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엄마가 암이라는 걸 알았다.
막 아침을 먹으려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마시려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확인하니 아빠다.
'웬일이시지? 어제 엄마랑 통화했는데...'
"여보세요."
"어 아빠야... 일어났어?"
"그럼요. 런던은 열 시가 다 되어가요."
"그래, 아침은?"
"이제 막 먹으려던 참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음... 놀라지 말고 들어라..."
"왜요? 엄마 아파요?"
왜 그랬는지 이상하게도 엄마가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별일 아니겠지 하는 당연한 마음을 품고 물었는데...
"어? 어... 엄마가 많이 아파."
"어디 가요? 어제 통화할 때 좀 이상하다 싶었어요..."
"그래... 놀라지 말고... 엄마랑 아빠가 다 잘 알아서 할 수 있으니까..."
"아빠... 엄마 설마 암이야?"
제발, 아니길...
"응 그래.. 암이야, 난소암"
"하... 검사는 받았어요? 언제부터 그런 거야? 왜 지금까지 아무 내색도 안 하셨어요?"
"엄마 다음 주에 입원하셔. 복수가 많이 차서 식사를 거의 못해. 살도 많이 빠졌단다."
말도 안 된다. 암이라고? 엄마가? 왜?
"아니 왜 그때까지 참고 계셨던 거예요? 이상이 있으면 병원에 바로 가셨어야지..."
"한국은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바깥 생활도 못했고, 병원 가는 일도 복잡해 검사도 겨우 했어.
입원 날짜도 미뤄지고 그러느라. 일단 5월 초에 입원해서 복수 빼고, 수술 전 항암을 먼저 해야 할 것 같다고 해."
하...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신을 차리자.
"아빠 일단 알았어요. 한국 언제 들어갈 수 있을지 일정을 한 번 볼게요. 그리고 병원에 가시면 엄마한테 투여되는 약이랑 경과 그리고 결과 나오는 거 모두 다 알려주세요. 여기서 찾아볼 수 있는 정보는 다 찾아볼게요. 우리 할 수 있어요, 아빠. 너무 속상해 마세요. 살다 보면 아프기도 한 거지. 우리 잘할 수 있다는 것만 기억해요."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다. 엄마가 암인 것도,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정신 부여잡고 아빠를 격려하는 나도.
"어 그래. 어서 아침 먹으렴. 그리고 올 생각은 하지 마러. 코로나 때문에 난리인데 무슨 비행기를 타고 오니. 그냥 있어. 우리가 자주 연락할게."
"일단 알겠어요. 아빠.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우리 마음 단단히 먹고 잘 이겨내요 아빠. 아셨죠?"
"그래 딸아 알겠다. 들어가렴."
"네, 아빠..."
5월 1일, 평화로울 수 있던 아침 식사는 아빠의 전화 한 통으로 그렇게 끝이나 버렸다. 전화를 끊고, 그야말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정신이 아득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나에게 이런 일은 없다. 어떻게 엄마가 암이야? 말도 안 되잖아.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게 서 있던 나를 보며, 무슨 일이냐며 남편이 묻는다.
그제야 '이건 현실이구나'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복수까지 차기 시작했다면... 좋지 않은 신호인데... 이제 어쩌지?'
아빠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던 모습은 간데없이 그렇게 앉아 한참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한참이 흐르고 갑자기 이 무너지는 감정은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시간이 없다. 엄마는 이미 항암을 결정하셨고, 입원 일자까지 다 정해졌다. 우리 가족에게 이렇게 스며든 암이라는 존재를 파헤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 앞에서 난소암과 항암 작용, 부작용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던 남편이 그제야 보인다.
"항암 하는 동안 부작용도 많다고 하는데... 이겨 내실 수 있겠지?"
"어머님 잘하실 거야. 놀랐지? 일단 마음 먼저 진정하고..."
남편이 끓여 온 카모마일 차를 한 잔 하고 나니 진정이 좀 되는 듯하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하나 우왕좌왕하는 마음뿐이다. 남편에게 정보를 좀 더 찾아달라 도움을 요청하고, 서울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누나"
"어, 이게 무슨 일이니?"
"엄마가 한참 안 좋으셨는데... 누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하셔서... 말을 못 하고 있었어. 근데 암 진단받으시고 입원 날짜까지 정해졌는데, 말 안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어제 엄마 설득했지. 말하자고... "
"너도 참.. 그래도 미리 알렸어야지 이런 건. 언제부터 그러셨던 거야?"
"증상도 없이 갑자기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고, 근처 병원 가서 진료받았는데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지. 그래서 엄마 다니시던 대학병원 가서 다시 CT 촬영하고, MRI 하고 전부 다 했는데... 암 이래..."
"아직 몇 기이고 그런 자세한 결과는 듣지 못한 거지?"
"응 그거 들으면 누나한테 다시 연락할게."
"그래 그럼 알았어. 너도 잘 지내고, 또 전화하자."
엄마는 왜 그럴까? 그렇게 아파 식사도 못하시는데, 게다가 이렇게 병원 신세까지 지게 생겼는데 딸 생각이 먼저라니. 멀리서 엄마 생각하며 마음 졸일 딸이 먼저 아파, 수술, 항암을 나 몰래 다 해보려던 계획이셨던 거다. 어떻게 그래? 우리 가족이잖아. 지지고 볶고 서로 힘들게 할 때는 있어도 진짜 필요할 때 서로 감싸고 힘이 되어주는 그런 가족, 그런데 엄마는 딸이 까짓것 마음 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라고 그동안 혼자 아픈 걸 다 참고 있었던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거야.
원망이 난무하다. 그러다 그 소식을, 그 아픔을 홀로 견뎌냈을 엄마를 생각하니 다시 울음이 터졌다. 엄마는 그런 사람들인가 보다. 무조건 자식 걱정. 아파 죽어도 자식 걱정이 먼저...
엄마가 왜 그렇게까지 아프지? 건강하다고 했는데... 1월에 뵐 때만 해도 괜찮으셨는데.. 왜? 왜? 왜? 남편이 찾아본 난소암과 관련된 정보를 읽어 내려갔다. 3기, 4기가 될 때까지 이 암은 증상을 보이지 않는단다. 건강 검진도 잘 받으셨는데... 이럴 수는 없다고 다시 부정해 보고 싶다. 쓰이는 항암약 종류도 함께 보며, 보일 수 있는 부작용과 대안을 한참 동안 공부했다.
남편은 본인 주변에 암투병 중인 사람들의 경우를 떠올려보고 있다. 시어머님 친구분 중에 난소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신 분이 계시단다. 지금껏 잘 살아 계시고, 요즘은 약이 좋아져 항암 기간동안 예전만큼 아프지 않다고 한다. 난소암은 사망률이 높은 암 중 하나다, 재발률도 상당히 높다는 말씀도 하신다. 항암 부작용으로 다리를 절고 계시지만 목숨만은 붙어 있으니 그것으로 감사하신단다. 그렇게 며칠을 암 치료와 관리 그리고 수술로 유명하신 의사와 병원을 찾아봤다. "동행"이라는 N카페에 가입해서, 먼저 경험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도 본다. 차가웠다, 뜨거웠다 감정은 그렇게 요동치고 있다.
아빠와 통화하고, 딱 9일째 되는 날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서울로 향하는 마음을 굳게 다졌다. 그리고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 살고 죽는 것은 하늘이 정하는 일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이성적으로 행동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분명 우리 가족 모두 이 상황 속에서 어리둥절해 있을 테이고 누군가는 가볍게 이 상황을 꾸려야 한다. 그 일을 내가 하자.
난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엄마는 더 운이 좋은 여인이다. 그렇게 믿고 가자. 한 번 해보자!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한 다 해보자.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리고 비행 내내 영국에서 읽었던 책에서 만난 말 한마디를 계속 떠올렸다. "오히려!"
감옥에서 고초를 당하면서도 <꽃>이라는 시에서 이육사 시인은,
동방은 하늘이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에서는,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죽을힘을 다해 싸운다면 오히려 해볼 만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갈 수 있어 다행이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엄마와 이렇게나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오히려 다행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다행이다. 혼자 오랜 시간 있을 수 있는 독립적인 남편이라.. 오히려라는 단어를 입을수록 마음은 더 단단해진다.
그렇게 한국으로 들어와 자가격리를 마치고,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울면 안 되는데... 울면 안 된다...'
첫 항암을 마치고 어제 막 돌아온 "엄마"를 외치며, 현관문을 힘차게 열었다.
아... 낯선 이가 서 있는 듯하다. 너무 말랐다... 어떻게...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를 되새긴다.
"딸! 왔어?"
여느 때와 같이 환한 미소로 나를 부르는 엄마,
목소리에 힘은 빠졌지만, 살은 다 빠져 앙상하지만, 나를 부르는 눈빛은 여전하다.
"아니! 이게 뭡니까 엄마, 이게~!!"
괜스레 농담 섞인 말과 커다란 목소리로 계획에 없던 만남을 맞이하고 있었다.
엄마 손을 잡으며 오르는 감정을 꾸욱 내리눌렀다.
그리고 앉아 얘기부터 시작했다.
그 간 내 걱정하느라 눌렀던 엄마의 말들이 듣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