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떨쳐지지 않는 그런 날이 있다. 그 날 우리 가족의 기다림은 조금은 더 두터워졌고, 아주 많이 깊어졌다. 처음 보는 엄마의 꽉 감은 눈, 2020년 7월 21일. 침대 위 앙상한 엄마는 질끈 감은 그 눈으로 파란색 유니폼 무표정한 간호사의 건조한 발걸음에 이끌려 수술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병실이다.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수술을 끝내고 막 돌아와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을 하던 내 또래의 여자 그리고 하루 종일 장을 비워내느라 물약과 씨름 중인 내 엄마 그렇게 병실을 누르고 있는 두 사람 그리고 51 병동 복도를 끊임없이 걸어 다니는 환자들과 의료진. 아픈 사람에게는 걷는 게 보약이란다. 그래서 무조건 수술 후에도 많이 걸으란다. 주렁주렁 약 주머니 달고, 히꺼먼 얼굴로 복도를 걷는 사람들, 모두 낯설다.
엄마는 하루 종일 500ml, 8병의 물약을 다 마셔야 한다. 그 냄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신물이 오르는데, 꿀꺽꿀꺽 다행히 잘 들이키신다. 몇 모금을 넘기면, 바로 화장실 행이다. 그렇게 마시고 비우느라 바쁜 엄마와 틈틈이 대화를 나눈다. 그동안 삶은 우리에게 얼마나 복 받은 날들을 내어주었는지 그 고마움만 얘기하는 중이다. 똑똑똑, 의사다.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해야 한단다. 면담 시간은 길었다. 절제될 부위와 예상하는 부작용을 꼼꼼히 들으며 난 열심히 메모했고, 엄마는 한숨을 깊게 쉬셨다.
내일 아침 8시 30분, 수술을 위한 기다림만 남았다. 엄마는 집에서 가져온 책은 모두 읽으셨고, 한 권을 더 부탁하셨다. 이해인 수녀의 시집이 있으면 사 오라고 덧붙이신다. 땡볕이다. 서점으로 가는 길, 사람들 발걸음만 가볍다. 그리고 다행히 한 권이 남았다. <기다리는 행복>
오후 시간 내내 화장실을 벗 삼아 <기다리는 행복>을 읽고 계신다. 넘어가는 책장에 떨리는 손을 바라보고 있자니 불안이 느껴진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여전히 엄마 눈에는 매운 빛이 가득이니. 긴장의 떨림이 눈빛까지 오르지는 못했다.
저녁 시간, 엄마와 함께 밤을 보내려는 아버지께 병실을 맡기고 병원을 나왔다. 저녁 공기가 후덥지근 불쾌하게 달라붙는다. 걷는 길이 내키지 않아 택시를 탄다.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열 시간이 넘는 수술 시간을 엄마는 잘 버텨 줄 수 있을까, 그 많은 장기가 떨어져 나가도 살 수 있을까. 흔들리는 엄마의 존재가 명치끝에 매달린다.
수술 날, 퍼붓는 비를 뚫고 병원에 도착했다. 여느 날과 같이 엄마는 웃으며 날 반기신다. "굿모닝, 딸 왔어? 나 어제 잘 잤어." 코로나 때문에 병실에는 가족 한 사람만 남을 수 있다. 면회자 명단에는 빼곡히 우리 셋, 아버지, 나 그리고 남동생의 이름이 번갈아 적혀있다. "배 안 고파 엄마?" "야, 어제 그렇게 비워냈는데도 배가 안 고프다. 너무 신기해!" 천진하게 건네는 엄마 표정에 그저 나도 따라 웃는다.
남동생은 어제 답답한 마음에 술을 마셨단다. 아침은 라면으로 해결한다. 아침 생각이 없으시다는 아버지에게 죽이라도 드시라 당부했다. 카페와 정원이 있는 5층 바닥이 빗물로 흥건하다. 어지간히 와야 말이지. 많이도 온다, 유난히.
간호사분들은 시간에 맞춰 수술 준비를 끝내려 여기저기 분주하다. 조금 지나 남자 간호사 두 분이 엄마를 모시러 왔다. 병실에서 별 말없이 엄마를 간호사 두 분께 부탁하고 우리는 모두 3층 수술실 앞에서 엄마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저 멀리 남자 간호사의 손에 이끌린 침대 속 엄마 얼굴이 보인다.
이제야 몸이 실감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할 수 없이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진정시키며,
"엄마, 걱정 말고 한 숨 푹 잔다고 생각해. 그러고 나면, 더 좋아져 있을 거야."
"알았어, 너도 밥 챙겨 먹으며 기다리고 있어."
아버지도, 남동생도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들어가는 엄마를 다시 불러 세운 건 아버지였다.
"걱정 마러, 다 잘 될 거야.
우리 지금껏 힘든 일 다 잘 견뎌냈잖아."
두 손 꼭 잡고, 뺨을 맞댄 아버지와 엄마.
먼저 무너진 건 아버지였다.
남동생도 운다.
나까지 울면 안 된다.
빈 의자를 찾아 아버지를 앉히고 진정시켜본다.
"너무 안타깝구나... 애처롭고..."
처음으로 듣는 아버지의 감정 표현, 꽉 감은 눈을 비집고 흘러내리는 엄마의 눈물,
불안을 감추려는 동생 그리고 다 괜찮을 거라며 덤덤한 척 모두를 위로하고 있는 나.
의자도 없는 수술실 앞을 번갈아가며 지키던 우리 가족은
존재와 비존재, 그 틈을 오고 가는 엄마 곁을 함께하며
기다림에 간곡한 간절함을 얹었다.
저녁 5시가 되어도 소식이 없다. 이제 지쳐간다.
무거운 그 기다림을 잊어보려 궁여지책을 낸다.
기형도의 시를 찾아 왼다.
엄마 걱정 詩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아파... 아파... 너무 아파..." 중환자실로 옮겨진 엄마의 첫마디다.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온 엄마의 얇은 목소리를 전하던 아버지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훔치신다.
중환자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바로 병실로 보내달라 요청하신 엄마,
이른 아침 병실에서 만난 엄마는 더 말라 있었고, 힘이 없었다.
주렁주렁 달린 약주머니와 소변 주머니에 침대 주변이 어수선하다.
그 어수선한 줄을 떨리는 손으로 정리해가며 걷고 싶으시다고 말씀하신다.
"아직 너무 빨라, 엄마."
"걸어도 되는지 물어봐. 나 걸을 거야."
"하루는 더 지나야 하는데... 그래도 걷고 싶으시면, 저녁부터는 아주 조금씩 걸으셔도 괜찮아요."
그렇게 매운 눈빛으로 51 병동 복도를 그 누구보다 더 많이 걸으셨다.
수술 전 날 옥상 정원 산책길에서 본인은 죽으면 나눌 수 있는 장기는 모두 다 기증하고 가고 싶다고 하셨다. 나눔으로 존재의 끝을 마무리하고 싶다며. 별소리 다한다고, 무슨 소리냐고 듣기 싫다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 날 엄마는 혹시 모르는 비존재의 본인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걸 한참이 지나고야 눈치챘다.
배춧잎 같은 발걸음으로 51번 병동을 악착같이 걷던 엄마는 존재와 비존재의 틈에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수술실 10시간, 본인 기억에도 없는 그 시간, 그 틈에서 살아내려 안간힘을 쓰고 계셨다. 의사의 만류에도 하룻밤만에 중환자실을 나와 병실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려 했고, 걸어야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아셨기에 이 앙당 물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셨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오늘도 엄마는 항암약 3개를 맞으며 존재의 시간을 늘려보려 고군분투 중이시다. 그 틈에 서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절박함과 악착같음이 더 짖게 엄마품에 달라붙어 있으면 좋겠다. 매일 나누는 전화 통화, 사소한 잔소리 오래오래 들어가며 살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