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9월도 참 덥구나. 호텔 로비로 들어가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잠시 걷는 1,2분의 시간 동안 잠깐 느낀 홍콩의 9월 초 날씨, 한국의 한여름보다 훨씬 더 찌는 듯 습하고 뜨겁구나. 스무 명 남짓 동기들과 함께 홍콩에 도착했다. 시끌벅적 새로운 환경에 들뜬 모두 호텔 로비에서 방 배정을 받느라 분주하다.
4층으로 배정받고 방으로 들어와 룸메이트와 어느 쪽 침대를 쓸지, 서랍장은 어떻게 나눌지부터 정했다. 이렇게 주말이 지나면, 7주간의 강행군 교육이 기다리고 있다.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다. 호텔은 회사 건물 바로 옆이고, 교육을 위한 최고의 동선이었다는 것만 확실했다. 그리고 그 주말에 먹었던 음식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안전 교육을 위해 트레이닝 스쿨로 향하는 첫날, 뭐랄까 그 마음이... 설렘의 떨림보다 잘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염려의 떨림이 더 컸다. 이건 아마도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언니, 누나의 위치였기에 '그래도 조금은 더 잘해야야지'하며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괜한 부담이었던 것 같다. 숫자에 불과하다던 나이는 이럴 때만 꼭 묵직한 무게로 다가온다.
넉넉히 5-6센티 두께의 교재가 눈앞에 떨어졌다. 그리고 깐깐한 듯 보이는 트레이너는 강한 홍콩 악센트와 함께 당부한다.
"이 무시무시한 두께의 교재는 여러분의 승무원 생활 그리고 인생을 한 결 쉽게 해 줄 모든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만 잘 숙지해도 여러분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위급 상황이 생겼을 때, 그들에게 생명을 연장의 기회를 선물할 수 있는 능력을 여러분에게 부여할 것입니다. 단순히 일이다 생각지 말고 이번 기회에 잘 배워 평생 숙지해 두시길 바랍니다."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렇게 '응급처치'부터 시작이다. 이런 것이라 상상도 못 했다. 난 분명 승무원이 되려 왔는데 이것은 마치 간호사나 의사를 위한 교육인 듯하다. 생소한 영어 단어, 병명에 따른 증상과 처치 방법, 승객의 상태를 파악한 후 어떤 문제로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 후속 처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응급 상황이라는 판단은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 그리고 응급 상황일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 이러다 진짜 간호사라도 될까 싶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교육을 끝내고 호텔방으로 돌아오면 몸과 정신은 이미 녹초다. 교실 안에서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대답도 따박따박해야 하고, 새로운 정보는 다음 날까지 기억해야 한다. 수업이 끝났다고 끝이 아니다. 남겨진 과제며, 그 날 배운 내용 숙지와 암기는 매일 남는다. 저녁 먹으러 나가기도 귀찮아 회사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는 날이 점점 늘어간다. 마치 기억력의 한계점에 매일 도전하듯 할 수 없을 것 같은 분량의 내용을 외우고 또 외우고, 새로운 정보도 다시 집어넣었다.
거의 매일 교육을 마치고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오며, 오늘은 숙제고 뭐고 아무것도 못하겠다, 이걸 왜 한다고, 아직 딤섬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호텔, 회사만 쳇바퀴 돌고 있는 이 발걸음이 답답하다며 처음 며칠은 투덜투덜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넘어갈 즈음 생활 패턴이 잡히기 시작하며, 그곳의 생활에 적응해갔다. 교육이 끝나면 이른 저녁을 먹고, 복습 한 번 끝내고, 밤 9시 즈음 잠들어 새벽 4시에 일어나 가벼운 아침과 함께 나머지 숙제와 전 날 배운 내용을 암기했다. 생각보다 훨씬 집중력과 효율이 좋았다. 그렇게 7주가 끝날 때까지 매일 초저녁 잠에 빠졌다. 그리고 불쌍한 내 룸메이트는 "라희 언니 또 자?"라는 질문을 매일 받아야 했다고 한다.
그렇게 3주 안전 교육의 휘몰아침이 끝나갈 무렵, 바람이라도 쐬어야지 영 답답해서 못살겠다 싶어 시내에 혼자 나가 미친 듯 쇼핑을 지르고 그렇게 먹고 싶던 딤섬 맛집을 찾아 엄청난 높이로 딤섬 그릇을 쌓아가며 다 먹어치우고는 그제야 속이 후련해 돌아왔다. 아, 이제 서비스 교육을 위한 준비는 끝났다.
서비스 교육의 가장 큰 걸림돌은 그루밍이었다. 평생 머리를 그렇게 정갈하고 깔끔하게 정리해 본 기억은 도통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다. 매일 아침 그루밍 체크와 함께 서비스 교육을 시작했다.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올려 붙인 머리는 왜 그리 자꾸 내려오는지, 트레이너들은 어쩜 저리도 완벽하게 머리를 잘도 올렸는지... 여하튼 잔머리와 씨름하던 그 아침의 촉박함을 생각하면 아직도 진땀이 흐른다.
서비스 교육은 안전 교육보다 훨씬 재밌고 쉽겠지란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난 하루하루 교육이 지날수록 안전 교육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걸 느꼈다. 회사 유니폼 안에 들어가 그 브랜드에 맞는 태도와 말투 그리고 상황을 표현해 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로 다가왔다. 당시 서비스 언어 교육을 받는 동안 다시는 받고 싶지 않은 교육이다라 생각했고, 그런 마음으로 교육을 받다 보니 승객 불만이나 불편함을 내어놓는 시나리오 앞에서 공감, 친절함, 문제 해결, 다시 친절함 그리고 다시 친절함을 내어놓는 문장은 자꾸 꼬여갔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버텨내며 그렇게 2014년 가을을 꼬박 홍콩에서 불태웠다. 서른여섯, 신입 승무원이 되겠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그 여정의 시작은 절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어린 동기들 틈에서 함께 배우고 경쟁하며,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매일 한계치를 넘기며 사람의 능력이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싶구나 하는 꺠달음도 얻었다.
그리고 서른이 훌쩍 넘어도 도전 정신이 잔뜩 남아 있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교육 가기 전, 스무 명 넘는 단체 속에서 그것도 7주나 생활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라 여겼다. 사람들 틈에서 시끌벅적 지내는 생활을 해 본 게 언제였는지 그것도 매일을 부대끼며 함께 보내는 시간이 처음이었기에 너무 부담스러웠다. 개인 공간이 필요해 새벽 시간에 혼자 공부하러 다닌 이유도 있다. 하지만 결국 7주가 끝났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은 모두 동료들과 함께였던 순간이다.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구나를 몸으로 경험했던 도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 가질 수 없다는 인고의 진리를 배웠다. 처음 유니폼을 입고 회사 틀에 맞춘 언어를 배우며 숨 막힐 듯 답답했던 시간을 떠올리면, 과연 승무원 일을 오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만 남는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와 바꾼 유니폼 생활은 염려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절대 전부를 쥐어주지 않는구나. 더 어렸더라면 그 전부를 갖기 위해 아마 이 기회를 뿌리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쉬운 것도 있고, 갖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있던 그 나이 서른여섯에는 세상과 타협하는 방법도 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회사 유니폼 안으로 들어갔다고 내 본연의 모습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다. 분명 이곳에도 배우고 나아갈 수 있는 지점은 반드시 있다. 그 지점을 찾아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