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듯 뜨끈한 마흔의 친구 사이
좁고 깊게 사람을 사귀는 성향 때문에 친구가 아주 많지는 않다. 낯가림도 심했던 탓에 학창 시절 새 학기가 되면, 낯선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로 자주 눈물 바람을 날렸던 기억이 난다. 친했던 친구와의 이별이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보다 더 크게 다가와서인지 학년이 바뀌는 봄, 아무리 살랑한 꽃바람이 불어와도 내 마음만은 가을이었다.
마흔이 지나며 삶의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이제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어려움 없이 친해지고, 때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알아간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라 생각하게도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을 친구의 영역으로 들여놓는 마음이 쉽지는 않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게 어려운 만큼, 한 번 마음을 준 사람들과는 더 깊은 정을 나누며 긴 시간을 친구사이로 지내려 노력을 기울인다.
올봄 갑작스레 찾아온 엄마의 투병 생활로 서울에 3개월정도 머물러야 했다. 지내는 동안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에 이상하게 주저함이 먼저 든다. 힘든 말를 꺼내 놓는 일이 예전처럼 쉽지만은 않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친구란 어려운 일, 기쁜 일 언제든 스스럼없이 나누는 사이라 말하며, 그들과 우정을 다지곤 했는데 말이다. 막상 어려운 일을 만나보니, 갑작스레 이런 걸 말하기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결국, 한국에서 지낸 석 달의 시간은 혼자 지내자 결론짓고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접어두었다.
그래도 예전 같으면 이런저런 이야기와 핑계로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만나 잠깐이라도 얼굴 보려 했을텐데...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런던으로 돌아와 이렇게 한 걸음 물러서 그때를 바라보며, 왜 친구들과 그 시간을 나누지 못했을까? 되돌아본다.
어려운 일을 겪으면 연락을 두절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럴 때면 난 마음을 졸이며 또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을 잔뜩하고, 문자라도 보내주지하는 원망 섞인 말을 내어놓았다. 한참이 지난 후에 아무 일 없는 듯 두루뭉술 넘어가려는 친구에게 난, 우리 사이가 이 정도밖에 안 되었느냐, 너 혼자 얼마나 힘들었냐며 투정하던 그런 친구였다. 헌데, 비슷한 상황이 되어보니, 왜 친구가 쉽사리 연락할 수 없었는지 그 마음을 이제야 헤아리게 된다.
어깨에 둘러맨 책임이 점점 무거워지는 나이가 되어보니, 늘어난 가족의 수만큼 언제든 무슨 일이든 신경 쓸 일들이 우리의 주변을 채우고 있다. 누구는 아이들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구는 남편 때문에 머리 아플 수도 있고, 또 어느 누구는 다른 가족의 문제로 골치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을게다. 굳이 친구들과 예전처럼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꼭 그래야할 필요도 없어졌다.
나중에 한 폭풍 지나고 나면, 그때 그랬었다고 얘기해도 늦지 않는 그런 일들이다. 이제는 서로 있는 곳에서 잘 지내기만 한다면 그걸로도 고맙다는 마음이 든다. 더욱이 이렇게 영국에 나와 있으니 그들과 시시콜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점점 더 흐려진다. 그럼에도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사이라면 더욱 소중하다. 이렇게 무심한 듯 덤덤히 철들어가는 사이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우정의 한 모습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마흔의 우정은 무엇인가. 텅 빈 의자를 바라보면 언제라도 함께 앉고 싶은 얼굴, 미주알고주알 다 나누지 않더라도 멀어질 수 없는 사람, 자주 그립지만 가끔 만나도 금세 뜨겁게 수다를 태울 수 있는 사이, 사느라 노곤한 마음 뜨끈하게 도닥이는 담백함이 묻어나는 사이, 이런 게 마흔을 살아가는 여인의 우정이다. 그런 친구들이 각자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기에 더욱 안심하며 내 일상도 잘 돌보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무심한 듯 뜨끈한 마흔 우정의 참맛이다. 깊은 여름, 어려움을 겪으며 깨달은 이 맛은 언제나 그리울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