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적의 시간

방랑의 문장을 엮으며

by 김라희


글쓰기와 영어공부는 확실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축적. 런던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3년정도 한인 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학습 컨설팅을 한 경험이 있다. 이들이 컨설팅을 원했던 가장 큰 이유는 영어에 자신이 없어 입을 닫아 버린 아이를 혹은 쉽사리 늘지 않는 영어 실력을 단기간에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개인 상황에 맞는 학습 지도 및 도움을 제시 했지만 그저 느긋하게 기다려 주는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내어 주었다. 내가 만난 학생들 중 80% 이상이 꿀먹은 벙어리로 대략 4-5개월 학교 생활을 지내고 나면 어느 순간 슬슬 말문이 터졌고, 그 후에는 성격에 따라 좀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일 년안에는 네이티브 수준의 말하기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나이에 따른 격차도 물론 있다.)


미국 언어 학자들은 대부분 다른 국가에서 미국으로 건너 온 어린 학생들이 영어로 말하는 것을 거부하는 그 순간에도 영어 공부는 계속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주변에서 들리는 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계속 쌓여 저장되고, 이 수동적 축적의 시간이 어느정도 머릿속에 차오르면 그 때부터는 입을 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 축적을 위한 기다림은 필수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맥락을 같이하면, 많은 작가들이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해주는 조언도 비슷하다. 글 쓰는 환경 아래 어느 정도 시간이 축적되어야 쓰는 일에 좀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꾸준한 독서, 필사, 결론이 있는 글을 매일 쓰는 일, 끊임없는 피드백, 수정, 퇴고. 모두 축적이다. 그리고 이것만이 글쓰는 시간을 좀 더 가볍게 해 줄 수 있는 비밀이라 한다.




호주 원주민들은 우리와 다른 말을 쓴다. 그들은 워커바웃(Walkabout)이라는 말을 쓴다. 워커바웃이란 간단히 말해 숲을 방랑하는 것이다. 정해놓은 목표도, 기한도, 루트도 없다. 발길 닿는대로 내가 원하는 만큼 숲을 돌아다닌다.

-토이비에른 에켈룬 <숲에서 >


호주 원주민들의 숲 속 방랑은 주로 성인이 되기 전 소년, 소녀들이 꼭 밟고 지나가야하는 의식이다. 성인이 되기 전 이들은 숲 속, 생자연으로 들어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한 경험을 수집하고 축적하기 위한 과정을 지난다. 자연에 기대어 살던 원주민들에게 생자연 속 방랑은 삶을 위한 필수 불가결의 시간이다.



제가 쳐본 슈베르트 피아노 곡 중 이 곡이 가장 기술적으로 어려운 곡이에요. 기술적 어려움이 핵심이 아니라 슈베르트가 얼마나 많은 상상력을 동원해 이 곡을 작곡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구조적으로 굉장히 진보적이고, 악장 간 쉼없이 한 번에 연결해 연주하는 첫 곡입니다. 2악장은 그 유명한 슈베르트의 가곡 '방랑자'의 주제를 따서 작곡했는데, 외로운 방랑자가 행복을 찾는 내용의 가사입니다. 슈베르트는 1악장에서 처음 사용한 그 주제, 리듬을 가지고 2악장 4악장까지 하나의 큰 예술, 소나타를 만들어 냈습니다. 저는 그 지점이 정말 경이롭고 훌륭하다 생각했어요.


-피아니트 조성진, 네번째 스튜디오 레코딩 앨범 <방랑자> 인터뷰 중


슈베르트는 본인이 작곡하고도 이 곡은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했을 정도로 어렵고 난해한 구조로 방랑자 환상곡을 만들었다. (내 사랑)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1악장에서 사용한 주제와 리듬으로 2, 4악장까지 하나의 큰 예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슈베르트를 경이롭다며 극찬했다.


이는 한 주제와 리듬안에서 무수한 변화를 끌어 낼 수 있는 화성학적, 리듬학적 레퍼런스가 슈베르트의 온 몸에 넘쳐났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으리라 생각한다. 조성진은 슈베르트의 그 경험의 축적을 예술적으로 재창조해 낼 수 있던 노력과 그 방랑의 시간에 찬사를 보낸 것이 아닐까.






글길 닿는 대로 써내려가는 방랑의 141차 매일 쓰기, 이 여정이 남겨둘 발자국이 어떤 모습일지 알 수는 없지만, 축적의 시간을 이리저리 엮으며 다니는 그 걸음엔 자유로운 유쾌함이 묻어난다. 호주 원주민들이 소년, 소녀를 숲 속으로 던져 넣듯 방랑하는 글쓰기에 온 몸을 내던졌다. 방대한 방랑의 시간이 녹아나는 슈베르트의 곡처럼 방랑하는 글쓰기에도 축적의 시간이 쌓여 어디든 자유롭게 흐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부유(浮游)하며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아 자유롭고 욕심없이 경쾌할 수 있는 그들, 방랑자. 어디든 공간적 제약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존재로 살고 싶었다. 비록 외로울지라도, 살아있는 자유를 찾아다니며 그것으로 만족을 느끼는 방랑자의 삶, 그것과 비슷한 삶을 바랬다. 이제 그 방랑의 발길은 글쓰기와 함께 내면으로 향하고 있다. 미지의 땅을 밟는 호기심 가득한 순수함으로 축적의 힘을 믿어본다. 그리고 오늘도 그 길에 축적의 발자국 하나 꾸욱 남겨둔다.




[사진: 볼로냐 방랑길 by 김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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