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평양냉면을 대하던 태도를 돌이켜보면, 첫인상에 큰 의미를 두지 말자던 결심은 바람직하다는 확신이 언제나 든다. 허여 머얼 건한 국물에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 가락이 멋없이 풍덩 빠져 한 입 먹어 보아도, 두 입을 먹어보아도 저 밍밍해 아무 맛도 아니 차라리 진정 아무 맛도 없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이상 슴슴하게 맛없던 그 첫인상. 이런 건 왜 돈 주고 먹을까? 했던 그 첫인상 때문에 다시는 먹지 않겠다며 평양냉면을 멀리하던 세월이 몇 년인지. 아까워 죽겠다.
몇 해전부터 이것이 그렇게 좋다. 부모님 댁에 오면 근처 평양냉면집에 최소 두세 번은 들러 계절에 상관없이 꼭 먹곤 한다. 지금은 맛집으로 널리 알려져 시간을 잘못 맞추기라도 하면, 긴 줄을 서야 하는 불편함도 겪지만 그래도 한 끼 담백한 국물이 그리울 때면 기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그런 곳이다.
첫인상을 깨 보자 싶었던 건 어느 해 겨울이다. 만두 먹으러 들어갔는데, 웬일인지 그 날은 평양냉면 한 번 다시 먹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속는 셈 치고 시도해보자며, 그 허여멀근한 냉면을 한 입 두 입 먹는 사이 첫인상과 다르게 국물의 담백한 깔끔함이 단숨에 느껴진다. 한 그릇을 다 비워갈 때 즈음 그 깊은 맛에 쏙 빠져버렸다. 또다시 한 그릇을 시켜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볼록 부른 배 덕분에 겨우 나왔다.
[좌: 을지면옥, 우: 서북면옥, 사진: 김라희]
다시 만난 평양냉면 맛을 아직 입에 담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왜 이제야 이 깔끔함을 알았을까? 이 담백함을 모르고 산 세월이 좀 억울하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입맛이 변해서 내가 변한 것인지, 내가 변해서 입맛이 변한 것인지 구분이 어렵다. 혹시 맛을 분별하게 된 걸까? 맵고, 짜고 단 그 원초적 맛의 한 겹을 걷어내고, 그 너머 담백한 맛을 분별하게 된 걸까?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깊이 한 겹 들어간 그 맛을 알면 내가 인생도 알지. 아직도 갈 길만 멀다.
평양냉면을 먹다 보면 덜어내는 일에 대한 생각을 한다. 이리 다 걷어낸 무미에 가까운 맛에 가득 담긴 깊은 내공은 무엇인가. 어떤 단단함이면, 이렇게 끝까지 다 덜어내고도 당당히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인가. 런던으로 돌아갈 날을 한 주 앞두고, 넉 달 동안 창고에 쑤셔 박혀 있던 여행가방을 꺼냈다. 햇볕 아래 옹크리고 서 있는 가방을 가만히 보자니 서울만 다녀가면 위, 아래, 앞, 뒤 불뚝불뚝 튀어나와 일상의 잡다한 물건과 음식을 담아 비행기에 실어 나르는 가방이 좀 딱해 보였다. 좀 더 덜어내 보려고 했다. 엄마가 편찮으시니 음식도 가져갈게 별로 없었다. 옳거니, 이것은 알아서 덜어졌다. 책도 그만 사보려고 노력했자. 다시 와서 읽으면 된다. 아주 다시 오지 않을 사람처럼 짐을 싸지는 말자. 덜어내고, 덜어내자.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복잡해진 마음을 단순하게 전환하는 것이 담백함'이라 했다.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모든 것을 포용하는 마음' 이것이 평양냉면이고,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는 것' 이것은 여행가방이다. 런던행 티켓을 끊고, 부모님을 두고 다시 멀리 가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울 것 같던 그 여름, 평양냉면 한 그릇 비우고 돌아오던 길에 무미 이 담백한 맛을 가볍게 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