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성장하는가

by 김라희


고통은 눈을 뜨게 하고, 고통이 아니었다면 인식하지 못했을 것들을 보도록 도와준다. 그러니 고통은 오직 앎에 쓸모 있을 뿐이며, 앎을 벗어나면 실존을 악화하는 데만 쓸모가 있을 따름이다.

에밀 시오랑



11월 1일이다. 4개월째 아침을 글쓰기로 밝히는 중이다. 아침의 기록이 늘어갈 때마다 드는 생각은 올바르게 이 길을 잘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대로 성장 가능할까? 과연 이렇게 마구 쓴다고 나아질 수 있을까? 어차피 쓰는 것 좀 더 곰삭은 생각을 골라 써야 하는 것은 아닐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퍼붓는 소나기처럼 물음표가 사정없이 머릿속에 내리 꽂힌다.


영국은 수요일부터 다시 록다운이 시작된다. 다시 꼼짝 마 상태다. 한국에서 함께 글 쓰던 분들이 막혀버린 일상에 대한 스트레스를 표현한 글이 새삼 떠오른다. 당시에는 엄마 병간호와 글쓰기, 이 두 가지에 몰두하느라 코로나에 막힌 일상 따위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런던으로 돌아온 지 3개월째, 이제야 그분들의 글이 몸으로 느껴진다. 행동의 제약, 일상의 변화와 런던의 회색 날씨. 이 모든 조합으로 어지러운 마음을 오늘 아침에는 다시 만난 책, <인간이라는 직업>을 통해 성실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스위스에서 온 알렉상드로 졸리앵, 삶을 소화 마비라는 고통으로 맞이해야 했던 그가 바라본 고통 대한 숙고와 인간이라는 직업을 수행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라는 깊은 고찰이 책 속에 담겨있다.



- 사는 건 전투다


알렉상드로는 탯줄이 목에 감겨 질식사 직전에 태어나 소화 마비라는 장애를 안고 살게 된다. 어릴 적 부모와 떨어져 요양 시설에서 17년간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 그에게 실존은 투쟁이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는 몸의 불필요한 움직임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그 시선에 내리 눌리는 자아와의 끝없는 투쟁으로 인간이라는 직업을 수행 중인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투다! 나는 삶에서 이득을 얻어내고, 기쁨을 찾아내야 한다. 안 그러면 망한다."


예상하지 못한 일로 일상이 뒤틀어질 때, 그것이 위험으로 감지되는 이유는 마음의 교란이다. 미세한 균열만으로도 정신적 부담과 무게는 생각보다 강한 강도로 몸과 마음을 내리누른다. 사소한 균열이 쉽게 불안과 두려움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알렉상드로는 혼란에서 시작된 삶에 균형을 잡아넣기 위한 전투를 했다면, 나는 무너진 균형이 남긴 혼란 속에 새로운 균형을 잡아넣는 전투를 선택한다.



- 체념, 가장 큰 두려움


전투 중에 가장 크게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체념이다. 이 체념이 불러온 절망 앞에 희망하기를 멈추는 것이야 말로 어이없는 패배로 전투를 마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체념에 빠지지 않기를 선택하는 것, 그것을 통해 처한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고 밖으로 드러내는 것, 이것이 상황을 역전하고 성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 단계는 아닐까. "더없이 무의미한 순간도 이리하여 스스로 강화할 기회가 된다." 체념의 두려움을 이기고 고통의 상황 속에도 끊임없이 나아가기를 선택하는 사람, 그 사람만이 곧고 균형 있는 마음의 상태로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






- 성장이 시작되는 과정


결핍을 채우려는 의지야말로 행복의 결과로 향하기 위한 최고의 도약대가 된다. 알렉상드로는 참을 수 없는 불안정으로 몸 어느 한구석 통제 없이 이상하게 움직여대는 일 분 일초와 다툰다. 그에게 결핍은 균형이다. 그는 균형을 찾아 철학에 이르러 몸의 불균형을 정신의 균형으로 이겨냄으로 삶의 희망과 기쁨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알렉상드로는 결핍을 시원하게 받아들였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받아들여 철학에 이르렀다.


"인격을 형성하고 성장하려는 자, 아무것도 숨기지 마라. 숨기려는 행위에 급급하다 보면 이 상황이 주는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단지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전이 받아들이고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결핍과 부족함으로 가득한 내가 여기 서 있다. 이제 나는 이것을 받아들이고 나아간다!"



- 고통이 성장하게 한다


글을 쓰게 한 힘의 시작은 엄마의 투병이다. 고통 속에도 딸은 글을 쓰며, 마음을 가다듬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란 걸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투병 생활을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엄마도 걷기를 더 열심히 하고, 먹기를 더 힘차게 하고, 치료를 조금은 가볍게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비극적인 것이 우리를 가르친다. 비극적인 것을 늘 가까이하는 사람은 성장한다. 괴로움, 좌절, 고통에 의해 풍성해지고 나날이 극복하는 장애에서 자양분을 얻는 지혜는 아마도 얼마간 쓸모가 있을 터이다. 물론 귀는 쫑긋 곤두서야 하고, 의지는 다져야 한다.”


조건이 붙었다. 고통을 통해 나아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꼿꼿이 세운 감각을 통해 끊임없이 극복하고 배워가려는 의지를 다져야 한다. 이것만이 고통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의지만이 성장을 돕는다.




- 언제 성장하는가


성장 또한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알렉상드로처럼 장애로부터 시작된 고통을 전투로 선택하느냐, 병마가 덮친 환경 속에서 체념으로 잠식되느냐 하는 것은 철저히 개인의 선택이었다. 투쟁으로 삶의 이득과 기쁨을 찾아내기를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각자가 가진 "조건의 총체를 감당하기 위해서 실존을 조각해내는 것이다."


고통이 내린 환경에서 전투를 선택했다면, 결핍이 닿아있는 모든 것을 인식하고 그 결핍을 드러내어 인정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고통의 비극이 내려준 성장의 축복을 오롯이 받아내어 성장하기 위한 모든 감각을 세우려는 의지도 따라와야 한다.


고통 속에 찾아낸 앎이 아니라면, 그것은 오직 나를 갉아먹는 것일 뿐!

알렉상드로와의 성장을 의심하던 물음표의 소나기가 어느덧 잦아듦을 느낀다.


무엇이든 너무 쉽게 얻으려 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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