으로 자연스레 나오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을 쏟아야 했고, 지금도 어색한 순간이 잦다.


또 다른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는데 그건 권위였다. 상대방이 입고 있는 권위가 내 위치보다 높다고 인식되면, 그때는 다시 어깨가 올라가고 무슨 말을 어찌해야 하나 머릿속이 쓸데없이 바빠졌다. 이러면 또 잡담력은 급하강, 다시 말없는 사람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노력의 결과는 어떻게든 나왔다. 잡담의 부담이 슬슬 신세계를 여는 유쾌한 문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처음은 상대방이 친절한 수다쟁이였기에 가능했다. 그저 상대방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며 잘 듣다 질문을 던지니 돌아오는 퐁이 길고 재밌었다. 표면적인 잡담으로 웃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 끝에는 유대감이라는 것이 종잇장만큼 아주 얇게 쌓였다.




런던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 잡담의 신세계가 열어준 사람들 덕분에 개인적 관심사의 스펙트럼은 엄청난 속도로 넓어졌다. 그리고 어느덧 나도 잡담을 즐기게 되었다. 지극히 사소한 대화가 몰고 올 행복한 후폭풍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서울로 향하는 공항에서 티켓팅 하는 분에게 긴 비행이 너무 지겹다 토로를 하면 그분들이 그렇지? 하면서 좀 더 편한 자리로 은근슬쩍 바꿔주기도 하고, 택시 기사분과 나누는 잡담 속에서 맛있는 맛집에 대한 정보도 얻고, 시장에서 나누는 잡담 속에는 요리법이 덤으로 온다. 잡담의 신세계가 열어준 것은 비단 정보를 얻고, 관계의 친밀감을 올리는 것뿐은 아니었다.


잡담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동안 내 안에 쌓여있던 불필요한 허울들이 하나 둘 씻겨 나갔다. 잡담의 시간 동안 사람은 비슷하다는 믿음 같은 것도 자리 잡았고, 직업적, 물질적, 사회적 권위 앞에서 사람은 거대해 보일 수 있지만, 그 허울 뒤에 숨은 진짜 모습까지 커다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도 알아갔다. 권위 뒤에 숨으려는 사람들이 가진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하고 질문하던 밤도 꽤 있다. 나도 그것 뒤에 숨어 지내길 바라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아니 지금도 그럴 수 있으니까.



가벼움 속 묵직함,


이것이 내가 만난 잡담의 신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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