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

올 해 유독 그리운 것

by 김라희

승무원 면접에서 받은 질문 중 기억나는 게 하나 있다. "이 일은 크리스마스나 연휴에도 일을 해야 할 수 있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매일 운항하는 일정이니 누군가는 연휴라도 일을 해야 한다. 매일을 크리스마스처럼 지내기 때문에 비행 일정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했다. 승무원이 되기 위한 면접장에서 그건 좀 곤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니... 그런데 정말 괜찮았다. 다만, 12월 31일과 1월 1일만 집에 머무를 수 있다면.


거의 해를 건너 한 번씩 크리스마스 비행을 했다. 선배들은 크리스마스 당일 비행은 차라리 낫다고 위로했다. 좌석의 반은 비어갈 수도 있다고 하면서. 그런데 웬걸 내 비행은 언제나 만석에 만석이었다. 12월의 하이라이트 크리스마스를 비행으로 보내도 괜찮다고 여겼던 이유 중 하나는 승무원끼리 나누는 초콜릿 그리고 산타 장식을 머리에 꽂아도 상관없는 작은 이벤트 때문이기도 했다. 그루밍에 까다로운 회사지만, 그 날만큼은 머리에 산타 핀을 꽂아도, 귀걸이로 리스 장식이 들어간 반짝반짝 커다란 것을 끼어도 괜찮다. 잠깐의 축제 같은 분위기에 서로에게 미소 짓고 더욱 친절한 그 따스함이 맘에 들었다.


친절한 분위기만큼 좋아했던 게 또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사무실 우편함이다. 지금은 사무실 위치가 변경되면서 우편함이 사라졌지만, 회사 입사하고 4년 차까지는 이 우편함의 다정함에 푹 빠졌었다. 여행 다녀온 동기가 슬며시 넣어 둔 타일랜드산 핸드메이드 지갑이라던가 유럽에서 돌아온 동료가 넣어 둔 초콜릿 혹은 프랑스 산 샴푸 등 서로가 작게 나눌 수 있는 친절한 마음이 그곳에 듬뿍 담겨 있었다. 사회생활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 그리 흔치 않았기 때문에 이 작은 우편함을 열어보는 마음은 꽤 자주 설레었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우편함이 터져나갈 듯했다. 높이 약 10센티, 크기 A4 용지만 한 작은 우편함에 다 담을 수 없는 선물은 우편함 꼭대기에 올려진다. 그리고 선물을 찾아가라는 작은 메모만이 우편함 속에 남겨졌다. 얼마나 다정한 마음인지, 주고받는 선물 속에 싹트는 동료애를 무시할 수 없다. 12월이 되면, 비행 일지를 열어두곤 우편함을 터져나갈 듯 채우는 일에 나도 열심히 동참했다.


자주 비행했던 크루들, 도움을 받았던 사람 혹은 밥과 차를 한 번이라도 나눈 사람들의 이름을 추슬러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렇게 매 년 12월 시작과 함께 한 해를 같이 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리다 보면, 나눴던 대화, 비행기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함께 걷던 시간 그리고 맛있게 먹던 식사와 따뜻한 커피 등 모든 시간이 다시 송송 떠올라 마음은 어느새 평화롭고 따뜻해졌다. 선물을 고르는 동안, 곱게 그것을 포장하고 짧은 메시지를 적어 내려가는 순간까지 모두, 되려 나에게 주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다정함과 친절함을 표현하는데 어색함을 갖는 난, 이럴 때 핑계 삼아 맘껏 그것을 표현해보고 싶다. 친절함과 다정함에는 대가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던 젊은 날의 오해는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풀려갔다. 물론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게 결론이다. 작게 나누는 다정함에 함께한 공간은 좀 더 평화로워지고, 대가 없이 나누는 친절함에 마음은 어느덧 따뜻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받다 보면, 자연스레 주고 싶은 마음도 들게 된다.


올 해도 어김없이 12월이 되어, 함께한 얼굴들을 떠올리려는데 많지 않다. 그리고 무엇이라도 나눌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할 수 없으니 마음이 허전하다. 3월 이후 멈춰진 비행 스케줄에 동료들의 얼굴은 잊혀지는 듯싶고, 자유롭게 다닐 수 없으니 친구, 지인들과의 약속은 사라져 갔다. 다정함과 친절함은 북적북적 에피소드 가득한 일상 안에서 가득하다. 대신 올 해는 이웃들에게 더 감사하게 된다. 그들에게 나누는 초콜릿과 크리스마스 카드 덕분에 소소한 다정함을 잠시나마 느낀다. 며칠 전 지인의 인스타그램 해쉬태그로 만난 문장이 하나 있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 결국 세상을 구하는 건 우리 마음속에서부터 시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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