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수 적고 낯을 많이 가리던 아이는, 명절이나 친척들이 모이는 집안 행사가 있는 날이면 또래 사촌들과 노는 시간보다 어른들 틈에 끼어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표정을 읽으며, 무엇이든 상상하던 낯선 시간을 더 기다렸다. 식탁에 둘러앉은 엄마, 큰 엄마, 작은 엄마 그리고 고모들이 주고받는 소닥거림 속에는 무언가 비밀스럽고, 알 수 없는 유쾌함 같은 것이 담겨 있어 그 자리는 언제나 궁금한 그런 곳이었다.
식탁에 자리 잡고 앉았는 나에게 엄마는 나가서 언니, 동생들과 놀라고 계속 핀잔이시다. 못 들은 척 괜히 아무 인형이나 하나 들고 와서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그것을 조몰락거린다. 최대한 밍기적거리며 어른들 곁을 떠나지 않으려 노력이다. 그럴 때면, 삼삼오오 함께 만들어야 하는 음식이라도 핑계 삼아 있으면 제일 좋다. 고사리 손이라도 하나 더해져야 일이 빨리 끝날 수 있기에 핀잔 들을 일 없이 어른들의 비밀스러운 수다장에 합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뜨끈한 아랫목이 있던 큰집에는 할아버지, 작은할아버지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셨다. 대가족, 촌수 세기도 복잡한 사람들이 명절마다 웅성 인다.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친척들은 설날이면 큰 집 아랫목에 모여 만두를 빚고, 추석이면 대청마루에 앉아 송편을 빚느라 분주했다. 난 송편 빚는 날보다 만두 빚던 날을 더 기다렸다.
이른 새벽부터 다닥다닥 붙어 앉은 아랫목, 뜨끈한 온도만큼 솟아오른 친밀감은 일 년 혹은 이삼 년에 한 번씩 만나는 먼 친척들의 사는 이야기를 금세 풀어헤쳤다. 작년에는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여기저기 돈을 끌어 모으느라 고생했다는 고생담, 전교 몇 등을 했다던 공부 천재 사촌 자랑, 큰 딸이 남자 친구를 만나는데 영 시원치 않아는 오지랖 걱정, 연하 남편을 둔 새 식구의 수줍은 목소리 등 그 질펀한 얘기는 김장 김치 넉넉히 들어간 만두를 빚으며 더 생생히 펼쳐졌다.
커다란 양푼 만두소에 숟가락 여러 개 푸욱 찔러두고, 여남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다 보면, 대식구 아침 떡만국에 들어갈 넉넉한 양의 만두가 쟁반을 채워간다. 그렇게 얼추 만두소가 없어질 때 즈음, 큰 엄마는 육수 국물 펄펄 끓는 아궁이 솥뚜껑을 힘껏 열고 쟁반 가득 만두를 풍덩 집어넣는다. 휘휘 국물을 젖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침상이 금세 준비된다.
뽀얗게 상에 오른 떡만둣국. 정갈하게 올려진 고명을 풀어헤치고, 만두를 절벅절벅 쪼개 국물과 한 입 들이키면, 김장 김치의 얼큰함이 고기 육수의 구수함과 어우러져 찬 겨울 아랫목을 엉덩이를 더 뜨끈하게 데운다. 어느새 벌겋게 물든 국물을 바라보며, 잘 썰린 가래떡 한 번 쫄깃하게 씹다가 만두 한 입 크게 넣으면, 야채와 고기 그리고 김치의 다채로운 공굴림이 입안을 잔뜩 감싼다. 올해 만두는 좀 싱겁다는 큰 아버지, 이 맛이면 딱 좋다는 아버지 그리고 떡은 안 먹고 만두만 먹겠다는 동생, 별의별 목소리가 뒤섞인 방 안은 꽉 찬 만두 속만큼 온통 시끌벅적하다.
추운 겨울 뜨뜻한 큰 집 유년의 설날, 그 아랫목 어른들의 수다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나는 만두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 정서적 현상이다. 맛은 우리가 그것을 입안에서 누리고 있을 때만 유효한 현실이다. 그 외 모든 시간 속에서 맛은 그리움으로 변해서 사람들의 뼈와 살과 정서의 깊은 곳에서 태아처럼 잠들어 있다. 맛은 추억이나 결핍으로 존재한다."
<라면을 끓이며> 김훈
어쩌다 사랑하게 된 만두는 서울에서 런던으로 오는 짐가방 속 VIP 단골손님이다. 엄마표 만두는 특별하게 포장되어 두둑이 가장 안전한 곳에 자리한다. 여지없이 만두가 담긴 짐가방을 풀면서 서울 집의 향기를 느낀다. 런던 집에 도착한 날, 긴 비행 피곤을 달래주는 건 무조건 만두찜이다. 한 입 가득 넣고 씹는 만두가 주는 그 만족감을 어찌 말로 표현할까. 특별할 것 없는 만두소가 움텀움텀 고소한 육즙을 내밀며 씹히는 그 맛에 남아있는 여독은 금세 싸악 사라지고, 달랑달랑 달린 엄마 집 수다는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만두 하는 날은 수다가 풀리는 날이다. 500여 개의 만두를 빚으려 앉았으면, 입은 저절로 풀려 별소리가 다 나온다. 만두소는 온전히 엄마의 몫이다. 돼지고기, 소고기 간 것에 밑간은 미리 해 두고, 깊숙이 넣어둔 김장 김치는 흐르는 물에 한 번 씻어 총총총 썰어둔다. 부추는 그 어떤 재료보다 더 넉넉히, 숙주나물 삶아 잘게 다진다. 거기에 양파, 마늘 간 것을 첨가하고 생강까지 조금 넣어 두 손으로 가열차게 비벼주면 속이 완성된다. 아, 두부도 넣어야 한다. 물기를 빼고 으깨 넣으면 만두의 고소함은 한껏 오른다. 잘 익은 간장을 둘둘 돌려 간 해두고, 들깨 가루도 슬슬 슬 뿌려가며 잘 섞는다. 그러면 맛깔난 만두소가 날 잡아 잡수 하며 자태 고운 만두가 되기를 기다린다.
그러면 만두 빚는 일은 오롯이 내 앞에 떨어진다. 소를 많이 넣고 싶은 욕심으로 꽉꽉 채우다 보면 옆구리가 터져 못생긴 만두가 되고, 너무 욕심을 내지 않아 조금만 넣어두면 먹을 때 심심하다. 터지지 않을 만큼 그리고 먹을 때 한 입 가득 풍성한 만두소를 채워 넣다 보면 적당량의 소신이 생긴다. 바라고, 원하고, 하고 싶은 모든 일을 적당량의 소신으로 넉넉한 만두 먹듯 그렇게만 하면 좋겠구나 하는 괜한 생각도 더해본다.
만두가 한 오십 개 즈음 만들어지면, 커다란 찜통이 뿌우웅 신호를 보낸다. 찜통에 동그랗게 돌려가며 만두를 잘 넣어둔다. 다시 만두가 한 삼십 개 즈음 쟁반을 채우면, 찜통에 든 만두는 다 익어있다. 이런 속도로 만들고 찌다보면 500여 개의 만두 빚기, 그 긴 여정은 끝이 난다, 그 사이 식구들의 출출한 허기도 얼추 다 채워졌다.
"아, 다했다! 금방 했네~~~"
"금방 하긴 엄마, 벌써 몇 시간째야~ 담부터는 한 200개 정도만 해요."
"그거 해서 누구 코에 붙이니. 만들면서 먹은 것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
"나 이거 만드는 거 이제 힘들어. 다리 쥐 날 것 같아."
"앓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빈 그릇 가져다 씻어 둬."
"아니 그니까 담부터는 200개 정도만 하자고..."
"아니 그니까 그걸 누구 코에 붙이냐고!"
모녀의 도돌이표 대화가 노랫가락처럼 흐른다. 만들 땐 힘들어도 한소끔 쪄서 잘 담아놓은 만두를 보면 마음이 두둑하다. 라면에도 넣어 먹고, 쪄서 간장 양념에 콕 찍어도 먹고, 떡볶이에도 넣어 보고, 슴슴한 만둣국도 해 먹고, 김치찌개에도 넣어먹는다. 서울에서도 먹고, 런던에서도 먹으며, 이웃에도 나눠먹는 보름달 만두는 이제 내가 서울 엄마 집에 가면 꼭 하는 집안 행사로 자리 잡았다.
시골 큰 집 군불에 달아오른 아랫목 만두 수다는 이제 엄마와 나 둘만의 수다로 남았다. 그 수다가 잔뜩 담긴 만두는 이제 런던에서 아껴 먹어야 하는 소중한 것으로 등급 상향 조정되었다. 두 달 걸러 한 번씩 다니던 서울 집 방문이 코로나에 막힌 지 오래다. 냉동실 두둑하던 VIP 엄마표 만두가 바닥난 건 벌써 옛날이다.
친한 Y언니와 여느 때처럼 전화로 수다 중이다. 만두가 먹고 싶다는 동생의 투정에 언니네서 까짓것 만두, 한 번 푸지게 만들어 먹자는 제안을 한다. 사람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 넉넉히 나눌 줄 아는 우리 부자 언니. 언니는 뭐든 크게 크게 나눌 줄 아는 사람이라 나는 부자 언니라 가끔 놀리 듯 진심을 담아 표현한다. 신난다, 그럼 만두 회동을 소집해야겠구나.
회사 동료로 만난 우리 사이엔 해외 생활하면서 마음도 나누고 정도 나누고 있는 몇몇의 한국 동료가 있다. 우선 내 집 근처에 사는 C에게 합류하라고 제안해 본다. 그녀는 만두를 만들기 싫다는 솔직한 이유로 거절한다. 음... 그리고 S군, 개인적인 일로 저녁시간에야 잠깐 언니네 다녀갈 수 있단다. 그래도 참석한다니 그걸로 만족한다. 멤버는 셋, 얼씨구나 좋다!
우리 집에서 언니네까지는 차로 한 시간 반을 가야 한다. 영국에서 아직도 운전도 못하는 난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요즘 같은 때 타기도 부담스러운 기차로 언니네를 가야 한다. 기차는 타기 싫어 짝꿍에게 부탁한다. 역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승낙이다.
점심시간 즈음 도착한 언니네는 이미 꼬리곰탕과 LA갈비, 묵 잡채 등으로 한 상 가득이다. 1박 2일을 위한 짐을 챙기고, 만두 재료를 위해 한인 슈퍼마켓을 들렀다 오느라 분주하던 아침 시간 덕에 허기가 날카롭게 올랐다. 잔뜩 차려진 음식이 행복에 겨워 개눈 감추듯 점심을 해치우고, 수다 삼매경이다. 어쩜 이렇게 말이 맛있을까?
작은 체구에 나누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큰 언니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언제나 그녀의 곁에는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이 있고, 집으로 누군가를 초대하는 마음엔 가벼움과 즐거움만 있다. 그런 언니 곁에서 식사 대접을 받으며, 재미있는 이야기에 그저 박장대소와 추임새로 받아치는 난, 어릴 적 어른들의 대화를 엿듣던 그 시절 그 꼬마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S군이 샴페인 한 병과 함께 도착했다. 벌써 저녁 5시다. 수다 삼매경에 빠져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도 몰랐다. 이제야 만두소를 만들기 시작한다. 생전 처음 만두 소를 만드는 그 속을 누가 알까. 기억을 더듬어 준비한 재료를 섞어본다. 엄마 손 맛은 따라갈 수 없지만 구색은 갖췄다. 우왕좌왕 만든 만두 소에 숟가락 두 개를 꽂아 식탁으로 향한다. 만두피가 생각보다 두텁다. 이렇게 두터운 만두피로 괜찮을까? 어쩔 수 없지 일단 해보자!
Y 언니도 S군도 처음 만들어 본단다. 덕분에 난 만두 장인이 되어버렸다. 한 번에 500개씩 만들던 솜씨가 어디 갈까. 시작도 못하고 한참을 바라만 보던 S군이 만두를 만들기 시작한다. 투박한 손으로 이런 거 처음 해본다고 은근슬쩍 신나 하던 그 손놀림에 왜인지 모를 다정함이 묻는다. 언니는 만두피가 잘 안 붙는다며 찡얼거린다. 아, 귀여워라. 영국에서 그것도 Y언니 집에서 그렇게 셋이 만두를 빚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김치가 들어간 만두 소, 고기만 들어간 보통 만두. 쟁반을 달리하며 삐뚤빼뚤 만들어진 만두를 놓다 보니 어느새 이곳이 한국인지, 영국인지 알 길이 없다. 아, 단지 이탈리아 베로네세 레드 와인이 담긴 높은 와인잔만이 이곳이 영국이구나를 알려준다.
찜기를 찾기가 번거로워 물만두로 먹기로 한다. 펄펄 끓는 물에 들어갔다 나온 만두가 맛스러워 보인다. 두터운 만두피는 뜨거운 물에 불어 조금 더 두터워졌다. 의심스러운 눈으로 한 입 베어 문 만두피의 쫄깃함이 예상보다 훨씬 근사하게 만두소를 감싸고 있다. 간장을 조금 덜어 반으로 갈린 만두에 넣어 한 입 크게 먹으니 큰 집 아랫목이, 엄마와의 도돌이표 수다가 그대로 느껴진다.
저녁 내내 먹느라 찢어질듯한 배를 부여잡고, 집으로 가려는 S군에게 만두를 싸서 내어준다. 집으로 가는 그의 손에 들린 만두가 유난히 정스럽다. 어쩌다 좋아하게 된 만두에 또 하나의 그리움이 얹어졌다. 이 모든 건 결핍에 가까웠다. 말이 없어 조용했지만, 그 누구보다 말하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유년 시절, 엄마와 나누는 도돌이표 수다를 멀리서 그리워만 하는 딸, 해외 살이 중인 우리들의 채워지지 않는 그 어떤 허기.
그리고 그 결핍을 채워준 건 어쩌다 보니 만두였다. 만두를 만들던 시간에 둘러앉은 어른들의 이야기는 유난히 재미있었고, 엄마와 티카 티카 수다하며 긴 시간 붙어 앉아 만들던 만두엔 그리운 서울의 밤이 듬뿍 담겼다. 그 날 영국 Y언니네서 만두 만들며, 각자의 고향을 그리던 우리 셋의 시간은 다시 그리움으로 남을 게 분명하다. 그 그리움 덕에 어쩌다 좋아하게 된 만두의 등급은 다시 상향 조정되어 VVIP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음식에 추억을 쌓는 일이 삶을 부유하게 만든다는건 틀림없는 사실임을 다시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