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온 지 벌써 4개월이 지나간다. 런던 집에 와서는 매일 부모님과 통화하면서 엄마 컨디션 및 일상생활을 듣고 있다. 엄마가 아프시기 전에 엄마의 안부는 언제나 "좋아, 아주 좋아 혹은 별일 없어."였고, 엄마보다 좀 더 현실적이고 솔직하신 아버지는 "항상 같다. 별 거 있냐 매일 오늘 같으면 그게 제일이지."라 대답하셨다. 딱히 별 일이 없으면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런던 생활이 좀 바쁘고 여유가 없으면 한 달에 두, 서너 번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곤 했다.
요즘처럼 전화로 매일 안부를 나누다 보니, 좋은 건 할 말이 점점 더 늘어간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이클링, 엄마의 운동법, 식이요법 등 대화의 주제는 주로 건강과 관련된 것이지만, 그 속에는 실없는 농담도 더 많이 늘어가고, 그 날의 에피소드도 시시콜콜 들어있다. 그리고 꼭 빠지지 않고 여쭙는 질문도 몇 개 있다.
"간밤에 잘 주무셨어요?
화장실은 잘 다니세요?
식사는 맛있게 드셨어요?"
별 것 아닌 질문이지만, 항암 치료를 하고 계신 엄마와 그 옆에서 엄마를 돌보고 계시는 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확인 포인트다. 3주의 사이클로 병원에서 항암약을 맞으시는 엄마는 약을 맞으려면 2박 3일을 병원에 입원해 계시고, 아버지는 엄마 곁에서 쪽잠을 주무신다. 그 생활이 올 5월부터 12월까지 꼬박 7개월째다. 그러다 보니, 잘 드시고, 잘 주무시고, 오늘도 시원하게 화장실은 잘 보셨는지를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안다. 그것만 문제없으면 나머지 대화는 그저 다 즐겁고 감사하다.
어느덧 수술 후 7차 항암이 지난주에 끝났다. 약을 맞고 퇴원한 날부터 3-4일은 속도 메슥거리고, 기운도 없으시다고 하셨다. 이번에는 위가 좋지 않아 식사를 오트밀과 죽등 유동식으로 며칠을 드셨다고 하신다. 다행히 이번 월요일부터는 기력을 다시 찾으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힘과 생기가 돈다. 그러면서 당부를 하신다. 건강을 잃어보니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며, 건강이 제일이라는 게 그냥 하는 말은 절대 아니니 꼭 병원을 곁에 두고 건강할 때 잘 챙기라고. 그 끝에 엄마는 동창 친구분들과 하는 여행 모임을 탈퇴해야 하는지, 회비는 안 내고 있긴 한데, 그걸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내어 놓으셨다.
"글쎄 엄마... 탈퇴를 굳이 해야 하려나? 회비는 내지 않더라도, 친구분들이 엄마 건강 회복하면 같이 다니자고 했다면서. 그니까 그냥 두세요. 그러다 가고 싶은 곳이 있고, 건강이 허락하면 회비 내고 같이 가면 좋지."
"그래도 그게 뭐니. 회비도 안 내고... 어쩔까 고민이다."
"에이, 엄마 그 깍두기 알죠? 왜 우리 어렸을 때 숨바꼭질이나 얼음 땡 할 때 그 깍두기. 엄마가 그 깍두기 하면 되겠네요. 그렇게 있다가 가고 싶으면 가고, 갈 수 없으면 다음에 가고. 굳이 탈퇴해서 가고 싶고, 건강도 허락하는데 못 가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깍두기...? 흠... 그래, 엄마 함 생각해 보자. 근데 아프니까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이 없어진다. 그게 제일 어려워. 서운한 것도 많아지고."
"그렇지... 나 얼마 전에 어떤 분이랑 통화했는데, 그분도 암투병 기간 동안 가장 어려운 감정이 서운함이었다고 하더라고. 아프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경지의 서운함을 느꼈다며... 그 서운한 감정을 잘 다스려야 아픈 기간 동안 그래도 좀 수월하게 보낼 수 있다면서, 엄마한테 더 잘하라고 하시더라고, 안 그래도."
"그래 엄마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요즘은 서운함 속에서 다시 성장하는듯한 기분이 들 정도니 말이다..."
"그니까. 엄마도 서운한 거 느끼면, 속으로 담지 말고 말해줘. 딸한테는 다 말해도 괜찮으니. 그리고 엄마 그 여행 모임은 그렇게 깍두기로 잠시 있어보는 걸로 생각해봐요. 그리고 건강 회복하면 회비 다시 내면 되잖아. 너무 크게 신경 쓰지 마셔요."
"그래 알았어, 생각은 해보마."
이렇게 대화를 끝내고는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브런치 북 fresh 작가의 <나는 암투병을 그만두겠습니다.>를 우연히 읽고, 어느 한 부분에서 심장이 퉁 떨어지는 듯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깍두기는 사절입니다."를 읽고 나서... 엄마에게 그저께 한 말이 떠올랐다. 작가는 본인의 암투병 생활에서 살아있기만을 목표로 두고 세상에서 깍두기처럼 살고 있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씁쓸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깍두기의 혜택이 아닌 술래에 잡히더라도 아슬아슬 즐기며 살고 싶은 마음을 적극적으로 말했다.
다시 아찔했다. 난 의도치 않게 엄마를 서운하게 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깍두기가 생각났을까 그리고 왜 이 깍두기는 사절이라던 fresh 작가의 글은 왜 읽은 것일까. 누군가 내 머리 위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 것만 같다. 오늘 아침 엄마와 통화하던 중 내 깍두기 발언에 대해 다시 얘기를 꺼내보려 했다. 그런데 다행히 엄마는 어제 남동생으로부터 들은 손자 손녀의 에피소드를 전해주시느라 너무 신이나 있으셨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자 하고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분명 엄마도 그런 생각이었을 수 있다. 모임에서 언제나 활동적으로 참여했고, 목소리도 크게 내며 존재를 드러내던 본인의 위치가 어정쩡해진다 싶으니, 차라리 그럴 바엔 나오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 그리고 누구라도 엄마의 탈퇴 결정을 지지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딸에게 의견을 구한 건 아니었을까. 그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 깍두기 발언으로 엄마를 위로하려 했으니... 그 말을 들으시곤 어떤 심정이셨을까.
건강을 잃어보니 할 수 없어진 게 너무 많아 힘들다는 말을 좀 더 깊이 들었어야 했다. 듣는 사람으로 상대가 어렵게 내어놓는 말을 속 깊게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는 되었는가. 다시 물어본다. 여행 모임에서 잠시만이라도 깍두기로 남아있으라는 딸의 제안 속엔 사회적 존재로 뚜렷이 위치를 드러내고 싶은 엄마의 바람을 고려치 못했다. 혜택 같지만 혜택이 절대 아닌 깍두기의 삶이 엄마도 분명 탐탁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탐탁지 않은 자신의 위치에 서운함과 좌절감으로 까만 밤을 보내셨을 수도 있다. 서운함에 성장하는 듯하다던 엄마의 말이 다시 다가온다. 이것도 엄마 삶의 한 부분이고, 분명 본인만이 해결해 나가야 할 부분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가족이 함께 나눠갈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건강을 회복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보내는 시간은 어떠한 것일까 생각해본다. 건강은 물론 중요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유일한 목표로 두지는 않는다. 건강은 당연한 것, 거기에 무엇이라도 더한 목표를 향해 걷는다. 그 사람들 틈에서 당연한 건강을 찾으려 느리게 걷는 듯한 엄마의 시간은 어떤 것일까? 그렇게 지나는 이 시간을 엄마는 어떻게 느끼고 계실까? 자칫 허무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난 가족 안에서 엄마의 위치를 다시 재확인시켜드리고만 싶다. 그리고 이제 그 노력은 사회적인 부분까지 함께 고려해 봐야 함을 느낀다. 깍두기로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