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두 번째 항암 치료를 앞두고
기억난다. 아마도 8년 전 즈음, 엄마 집 주방 서랍장 속 수북이 쌓인 고무줄과 쿠폰 그리고 노끈 뭉치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사건이. 그 후로 항상 묻곤 했다. 이런 걸 왜 이렇게나 많이 모아두셨는지. "언젠가 다 필요해. 다 쓰일 때가 있다고." "아... 알죠. 그런데 이렇게나 많이?" 그 당시, 엄마 집에 갈 때마다 꼭 한 번은 싫은 소리가 오고 갔다. 엄마 나이와 함께 늘어간 살림을 좀 정리하자는 딸과 내 살림이니 내버려두라는 엄마의 왈가왈부였다.
살림살이를 몰래 들춰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쓸데없이 쌓여가는 언젠가 쓰일 쓰레기는 더 없는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몰래 챙겨보며 조금씩 정리해 두곤 했다. 성격 쨩쨩한 내 엄마는 다 쓸데 있어 둔 것이니 몰래 버릴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라고 엄포시다. 그렇게 가족의 역사를 입은 주방 살림살이는 켜켜이 쌓여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좀 가볍게 사시면 좋겠는데, 왜 이런 건 이고 지고 있으실까? 한동안 엄마를 설득하려는 시도는 이어졌다. 그렇게 우리 모녀는 엄마의 살림살이를 중간에 두고 서로의 속내도 모른 채 자잘한 언쟁을 나누다 어느 해에는 결국 큰 소리로 번졌다. 그렇게 서로 마음 한 번 상한 후, 한동안 난 엄마 살림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첫 항암을 마친 엄마와 저녁 산책하며 대화를 시도한다.
"엄마, 아무래도 집을 최대한 좀 간단히 해야 할 것 같아. 이제 병원 다니고 투병 생활하면서 회복에 전념하려면, 일상이 좀 단순히 정리돼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해 엄마?
"딸아, 엄마 버릴 것 아무것도 없어. 그때 그 난리 이후로 내가 정리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사는데, 너 또 엄마 살림 가지고 뭐라 할 거야?
"그럼 지금도 잘하시는 거 알지, 그런데 거기서 조금은 더 단순하게 공간을 정리해 보자고 말씀드리는 거야. 엄마 수술 전에 그리고 내가 여기 있을 때 같이하면 좋잖아."
"별 걱정을 다 한다. 내가 알아서 해. 그러니까 내 살림은 신경 끄시길."
정리를 시도하려던 내 심사는 잘 전해졌는지, 엄마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괜히 생각만 많아져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엄마 방이 어수선하다.
"엄마 뭐해요?"
"뭐가 이렇게 많이도 나오냐. 참 별것도 아닐 걸 많이도 쌓아뒀다."
"이 새벽부터 청소야?"
"어제 들어와서 생각해보니 네 말도 맞는 거 같더라. 오늘은 엄마 방, 내일은 거실, 모래는 주방 순서로 정리 시작할 거니까, 너도 어서 와서 해."
"웬일이시래, 알았어요. 우선 아침 식사부터 하구."
그렇게 며칠 동안 우리는 집안 구석구석을 채우던 오래된 물건, 언젠가는 쓸 것 같은 물건들은 다 밖으로 옮겼다. 어디라도 제 구실을 못하는 가구들도 자리를 비웠다. 수십 년 사용한 소파와 침대는 새것으로 바꾸고, 거실에 나와있던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는 모두 수납장으로 들어갔다. 공간이 말끔해졌고, 청소는 훨씬 더 쉽다.
엄마는 "버려, 다 버려"를 미련 섞인 눈빛과 함께 계속 내뱉으셨다. 아프고 나니 다 부질없는 집착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또 그렇다고 다 내다 버리기에는 함께 산 세월이 깊어 미안한 마음이신 듯 느껴진다. 다 치우고 나니 왜 그런 걸 다 이고 지고 살았는지, 쓸데도 없는 짓을 참 많이도 하고 살았다고 하신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항암치료와 큰 수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투병과 회복에만 전념하실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 드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공간을 사는 사람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는 쓸데없는 짐들은 다 비워드리며, 복잡한 얽힌 마음과 생각도 함께 다 비워드리고 싶었다. 가볍고 단순한 마음만 채워 드리고 싶었던 게 딸의 속내였다.
엄마는 본인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도 딸 앞에서 한 번을 눈물 흘리시거나 역정을 내신 적이 없으시다. 그저 스스로 다 잘할 수 있다는 강한 모습만 보여주려 하신다. 그런 엄마인데, 딸이 와서는 본인 살림살이를 다 정리하자 말부터 내어놓으니 얼마나 서운했을까. 그렇게 버려진 물건들을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마음에 걸렸다.
"엄마 내가 집안 정리하자고 해서 서운했어?"
"서운할게 뭐가 있니, 깔끔하고 단정하니 좋은데... 뭐가 그렇게 바빴을까? 참 열심히도 살았는데, 정작 매일 지내는 곳은 제대로 살피지도 못했네."
"난 엄마랑 아빠가 좀 더 가볍고 단순한 마음으로 이 모든 걸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해나가길 바라는 바람으로 그랬던 거야."
"다 알아, 엄마는. 그런 거 하나하나 다 설명하고 말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하다 보니까 재밌더라. 이제 주방에 수납장 하나 더 들여놓고, 더 정리할 계획이야. 수납장 괜찮은 거 있는지 알아봐."
"뭐 또 할 게 있다고? 이제 그만해도 될 텐데..."
"시작했으니 제대로 해야지! 너 영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구석구석 다 할 거니까 맘 단단히 먹어라!"
두번 째 항암을 앞둔 저녁 산책길, 엄마의 말은 진심이었다.
런던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그 꼼꼼한 정리는 이어졌고,
난 그 옆에서 보조하느라 힘 꽤나 쏟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