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 신입 승무원

웁쓰!

by 김라희





언젠가는 홍콩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홍콩 관광 관련 오디오 가이드 스크립트 번역, 감수 일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든 마음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들의 딤섬이 너무도 먹고 싶었다. 마음속 버킷 리스트에 그 바람을 저장해 두고 지내던 어느 날, 영국 한인 광고 사이트에 무심히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구직, 구인부터 온갖 사고파는 정보들까지 초기 영국 거주 한인 생활자들을 위한 정보가 가득이다. 몇 년 만에 방문하는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몇 페이지를 훑으며, 동향을 살피고 있는데 재미있는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홍콩계 항공사의 채용 공고였다. '이곳에 이런 광고는 좀 어울리지 않는걸?!' 하며 클릭한다. 홍콩-런던만 다니면 되는 일정이고, 지원 마감 하루 전이었다.



"어머나! 홍콩이면 가야지! 게다가 런던-홍콩 루트만 다닌다니! 너무 좋아!"





망설임 없이 바로 CV를 수정하고, 자기소개서 (Personal Statement)를 완성해 이메일로 송부했다. 광고를 확인하고 불과 3시간 안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 사실 지원 서류를 보내면서 반신반의도 하지 못했다. 관련 경력도 없고, 한국 나이 36 (만으로 34) 승무원을 처음부터 시작하기에는 나이도 문제가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대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지원해 봤다는 데에만 의미를 두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다음 날 아침 답메일이 떡하니 도착해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면접을 보러 오라는 기쁜 소식과 함께. "웁쓰!" 그야말로 첫 반응이 웁쓰였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하, 이게 웬 떡이야! 그런데 뭘 준비해야 하지?"


영국 생활 초창기에 만난 한국인 한 명이 승무원의 꿈을 안고 학교도 다니고, 시험을 여기저기 보러 다녔다. 그녀를 통해 메이크업부터 헤어까지 면접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지 알고 있던 터라, 입고 갈 의상부터 이것저것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얼추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여력에 맞게 하자, 무리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면접 경력이 얼마인데, 소박하게 이 경험만 믿고 가보자 마음먹었다.


한국에서 회사 면접 보던 때를 떠올리며 단정한 치마 정장에 머리는 깔끔히 묶고, 할 수 있는 한 제일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에 빨간 립스틱 하나로 포인트를 주기로 계획했다. 미리 화장도 연습해보고 옷도 입어보며 예행연습 같은 것도 해본다. 그런데 정장에 차고갈 시계가 마땅치 않다. 그래 그럼 시계 하나만 사자 싶어 백화점으로 향했다. 첫 면접에 시계를 꼭 차고 오라는 말은 없었지만, 승무원이라면 시계는 필수지!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취향과는 반대로 작고 아담한 시계 하나를 집어 들었다. 가격도 적당했다. 점원은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다. 왜 시계를 사는데 직업을 물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지만, 길게 말하기 번거로워 승무원이라고 말해버렸다. '뭐야, 아직 시험도 안 봤는데, 무슨 승무원?' 그 후로 한참을 그 직원과 승무원 직업에 대한 대화를 나눈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미리 승무원이 되어 시계를 샀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도 이 시계와 함께 비행을 한다.





면접 날이 다가왔다. 사무실에 들어가 면접을 기다리며 응시자들을 둘러보니 조카뻘이다. 어리고 파릇하다. 첫 면접은 그룹 면접이다. 두 그룹으로 나눠 주어진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역할을 분담해서 돌아가며 발표했다. 질문은 기억나지 않지만 주제는 서비스 마케팅 관련이었다. 다행히 미술관에서 일한 경력과 오디오 가이드 번역의 경험에 빗대어 답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떨리기보다 상황이 재밌고 즐거웠다. 해보지 못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조금은 더 컸던 게 아닐까 한다.


두 번째 면접은 임원 면접이다. 두 명의 베이스 매니저와 질문답을 주고받았다. 어려운 질문도 있었지만, 왜인지 다시 즐거웠다. 그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황에만 집중했다. 질문에 답하다 보니, 이탈리안 남편과 한국인 아내에 대한 개인적인 대화까지 꺼내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벼운 분위기로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건강검진을 끝으로 한 달여의 인터뷰 과정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승무원이 되기 위한 마지막 코스, 7주 연수를 위해 가고 싶던 홍콩으로 떠났다.





서른이 넘어 무언가 새로 시작하는 것은 꺼리게 된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음악도 듣던 음악만 듣고, 가던 곳만 가고. 약간 모지리 같은 구석이 있는 난, 뭐든 남들보다 조금씩 다 늦되다. 지나고 보니 그렇다. 영국에 와서 한 모든 결정과 움직임은 더욱 그랬다. 주변인들 대학원에 진학 해 커리어를 쌓는다고 혈안일 때, 난 이곳에서 다시 대학을 다니기로 결심했다. 한국에서 보낸 대학 시절 공부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을 늦깎이 대학생이 되어 캠퍼스에서 보냈고, 그때도 솜털 송송한 조카뻘들과 학교 생활을 했던 터라 다시 늦깎이 승무원의 언니의 역할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연수 가기 전, 한 달 이상 시간이 남아 한국에 다녀왔다. 친구들 대부분 승무원 연수를 떠난다는 내게 겁도 없다 했다. 지금 이 나이에 괜찮겠냐고, 20대도 힘들다는데 서른 중후반을 넘어 처음 시작하는 일이라면, 신체적으로 힘들지 않겠냐는 말속에는 여러 의미가 섞여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지만 난 너무도 상관없었다. 가고 싶던 홍콩을 돈 벌면서 다닌다는 생각밖에 그리고 한국을 더 자주 다닐 수 있다는 신남밖에 없었으니까.


한국에서 다니던 첫 직장을 나오면서 한 직장에 인생을 거는 일이 제일 위험하다고 느꼈다. 세상은 바뀌는 중이고, 경험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삶이 이끌고 가는 방향에 몸을 실어 움직이기보다 주체적으로 내가 삶을 끌고 싶었다. 젊었으니까 당시에는 무조건 경험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승무원을 하게 되다니, 그것도 "방년" 36살에.

너무도 근사했다!



7주간의 연수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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