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에 담긴 아버지

by 김라희

택시만 타면 된다. 공항 리무진에서 내려 엄마 집까지 가는 길, 이제 5분만 더 가면 도착이다. 아빠는 베란다 창 열어 두고 차 소리가 나는지 귀 기울이고 계실게 분명하다. 몇 개 되지도 않는 계단 캐리어 들고 오르는 길 힘들다며,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굳이 그렇게 창을 열어 두고 기다리신다. 캐리어 가방은 바퀴부터 핸들까지 싹 다 닦고 나서야 집 안에 들이신다. 그리고 "오느라 고생했지?" 짧은 인사가 끝나면 소파에 앉아 짐 정리를 시작한 딸을 무심히 바라보신다. 한결같다.


버스 타고 등교하기 시작한 중학교 시절부터 아빠 출근길은 더 길어졌다. 만원 버스에 진땀 흘릴 딸이 안쓰러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교문 앞까지 데려다주셨다. 그리고 그 길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이어졌다. 조금이라도 더 재우고 싶고, 아침은 꼭 먹여 등교시키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다. 등굣길 호강을 하며 학창 시절을 보낸 딸은 그게 다 당연한 건 줄만 알았다.


다림질은 아빠의 몫이다. 한 주동안 입을 교복은 일요일 오후 아빠 손끝에서 반듯반듯 살아났다. 이런 건 이제 네가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 말씀 하시기는 하지만 정작 다림질 판 앞자리는 양보하지 않으신다. 나에게 엄마는 말이라면, 아버지는 행동이다. 약속 시간 10분 먼저, 주어진 일은 언제나 성실히,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 구두, 흐트러짐 없이 깔끔한 외출복, 감정 표현 많이 없는 말투와 표정, 아빠는 그렇게 딸에게 기억되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여름, 남산골 한옥마을을 시작으로 남산 타워까지 꽤나 긴 길을 단 둘이 산책해야 했다. 엄마와 셋이 걷기로 예정했는데 갑작스러운 엄마 일정으로 둘이 걷게 생겼다. 아버지랑 둘만 외출한 기억이 없는데 어쩌지? 취소할까 하다 그것도 이상해 그냥 나서기로 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엔 항상 엄마가 있었고, 동생이 함께했다. 그들이 빠진 아버지와 나, 집을 나서자 바로 어딘가 좀 심하게 데면데면하다.


서로 그 어색함을 티 내지 않으려 사소한 말을 이어가며 한옥 마을에 도착했다. 고즈넉한 공간을 다니다 보니 어느덧 대화가 아주 조금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다 아버지가 몰래 내 모습을 사진에 담고 계신 걸 본다. 그리고 용기 내어 둘이 셀카 찍느라 얼굴을 가까이 대어 보기도 한다. 함께 맞춘 발걸음 덕에 이제야 편한 부녀 사이 흉내가 좀 나기 시작한다.


산 길 시원한 바람과 걷는 시간이 길어지니 아버지 노랫소리도 조금씩 새어 나온다. 조용한 그 흥얼거림에 귀를 기울인다. 그럴싸하다. 긴 산책길에 아버지와 대화는 깊어간다. 말씀 참 잘하신다. 상냥하게 굵직한 목소리에 가수가 꿈 인적도 있었다는 의외의 말씀도 내어 놓으신다. 남산 타워 앞에서는 '설레임' 하나씩 사들고 먹으며 싱거운 농담에 한바탕 웃기도 한다. 그렇게 산을 내려와 먹는 바지락 비빔밥에 아빠의 식성을 알아보기도 한다. 늦여름 남산 산책길마다 남은 아빠와의 추억을 그렇게 목소리로 담아왔다.


그 나들이를 계기로 아버지와 대화는 더 길어졌다. 그리고 그 날, 눈 꽉 감고 수술실로 들어가시는 엄마를 다시 불러 허리 숙여 귓가에 한참을 뭐라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차가운 수술실로 엄마를 들여보낸 후 어깨를 들썩이며 애처로워 죽겠다던 아버지의 흐느낌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행동으로 기억되던 아버지는 목소리로 내 옆을 지키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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