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쉬 앤 칩스를 바라보는 런던 생활자의 시선
도대체 이게 왜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일까? 그곳에 가면 꼭 피쉬 앤 칩스를 먹어봐야 한다고 했다. 심지어 영국인에게는 피쉬 앤 칩스에 대한 자부심 같은게 느껴진다. 주적주적 비 내리는 영국 전형적인 날씨와는 정반대였다. 남부 해안도시 브라이튼에 터를 잡고 영어 수련인 생활을 시작하던 그 해 5월은. 매일이 반짝이는 바다와 햇살로 가득이다.
작은 코티지 (Cottage, 시골집) 조이스 할머니 집, 삐걱이는 계단을 오르면 내리며 영국 생활을 시작했다. 매 끼니 나름의 정성으로 준비해주시던 할머니의 음식은 처음 몇 일간은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매일 반복되는 삶은 완두콩과 브로콜리 옆 양, 돼지, 소고기, 치킨 순으로 돌아가며 구워 나오는 저녁 메뉴는 금세 질릴 수밖에 없는 뭐 그런 것이었다. 오후 4시부터 살금살금 올라오는 야채 삶는 냄새는 그 집을 나올 무렵이 되자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물려버렸다.
결국, 학교 다니면서부터는 할머니께 자주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그 냄새를 피하곤 했다. 그렇게 브라이튼 내 레스토랑 탐방을 시작했고, 첫 메뉴는 그 유명하다던 영국의 대표 음식 피쉬 앤 칩스였다. 그날도 거대한 바다는 반짝이는 해와 짝을 이뤄 눈부신 광경을 내어주었다. 그 경치를 즐기며 걷던 난 간질간질 튀김 냄새를 맡고 말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도란도란 피쉬 앤 칩스를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 되겠다, 나도 하나 먹어봐야겠다. 긴 줄이 하나 보인다. 망설임 없이 그 줄에 동참해 피쉬 앤 칩스를 먹으려 두근두근 기다리고 있다. 주문표를 보니 코드 (Cod, 대구), 해덕 (Haddock, 해덕 대구), 폴락 (Pollock, 북대서양 대구) 등 모르는 이름이 조르륵 적혀있다. 이럴 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주문하는 메뉴를 따르는 게 진리, 코드 (Cod, 대구)와 칩스를 시켰다.
주문을 마치고 좀 기다리니 둘둘 말린 꼬깔콘 모양의 묵직한 하얀 종이가 내게 넘겨진다. 그 안에는 대략 1.5센티 넓이에 8센티 길이로 썰린 두터운 감자튀김과 중간 사이즈로 노릇노릇 잘 튀겨진 대구가 무심히 담겨 있었다. 난감했다.
이걸 어떻게 먹으라고... 이렇게 준거지?
자리를 어서 잡아야 했다. 바닷가로 내려가 가장 평평한 자갈과 돌이 있는 곳을 찾아 앉았다. 거대한 꼬깔콘 종이 안에 든 이 피쉬 앤 칩스를 가능한 가장 깔끔하고 정갈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 세팅해야 했다. 영국에서 하는 첫 외식을 초라하게 기억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음악 선곡을 먼저 마치고 이어폰을 꼈다. 일단 음악이 흐르니 어수선한 바닷가 주변의 풍경이 좀 정돈된 느낌이다.
커다란 돌덩이 위에 돌돌 말린 종이를 펴본다. 양이 꽤 많다. 마구 섞인 감자튀김과 생선을 가지런히 분리하고 소스를 옆에 둔다. 드디어 영국 대표 음식을 이렇게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먹는구나! 기대감과 함께 한 입, 두 입 먹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어이없는 웃음이 삐져나왔다.
이거 뭐야, 끽해야 생선가스에 감자튀김인데 이게 영국 대표 음식이라고?
장난해?
곁들인 소스라고 해봤자 우리네 생선가스에 곁들이는 타르타르소스와 케첩 정도다. 먹다 보니 별반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왜 이렇게 불편하게 먹어야 하는지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여차저차 피쉬앤칩스의 첫 경험은 그렇게 번잡스러움과 실망만 잔뜩 남기고 끝이 났다.
그게 벌써 14년 전이니, 영국 생활 경험치가 늘어갈수록 먹어치운 피쉬 앤 칩스 접시 수도 얼추 높이 쌓였다. 그러면서 실망만 가득 안겨 준 그 음식을 즐기는 방법도 진화라는 것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 첫 경험 브라이튼 바닷가의 피쉬 앤 칩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영국 왕초보의 시행착오였다는 것을.
피쉬 앤 칩스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필수 요소가 꼭 구비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비네거 (Vinegar, 식초)와 레몬!
포장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건 레스토랑, 펍 (Pub, 술집)이건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갈색 액체 비네거, 감자튀김에는 소금을 좀 치고 이 비네거를 둘둘 둘둘 둘러 먹으면 케쳡 따위는 필요 없을 정도의 새큼함과 특유의 향을 즐길 수 있다. (워낙 호불호가 갈리는 맛과 향이라 초보 피쉬 앤 칩스러들에게는 거의 홍어삼합과 맞먹을 정도의 거리낌으로 다가갈 수는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거기에 레몬 조각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대구 튀김 속 하얀살 위에 레몬즙을 살짝 들이밀면, 그 상큼함이 생선살에 묻어나며 그 감칠맛을 배로 올린다.
비가 오면 전을 지지며 기름 냄새 풍겨 이웃이 들 불러 모아 두런두런 나눠먹던 한국의 정다운 마음처럼, 런던에서도 비가 며칠을 주적주적 내리는 날에는 여지없이 기름 내 팍팍 풍기는 피쉬 앤 칩스 생각이 나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 날은 맛집 리스트 중 한 곳을 골라 그 냄새 맡으러 바로 직진한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은 가락 삼고, 맥주 냄새 찌든 나무 기둥은 친구 삼아 맥주 파인트 한 손에 들고 웨이터와 수다하듯 피쉬 앤 칩스를 주문한다. 그리고 테이블로 돌아와 비네거를 옆에 두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이제 너무도 익숙하다.
한참 지나고 나니 영국 사람들이 피쉬 앤 칩스를 대표 음식으로 내어놓으며 추천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것은 우리가 떡볶이를 먹으며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 올리고, 치맥을 하며 일상의 고단함을 위로하며, 야심한 밤 라면 끓는 소리에 입맛을 다시는 마음과 비슷하다. 그들의 추억과 일상이 거기에 온통 묻어 있기 때문이다.
고된 하루가 끝나가는 저녁, 차오르는 허기를 채우기도 귀찮은 날. 이런저런 고민 없이 생각나는 음식 하나가 딱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든든한 위안이다. 너무도 흔해서 되려 귀한 것으로 다가오는 피쉬 앤 칩스는 영국인들의 소울 푸드같은 것이라 이해한다. 축축하고 으슬으슬 서늘한 날씨에 바로 튀긴 뜨끈한 생선살을 먹으며 위로받던 날들이 그들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어느새 누군가 영국 음식을 추천해달라 하면, 나도 피시 앤 칩스를 내어 놓는다. 그리고 요즘처럼 쌀쌀한 회색 날이 계속이면, 그 비네거 잔뜩 입은 감자튀김에 보들보들 대구살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영국에서 산 세월은 입맛으로 느껴지고, 영국 사람들은 음식으로 알아간다. 14년차 런던 생활자는 그렇게 그들을 이해하며 살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