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어간다
영국은 지난 목요일부터 2차 록다운에 들어갔다. 깜깜한 밤 외식도 못하고 지낼 한 달 아니 더 길어질 수 있는 초겨울의 적적함을 위로하려 록다운 시작 하루 전, 먹부림 회동을 긴급 결성했다. 사는 곳이 서남북으로 모두 갈린 우리 셋의 요즘 아지트는 한인 타운, 뉴몰든이다.
한 친구가 핸드폰을 잃어버려 나올 수가 없다고 연락을 해왔다. 아쉬워라, 셋이어야 장단이 맞는데! 둘이라도 괜찮다며 흥터 지게 만나 치맥을 그야말로 제대로 즐겼다. 맥주를 마시고 또 마시며 치킨을 먹다 보니 자연스레 친구 앞에서 치킨 조각을 손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뜯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친구도 역시 아주 맛스럽고 멋스럽게 바삭한 치킨을 야무지게 뜯고 있다.
지하철 역을 나와 언덕을 한참 걸어 올라가다 보면 그 길의 끝에 편의점이 작게 하나 있었다. 그 앞에는 소박하게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 몇 개가 항상 놓여있고, 대학 시절, 학교 끝나고 그 언덕을 오르는 저녁이면 아는 사람 누구라도 한 명은 꼭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집에 가는 길, 기분 좋은 날 마주친 친구의 얼굴은 기분이 좋아 반갑고, 언짢은 일이라도 있었다면, 그 일을 나눌 수 있어 더 반가웠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편의점 앞이 자주 조용해졌을 땐, 왠지 서운한 잔뜩 마음 안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영국에서 이렇게 스스럼없이 치맥을 기울이다 보니 이십 대를 따뜻하게 달궈주던 그 친구들 모습이 떠오른다.
스물 무렵 은근 이상한 지점에서 낯을 가리던 성향 때문에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음식을 함께 먹는 일이 유난히 어려웠다. 그리고 오랫동안 규칙처럼 낯선이 와 절대 먹지 않는 음식 몇 가지를 정해두기도 했다. 그것은 쌈밥, 피자 그리고 치킨류 등으로 모두 손을 써가며 먹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메뉴였다.
쌈 위에 반찬과 고기를 잔뜩 올려 한 입 가득 넣고 우물우물 씹는 모습, 두 손으로 먹음직스레 바른 닭다리 살을 입에 넣는 모습 그리고 곱게 들고 베어 문 피자 한 입에 길게 느러지는 예상치 못한 치즈, 이런 자연스러운 모습을 낯선 사람 앞에서 보이는 게 그렇게 불편하고 껄끄러웠기에 이런 류의 음식을 함께 하는 건 가족과 정말 친한 친구들 몇몇 뿐이었다.
그 무렵에 만난 그 편의점 동네 사람들 중에는 친한 친구도 있었지만, 대학 친구의 친구, 건너 건너 알게 된 이들로 거의 낯선 이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반면에 그들은 한 동네에서 서로 알고 지낸 지 거의 십 년을 훌쩍 넘긴 막역한 사이였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 한 명이 앉아 있다가 아는 누군가 지나가면 불러 앉히고, 그러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연락해서 나오라 하고 그렇게 시간이 맞아 만난 친구들은 저녁이나 술을 마시러 갔다. 그렇게 그들은 별 일도 없이 함께 먹고 마시며 우정을 쌓아갔다. 어쩌다 나도 그 틈에서 그렇게 어색하게 안면을 트고 얼떨결에 함께 식사를 다녔다.
그 시절 참 별별 음식을 다 먹으러 다녔다. (물론 술도 함께) 어느 날은 감자탕을 먹으러 갔는데, 내가 돼지뼈에 붙은 살을 젓가락으로 떼어먹고 있었더니, 친구 한 녀석이 어디 이쁘게 보일 사람 있냐며 계속 핀잔이다. 보다 못해 그냥 편하게 맛있게 먹으라며 큰 뼈를 손에 쥐어 준다. 미친 듯 불편했지만, 왜인지 최선을 다해 그 뼈에 붙은 살을 두 손을 사용해 최대한 발라먹었다.
그렇게 시답잖은 체면을 하나씩 벗어가며, 음식을 즐기는 사이 그들과 우정의 겹은 쌓여갔다. 그리고 돌이켜 보니 그 중심에는 치킨과 맥주가 빠질 수 없다. 포크 두 개로 발라먹는 치킨은 맛이 안 산다. 무조건 두 손으로 치킨 조각을 들고 뜯어야 진정한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거기에 차가운 맥주 한 모금 싸악 들어가면 치킨 살과 맥주의 기막힌 목 넘김이 천상의 행복함으로 바로 안내한다. 한 조각 두 조각 치킨 살을 발라먹다 보면 어느덧 함께 나온 무도 첨벙첨벙 손가락으로 먹게 된다. 그렇게 천상의 맛에 빠져 있을 즈음에 까탈 지게 세워둔 규칙은 그들 사이에서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치킨을 뜯고 맥주를 넘기며 쌓은 우정의 시간 속에 진솔한 모습이 담겨 있다. 연애가 잘 안된다던 친구를 위해 닭다리를 그 친구 앞에 놓아주며 위로하기도 하고, 아르바이트 잘렸다며 질질 짜는 친구를 위해 알바 자리를 함께 구하러 다녀 보겠다며 의리의 한 잔을 나누기도 하고, 친구끼리 몰래 연애하다 들킨 두 녀석을 치킨과 함께 씹기도 하고, 속 깊은 얘기라도 나오는 날이면 늦은 밤까지 귀 기울이며 술잔을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이십 대의 우정은 치맥과 함께 따뜻하게 남았다.
런던에 살면서 그 기름진 우정이 그리워 치맥을 그리던 밤이 너무도 깊었다. 런던에서는 그 바삭한 치킨,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후라이드 치킨을 만날 수 없었다. 그저 비슷한 KFC정도? 하지만 그건 성에 차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우정을 통닭 통닭(토닥토닥) 할 친구들이 곁에 없으니 치킨이 있으면 무엇하랴, 아쉬운 마음만 홀로 달래며 KFC 치킨만 뜯을 뿐.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요즘 이곳에서도 치맥이 유행이다. 한류를 타고 온 치맥의 바람이 강풍까지는 아니더라도 미풍에서 중풍으로는 넘어가고 있는 듯하다. 최근에 한인 타운에 치맥이라는 상호명의 카페 겸 레스토랑이 생겼다. 록다운을 하루 앞둔 그 날에 우리가 만나 먹부림을 하던 곳도 여기다.
가리는 것 많고 따지는 거 많던 내가 런던에서 만난 이 친구들 앞에서 자연스레 치킨을 손으로 들고 뜯고 있다. 그리고 내 친구도 맛스럽게 잘도 먹는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영국 와 살면서 사람들에게 깊은 속내를 내비치지 않으려 꽁꽁 싸매고 살았다. 이 날 함께한 친구를 알고 지낸 세월이 벌써 몇 년인데, 이제 와서야 이렇게 편하게 우정의 치맥을 할 수 있다니... 이제 그만 그 꽁꽁 묶인 마음 좀 열어 풀어내어보자 싶었다. 마음 힘들면 힘들다고 거침없이 표현도 해 보고, 좋으면 좋다고 편히 내어 보자 한다.
그렇게 치맥을 1차로 우장 전골을 2차로 마치고 찢어질 듯한 위를 부여잡고 돌아오는 길 달이 참 밝고 크다. 친구에게 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들어가라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기름진 우정 한 겹 쌓고 집으로 향하는 그 밤의 찬 공기가 유난히 길게 추억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