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떠난 자리

누군가는 그 자리를 기억한다.

by 김라희

딩! 안전벨트 사인이 꺼짐과 동시에 승객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기내를 떠나려 발을 구를 때,

승무원들의 마음은 그제야 하늘을 날고 있다.


"cabin crew, after landing check"


사무장은 기내 방송으로 마지막 업무를 지시한다. 그럼 승무원은 본인이 맡은 구역을 훑어보며, 승객이 두고 간 물건은 없는지, 떨어진 소지품은 없는지 확인한다. 집에 갈 생각에 신이 난 우리의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기내를 채울 때, 누군가 내놓는 이 한 마디에 그 분위기는 이내 뭉그러진다. "와, 진짜 더럽다!" 비행이 끝날 때마다 바라보는 승객의 빈자리, 그 자리를 보며 매 비행 나를 포함한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이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


좁은 공간에서 12시간 동안 먹고, 자고, 휴식을 취하고 나면, 한 사람의 모습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남는다. 지금도 기억에 또렷이 남는 승객이 한 명 있다. 그녀는 B항공사 은퇴 승무원이라며 미소 섞인 인사를 먼저 건넸고, 음료 주문은 최대한 간단히 했으며, 식사는 서빙이 편한 메뉴 선택으로 바쁜 일손을 덜어 주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필요한 게 있냐는 질문을 건네면,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다시 미소를 보낸다. 역시, 승무원의 맘은 승무원이 잘 알아주는구나. 감사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승객들이 떠난 자리를 확인하고 있는데, 의자 위 곱게 접힌 담요에 하얀 메모지가 눈에 들어왔다. 은퇴 승무원이 앉았던 자리다. 자리 주변은 쓰레기 하나 없이 말끔했고, "Thank you" 손글씨는 정갈했다. 아직도 그 승객이 떠난 자리를 기억하면, 우아함이란 단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 우아한 기억은 거기까지다. 승객들이 떠난 기내는 말도 못 하게 지저분하다. 다시 만나지 않을 사이라 그런 것인지, 본인들이 지불한 티켓값에 청소비도 포함되었다 여기는 것인지, 그 속이야 알 수는 없지만 쓰레기가 즐비한 자리를 아무렇지 않게 두고 떠나는 승객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내 입맛은 언제나 쓰다.


간혹, 개인 쓰레기봉투를 준비해 12시간 동안 나오는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 한꺼번에 버리는 분들도 계신다.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지, 그 손길에 더 큰 미소를 건네고 싶다. 각자가 배출한 쓰레기를 기내 바닥이 아닌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건 기본 중 기본 상식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누구도 관여하지 않는 곳에서 상식은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쓰레기와 담요, 베개 거기에 음식 찌꺼기까지 함께 나뒹구는 처참한 모습을 마주하다 보면, 가끔은 인간애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런 게 사람인가, 이런 게 인간이란 말인가. 어쩔 수 없는 것들도 분명 있다. 기내를 처음처럼 말끔히 정리해야 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기본적인 것,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넣는다 혹은 플라스틱 봉투에 쓰레기를 모아 한쪽에 놓아둔다 혹은 베개와 담요는 쓰레기와 분리해 둔다 등의 기본적 상식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승객이 떠난 기내는 훨씬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을 것이다.


배려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태도라고 덧붙이고 싶다. 기내는 공적인 곳이기도 하지만 본인이 장시간 머무는 사적인 장소다. 주변을 더럽히지 않은 건 함께 자리를 나누는 옆 좌석 승객을 위한 배려이자, 모두가 떠난 자리 바라보며 한숨짓는 승무원들을 위한 배려이고, 청소하는 분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최소한의 배려다. 무엇보다 그 배려는 자신을 존중하는 방법으로 치환되는 선순환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버릇이 하나 생겼다. 호텔에 나올 때마다 이불은 정리해 두고, 쓰레기는 플라스틱 봉투에 담아 묶어둔다. 정리된 호텔방을 나오며 스스로 만족한다. 누군가를 위한 이 작은 배려는 결국 나를 위한 존중으로 돌아온다.


여행길이 그 어느 때보다 그리운 요즘,

비행기를 타고 내리며 남겼던 내 자리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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