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일, 매일 쓰는 사람의 독서

깍두기 그리고 읽는 태도의 변화

by 김라희


한국 마트에 무청이 싱싱하게 달린 튼실한 무가 매대에 수북이 쌓였다. 한 다발에 4.99파운드(한화 7500원 정도) 가격도 좋고, 무엇보다 한국산 직수입! 사람들 발길이 길게 머무는 그곳에서 덩달아 무 한 다발을 골라 들곤 잠깐 고민한다.


'이렇게 큰 무를 네 덩이나 사도 되려나? 많이 먹지도 않고, 무청을 요리해 본 경험도 없는데.

근데 무청이 너무 싱싱하잖아. 이건 가을에 잠깐 그것도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단 말이지.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한참의 고민 끝에 파릇파릇한 무청이 달린 무를 장바구니에 질끈 담았다.




책 읽기는 의무와 비슷했다. 책을 놓은 시간이 길어질 때면 불편한 마음이 쉽사리 들었으니 말이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텍스트는 어디든 있다. 불편한 마음을 지우려 무엇이라도 읽기는 읽었다. 성인이 되고는 지친 하루 달래 듯, 일하고 돌아온 저녁 TV 보듯 책을 읽는 시간이 잦아졌다. 그러다 간혹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만나면, 다이어리 한편에 적어두며 만족하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텍스트를 따라다니는 무심한 눈빛에 날카로운 이성과 사유가 들어올 틈은 없다. 위로 삼을 만한 문구를 만나면 잠깐 공감을 퍼붓고, 필요한 정보가 있는 텍스트라면 기록으로만 남을 뿐. 그래도 무엇이라도 읽는 것을 놓지 않으니 스스로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걱거리는 흙이 잔뜩 묻은 한 다발의 무를 먼저 정리해야겠다.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한 덩이 반은 육수용으로 크게 썰어 냉동실에 얼려두고, 나머지 반은 어묵탕을 먹은 계산으로 따로 놓았다. 그리고 남은 두 개, 이것을 어쩌면 좋을까? 무가 맛있으니 깍두기를 만들어 보자 했다. 온전히 홀로 해 본 적이 없어 한참 망설였다. 그러다 '엄마가 만드는 걸 보며, 잔심부름 한 세월이 얼마인데!' 하는 결심으로 두 팔을 걷어붙였다.


어렴풋한 기억에 기대어 집에 있는 재료를 찾아본다. 찹쌀가루가 없으니 밀가루로, 새우젓도 없으니 베트남에서 건너온 피시 소스로, 생강도 없으니 그건 생략, 대신 사과라도 갈아 넣어야지. 이렇게 내 방식대로 재료가 차곡차곡 쌓였다.






알기 위해서는 물론 배워야 한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여러 조건을 통해 스스로 깨달은 것은 엄연히 다르다. 앎은 깨닫기 위한 조건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와 학습은 객관적인 앎이다. 그리고 독서와 학습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색은 주관적인 깨달음이다.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고, 누구나 공부할 수 있지만, 누구나 이를 통해 사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쇼펜하우어, 문장론]



무엇이든 읽으면 배우고 알아갈 수 있다. 위로가 되는 글을 만나면 얼었던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재미있는 글을 읽으면 웃음이 난다. TV처럼 읽고 마는 독서는 그저 거기까지다. 주관적인 앎을 위한 사색의 중심에는 반드시 내가 존재해야 한다. 129일을 매일 글을 쓰며, 삶을 가꾸다 보니 읽는 태도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알아챘다.


밑줄 친 문장 아래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적기도 하고, 어떤 문장을 쓰고 싶은 글에 넣고 싶다면 따로 분류된 노트에 정리해 둔다. 게다가 읽고 있는 책에 관심이 간다면, 비슷한 주제를 찾아 더 다양한 작가를 만나보려 노력한다. 책을 읽는 일에 디테일과 확장이 생겼다. 더 놀라운 일은, 이 모든 행동이 하고 싶은 마음, 내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보상이 없더라도 아주 재밌게 그리고 자주 쥐어짜며 읽고 쓴다.




그렇게 선택된 재료를 믹서에 곱게 갈아 양념을 만들어 자박하게 잘 절여진 무와 함께 버무린다. 향이 끝내준다. 실온에서 하루반을 익힌 깍두기를 드디어 반찬으로 내었다. 표고버섯 밥에 참기름과 어간장을 살짝 둘러 김에 싸 한 입에 넣고, 마지막에 깍두기 하나를 오물오물 씹으니 입 안으로 퍼지는 맛과 향이 꽤 그럴싸하다. 적당히 맵고, 달큼하면서 시원한 깊이에 깜짝 놀랐다. 첫 솜씨 치고는 성공적이다. 진작에 해 먹을걸.



책에서 얻은 앎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작가의 것입니다.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의심하고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끊임없이 사색하며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야 하죠. 그때 번뜩이며 떠오른 생각과 깨달음을 메모하는 것이 질서입니다.


[삶의 무기가 되는 글쓰기] 임재성


엄마 옆에서 김치와 깍두기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잔심부름만 한 게 벌써 수십 년이다. 그런데 내가 주체가 되어 만들어 보려는 시도는 언제나 뒤로 밀렸다. 읽는 태도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작가가 친절하게 내어준 문장을 따라가며 아는 건 많아졌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닌 문장을 부여잡고, 다 알았다고 착각하며 지낸 시간이 대부분이다. 엄마가 만들어 준 깍두기를 먹으며, 그 맛에만 집중했다. 거기에는 그 맛을 내보려는 시도가 빠졌었다. 작가가 내어준 친절하고 멋스러운 문장을 읽으며, 충만한 만족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사유를 얹을 마음은 그 만족감에 가려 자취를 감췄다. 이 아침 깍두기를 씹으며, 변화된 독서 태도에 집중해 본다.


129일이 모시고 온 디테일과 확장 덕분에 읽는 속도는 조금 느려지고, 한 권의 책을 여러 차례 읽는 일이 더욱 자주 생겼다. 내일 쓸 글에 이 구절을 함께 써도 좋을까? 통하는 부분이 있나? 고민의 시간도 늘어간다. 어떤 이유에서 문장이 막혀 글을 쓸 수 없다면, 메모장을 뒤적이며 막혔던 생각을 뚫어보려 노력을 기울인다.






맛깔나게 익어가는 깍두기를 자주 들여다보며 뿌듯한 미소를 날리는 모습이 재밌나 보다. 남편은 그게 그렇게 좋냐고 묻는다. 그래 좋다. 좋아 죽겠다. 게다가 맛도 있으니 얼마나 더 좋은지 모르겠다. 읽는 일 중심에 나를 놓아보니 글을 읽는 눈길이 더욱 고와졌다. 한 권의 책을 내어 놓기까지 작가가 쏟았을 정성 그리고 함께 일한 사람들의 수고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독서를 쓰는 행동과 연결하니 더욱 입체적으로 변해간다. 입체적인 활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중심에 항상 내가 서있어야 한다는 것도 이제 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글을 수동적으로 읽어 내려가던 사람이 문장을 찢어 읽으며 곱씹기도 하고, 노트에 적어가며 스스로의 생각을 덧붙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게 되고, 쓰고 싶은 이야기에 그 글을 넣어보고 싶어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까 고민도 매일이다.


129일 매일 쓰기, 능동적 읽기의 태도를 알려 준 시간 덕에 대문호의 기품 있는 문장을 혹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내어놓은 생생한 문장을 더욱 깊고 찬찬하게 느낄 수 있는 안목도 생겨간다. 이 모든 덕분에 쓰는 일에 아무리 쥐어짜는 괴로움이 있더라도, 삶의 커다란 부분으로 내 곁에 꼭 가까이 두자 다시 다짐한다. 그리고 이제는 김치도 집에서 담가 먹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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