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 할머니 식탁에 한 달여간 앉아보니, 한국 음식이 무척이나 그립다. 혹시 몰라 가져온 컵라면도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그때까지만 해도 브라이튼(Brighton) 어디에 한국 슈퍼마켓이 있는지, 어디 가야 라면이라도 구할 수 있는지 그저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한 스무 날 정도 발품을 파니 그제야 자연스레 동네도 익숙해지고, 사람들도 알아갔다. 그리고 할머니 집에서 버스로 15분 정도 떨어진 호브(Hove)에 가면 한국 식재료를 구할 수 있다는 정보도 얻었다. 그저 그것 하나만으로 그 근처로 이사 가겠다 마음먹었다. 두 달여의 홈스테이가 끝나갈 무렵, 호브 바닷가 앞 2층 집에 방이 하나 있다는 광고를 지역 신문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바로 공중전화 박스로 들어가 동전을 넣고, 다짜고짜 "Hello, I've seen the advertisement... "라며 버벅거리는 영어로 여전히 방이 비어있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 너머 들려오는 영어 발음이 낯설지 않다. 내가 먼저 "혹시 한국분이신가요?" 질문을 건넸다. "아! 네!"라는 대답과 함께 바로 약속 시간을 정하고, 그 집으로 한 걸음에 달려갔다. 주인집 한국인 커플, 폴란드 여자 한 명과 집을 셰어 하는 구조였는데, 천장도 높고,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집이었다. 깔끔하고, 바닷가 앞 노을이 멋있게 떨어지는 창도 있으며, 무엇보다 한국 슈퍼마켓이 지척이니 그걸로 대만족이다. 그렇게 이삿날을 잡아두고는 할머니 집 2층 방에 누워 무슨 음식을 제일 먼저 해 먹을까 밤마다 고민하는 게 낙이었다. 진짜 별거 아닌 음식이 떠오른다. 그 리스트 중 제일 처음은 해물 부추전 그 뒤로 비빔국수, 열무 비빔밥 그리고 후라이드 치킨이 뒤를 따른다. 꼽다 보니 거의 100여 개의 음식이 리스트에 올랐는데, 아쉽게도 거의 대부분 당시 부족한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해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더 이상 조이스 할머니의 삶은 야채를 먹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한 해방감과 함께 당당히 1등을 차지했던 부추전을 해먹을 요량으로 한국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는 소박한 오뚝이 슈퍼. 그게 어딘가. 제일 먼저 부침가루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부추를 찾는데... 없다. 일단 담을 수 있는 걸 담아본다. 김치, 쌀, 짜파게티, 오징어 짬뽕 등 살림 빠듯한 유학생의 지갑이 그날만큼은 활짝 열렸다. 그렇게 양 손 무겁게 쟁여 온 식재료를 정리해 두고 부침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해물과 부추가 빠졌다. 다시 근처 테스코 (TESCO)에 들러 모둠 해물 한 팩을 담고 부추를 찾는데 없다... 아쉬운 대로 많은 양의 파를 샀다. 그렇게 영국에서 제일 처음 해 먹은 음식이 라면을 제외하고는 해물 부추전이었다.
비가 오면 기름 냄새 풍기며 눅진한 하루를 보내는 DNA가 어디라도 숨어 있는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집 안 가득 울려 퍼지는 기름 냄새에 자동 반사적으로 주인 부부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함께 먹을 생각으로 반죽을 넉넉히 해 두길 잘했다. "우리 집에 부침개 냄새가 나는 건 처음이에요." "정말요? 전 부침개를 너무 좋아해서... 혹시 기름 냄새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은 신지...?" 조이스 할머니를 제외하고 누군가와 사는 첫 경험이라 모든 게 조심스럽다. "무슨 말씀을! 편하게 쓰세요. 여기는 라희씨 사는 집이기도 하니까." 바삭하게 구운 해물 파전을 잘 담아 그들에게 건넸다. 고추 송송 썰어 넣은 간장 양념에 콕 찍어 맛있게 드시라며, 잘 부탁한다는 인사와 함께.
부침개가 이삿떡을 대신하다니, 그것도 영국에서. 그 덕분인지 이사 나올 때까지 서로 도움 주고 받으며, 별 탈없이 지내긴 했다. 그 후로도 제일 만만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커다란 만족감을 주는 간식거리는 단연코 부침개다. 내 엄마 말로는 부치미. 냉장고 털이가 필요하면, 칼과 도마를 무기 삼아 총총총 남은 채소를 썰어 부침 가루 반죽에 넣어 지져 먹는다. 당근 부침개, 샐러리 부침개, 버섯 부침개 등 영국에서 진화한 내 부치미의 재료들을 엄마와 나누면, 그건 그저 냉장고 털이용이라며 제대로 쳐주지 않으신다. 뼈 속 깊이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리면 결코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항상 먹고 자라 인이 박힌 음식들이다. 김치찌개, 떡볶이, 미역국, 잡채, 라면, 갈비찜 등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겐 부침개. 누가 이걸 그리도 먹고 싶게 만들었단 말인가.
내 경우, 결과적으로 이건 다 엄마 탓이다. 엄마 밥을, 간식을 꼬박 먹고 자라 밖에서 배운 음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엄마 손길에 길들여졌다. 주로 엄마는 식구들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식탁을 채우곤 하셨지만, 부침개만큼은 본인의 취향을 그대로 우리에게 물려주셨다. 비가 오면 물론이요, 비가 오지 않아도 입이 궁금할 때면, 식구들의 좋고 싫음과는 관계없이 부침개는 어느새 그 궁금한 입을 채우고 있다. 김치전부터 부추전을지나 메밀전까지. 우리 식구는 그렇게 엄마의 취향에 길들여졌고, 해물을 좋아하는 가족의 취향이 반영된 해물 부추전 혹은 매콤한 해물 김치전은 가족의 의견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같은 집에서 끼니를 함께 하는 식구 그리고 그 끼니를 책임지는 대장은 우리 집에서는 엄마였다. 그것이 엄마의 선택이었을 리는 없다. 그렇게 당연한 듯 살던 모습이 너무도 많았으니. 내 엄마는 손맛이 좋으셨다. 모든 엄마가 다 그럴 수는 없으니 그것은 다행이다. 당연하다 생각하는 건 오류다. 반드시 엄마가 식구의 대장이 되어 주방을 책임져야 하는 세상은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결국 나에겐 엄마다. 이리도 해물 부추전을 먹고 싶게 만든 사람 말이다. 비와 부침개, 이 환상의 조합을 물려주려 쏟은 엄마의 시간과 정성만큼 식구들 사이 추억과 정은 깊게 쌓였다. 그렇게 길들여진 입맛은 어디 가지 않았다. 어딘가 숨었다가 불쑥 튀어나와 심장의 어딘가를 쿡쿡 쑤셔가며 해외 생활을 자주 곤란하게 했다.
그래서였을까? 얼마 전 중국 김치가 국제 표준이라며, 김치는 본인들의 것이라 주장하던 기사를 읽고는 할 말을 잃었다. 우리네 엄마들이 만들어 식구들 입에 넣어 준 세월이 얼마인데, 갑자기 중국의 것이라던 그들의 말에 어이없는 실소가 나왔다. 한 해 두 해일도 아니고, 아리랑부터 판소리까지 다 걸고 넘어지려는 억지스러움이 김치까지 이르니 화도 난다. 그건 우리네 엄마들이 쌓아온 정성의 시간을 도둑질하는 짓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식구들의 밥상을 책임지는 대장이 쏟은 시간은 무형 문화다. 부침개를 최고의 간식거리라 치는 건 김 씨와 배 씨가 만나 만든 김배가네 간식 문화고, 비와 부침개의 조합은 한국의 무형 문화다. 그러니 영국에서도 비만오면 부침개가 자꾸 떠오른다.
여기서도 전을 지지는 손길은 멈추지 않는다. 게다가 이곳은 습한 날이 많으니 기름 지지는 냄새는 더욱 흥을 돋군다. 흐르는 기름 냄새에는 어릴 적 요리하던 듬직한 엄마 모습도 되어 봤다가, 설거지거리는 바로바로 치워우라는 엄마의 잔소리도 들었다가, 양념장 손가락에 찍어 맛보며 동생과 키득키득거리던 어릴 적 모습까지 다 담겨있다. 브라이튼에서 처음으로 해 먹고 싶던 음식마저 엄마가 정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 부침개에 들어가는 재료는 그 모습을 바꾸더라도, 밑바탕에 담긴 엄마의 부치미는 다시 내 손끝에서 이어진다. 한국을 떠나 사니 이런 사소한 게 먹고 싶고 그립다. 어쩌나... 쓰다보니 오늘도 부치미가 먹고 싶어진다. 냉장고 뒤져 부추전이든, 배추전이든 무어라도 한 장 부쳐내야겠다. 비는 오지 않지만, 웬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