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해 엄마

by 김라희

작년 이맘때가 선명하다. 12월 1일, 내 생일을 맞아 서울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갑작스레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마침 9일간 비행이 없었고, 서울 부모님 댁에서 최소 6일은 머무를 수 있으니 잘 됐다 싶었다. 부모님도 딸이 온다니 신이 나셨다.


올 해는 김장을 같이 할 수 있으니, 이게 몇 년만이냐며 딸이 좋아하는 굴도 잔뜩 준비해 두셨단다. 보쌈용 김치에 굴 잔뜩 넣고 만들어 두터운 수육에 잘 싸서 먹자 하신다. 작년에는 거의 두 달에 한 번씩 서울을 다녀왔던 터라 딱히 딸이 온다는 기쁨보다 김장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더 크다고 하셨다. 온 식구 대동해서 김장 다 담가두고, 그 다음날 점심은 근처 중식당에서 하기로 계획했다. 맛있는 삼선 짬뽕과 짜장면 무엇보다 바삭하게 튀겨낸 꿔바로우를 먹으러 갔다.



중식당까지 걷는 길이 참 좋다. 깊은 가을빛에 남은 단풍이 한 낮을 빛내고 있는데, 엄마는 안색이 별로다. 언제나처럼 엄마 앞에서 말 많은 난 조잘조잘 떠들다가는


"엄마 오늘 반응이 별로네? 피곤해요?"

"아니 괜찮아. 계속 말해 봐."


다시 조잘조잘하는데 엄마 반응이 썩 내키지 않는다.


"엄마 많이 피곤하면 집으로 돌아가고, 괜찮아 정말?"

"응 정말 괜찮다니까. 아, 오늘 하늘 참 좋다!"

"근데 왜 반응이 그리 미적지근하지? 이상하네..."

"뭐 엄마 이상한 거 없는데, 뭐가 미적지근하다는 거야?

괜한 트집 하지 말고 어서 말이나 이어가 봐."

"응 그럼 괜찮고. 그래서 그게 말이야 엄마....."


그렇게 혼자 신이 난 수다를 하다 보니 어느덧 중식당에 도착했다. 다행히 인파가 들이닥치기 바로 직전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밖으로는 줄이 늘어선다. 계획했던 대로 주문을 하고 앉았는데, 엄마 안색이 여전히 좋지 않다. 재차 다시 묻기도 그렇고 먹는데 다시 집중한다. 당시 유튜브 채널을 오픈해볼까 계획하던 터라 카메라를 만지작하느라 바쁘기도 했다.


추운 날 밖에 선 사람들에게 미안하니 어서 먹고 나가자고 하신다. 엄마는 항상 다른 사람이 먼저다.

그런 엄마에게 난,


"우리도 먹고 있잖아요. 천천히 드세요. 다른 사람 걱정 말고."

"얘 그래도 그런 게 아니야. 분명 근처에서 일하시는 분들인데, 어서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야잖니."

"엄마, 우리도 여기 점심 즐기러 왔어요. 왜 자꾸 재촉이에요! 먹다 체하겠어"


결국, 좀 서둘러 점심을 마치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기분이 언짢았던 나는 결국 엄마에게 불만 섞인 말을 내어놓았다.


"왜 엄마는 항상 남들 배려만 하느라 바쁜 건데요?

우리가 먼저 들어가 앉아있으면, 우리 먼저 먹고 들어오는 게 순서잖아.

엄마가 너무 남들 먼저 생각할 때마다 이해가 안 돼."

"그래 네 말도 맞지만, 줄이 길었잖아. 그리고 추웠고.

서둘러 먹고 나올 수 있으면 그렇게 나오면 되지.

다음부터는 좀 늦게 가자. 그리고 그만 말해 너!"


내 볼매인 소리가 듣기 싫으셨는 마지막 말에 언성이 좀 높았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잠시 걸었을까? 엄마가 안색이 더 안 좋으시다.


"나 아랫배가 아까부터 너무 아팠어. 빨리 가자."

"괜찮아 엄마? 아랫배가 어떻게 아파? 택시 타자."

"아니 택시 탈 정도는 아니야. 날도 좋은데 걷자. 조금만 빨리"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바로 누워 한참을 잠들어 계셨다. 병원에 가자해도 잠깐 지나가는 것이니 괜찮다고만 하셨다. 엄마 여기저기 아픈 거야 하루 이틀일은 아니라며.





딱 일 년이 지난 지금 엄마는 올 해도 용돈을 송금하시며, 딸의 생일을 축하해 주신다. "미역국은 먹었니? 잡채라도 해 먹으렴. 옆에 있으면 엄마가 챙겨주는데, 이럴 땐 참 맘이 그렇다." 14년을 떨어져 사는데 엄마의 레퍼토리는 그대로다.


올 한 해는 위로를 참 많이 받았다. 엄마의 암투병 소식에 어떻게 말을 건네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몸짓으로 조심스레 말을 건네는 사람들부터 생전 만나보지도 못한 타인으로부터의 위로까지. 힘내라는 위로와 함께 여름을 겨우 보냈다. 보통은 생일 축하를 받는 게 쑥스러워 SNS 모든 알람을 꺼두고 조용히 지나려는데, 올 해는 이상하게 기쁜 축하를 받고 싶다.


초등학교 3학년, 친구들을 잔뜩 초대해 두고 아침을 기다리던 밤의 설렘이 그리웠다. 밤 새 소복이 쌓인 하얀 눈은 마치 내 생일을 위한 축하인듯 그런 행복감을 유독 느껴보고 싶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내 생일이 다가오면 이 말씀을 한 해 걸러 한 번씩은 꼭 들려주셨다.


"너 태어나던 그날도 얼마나 추웠던지... 네 엄마는 임신 중독으로 고생 중이었고, 진통이 와서 병원 가고 아주 한참을 기다려도 안 나오는 거야. 애만 바짝 태우고 있는데, 핏덩이 네가 먼저 나오고 다시 한참을 지나도 네 엄마는 안 나오는 거지... 그래서 우리는 무슨 일이난 줄 알고, 의사 간호사 찾으며 난리였고. 근데 엄마가 머리끝까지 하얀 이불을 덮어쓰고 나오는 거야. 난 둘째 며느리가 죽어 나오는 줄 알고 주저앉았단다."


생일이면 딸 축하하느라 바쁜 엄마의 말을 듣고 있자니, 12월 1일 병원서 날 낳느라 고생한 엄마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마 병간호하면서 병실에 누워 계시던 엄마를 자주 봐서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쑥스럽지만 173cm 거인 딸 낳느라 고생 많으셨다 톡을 보냈다. 그리고 엄마는 할머니가 해주셨던 얘기를 처음 들려주신다. 그리고 오래오래 티격태격하며 살자고 말씀하신다. 반갑고 또 반갑다.


엄마는 여기저기 아픈 게 일상이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날, 난 엄마를 모시고 병원으로 갔어야 했다. 대수롭지 않은 건 없다. 그리고 진작부터 내 생일 축하는 엄마도 함께 받아야 했다. 오랜동안 엄마에게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오늘 내가 받고 싶던 기쁜 축하는 엄마에게 모두 돌리고 싶다.


화선씨 큰 일 하셨어요!

축하해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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