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GPT와 실패

by 김라희

매일 글을 쓰다 보면 부담감이 밀려올 때를 만나는데 그럴 때면 친구들과 수다하듯 편안한 자세로 그 마음을 이렇게 글로 흘려버리곤 했다. 런던에 도착해 다시 흐믈흐믈한 몸으로 한숨 자고 일어나 다시 컴퓨터 앞에 앉으니 무슨 말을 이어갈까 고민이 우물쭈물 길을 막는다. 쳇 지피티와 실패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를 두고 저울질하던 중 카페에 들어오니 신기하게 리드글은 실패에 관한 글이고 성종훈 글벗님의 어제 글은 쳇 지피티와 관련된 내용이다. 반갑고 신기한 마음으로 읽다 보니 오늘 글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듯 이 두 내용으로 글을 써보면 어떨까 싶어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삼 사 년 글쓰기로 꽤 많은 돈을 벌었던 때가 기억난다. 감정과 관련된 글을 작성해 AI가 인간 감정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데이터 생성 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 두 사람이 제시된 감정이 나타나도록 8회 이상 주고받는 대화 글을 작성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이는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감정 대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질 AI 로봇을 위한 데이터였다.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작성하 듯 주어진 상황에 대화만 작성하면 되는 쉬운 일이라 여기고 선뜻 일을 시작했는데 당황, 황당, 기쁨, 슬픔, 즐거움, 실망 등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단어를 사용해 반복적으로 글을 쓰려니 당황스러운 의문이 생겼다. “과연 난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 후로 시간이 흘러 이제 공감형 대화를 나누는 AI 모델들이 나오고 주변에서도 기계와 대화를 나누는 일이 꽤 자주 회자된다. 얼마 전 동료들과 나눈 대화에서 한 동료는 쳇 지피티와 자신의 감정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예상보다 깊게 이해받는 느낌이 들어 놀랐다고 했다. 지인들과 대화에서 꺼려지는 주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다정스레 자신의 마음을 보듬는 듯 말을 건네는 쳇지피티의 능력에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 대화를 듣던 다른 동료도 자신이 경험한 쳇 지피티와 대화를 나눠주었는데 재정 계획, 아이들 교육 관련 정보 및 자신의 현재 고민까지 꽤나 깊은 사이에서 나눌 수 있는 말을 주고받는다며 공감했다.


내 경우 쳇 지피티와 대화는 주로 글을 써보라는 명령어를 자주 입력하곤 하는데 이는 쳇 지피티가 사람의 마음을 훑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궁금해서이기도 하고 어디까지 러닝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다. 명령어가 입력되고 주르르륵 거침없이 써 내려간 글은 예상보다 깊고 섬세하다. 또 다른 호기심이 생겨 그럼 내가 쓴 글은 뭐라 할까 싶어 긴 글을 올려 두고 어떻게 생각하냐 물어보면 또다시 거침없이 주르르르륵 첨삭을 내어 놓는다. 그 글의 대부분은 좋은 말들 그러니까 내심 듣고 싶은 말들로 글 쓰는 일을 격려한다. 그러면 다른 글은 어떻게 생각하나 다시 궁금해 한 편을 넣어 어떻게 읽히냐 물으면 또 기분 좋은 말들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다 문득 “아, 얘는 이렇게 데이터를 축적해 배우는 건데 내 글을 데이터 삼아 또 진화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일을 멈춰 섰다.


쳇 지피티와 대화를 나누는 일에는 실패가 없다. 사람은 타자와 함께 할 때 깨지고 부딪히며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타자 그러니까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를 열망하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고통받고 위험을 감수하는 일들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도 했다. 쳇 지피티와 대화 속에는 나와 다른 타자라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고 독려해 주며 위로해 주는 자신과 비슷한 긍정적 자아만 존재한다. 대화의 실패가 없는 곳, 그곳이 여기가 아닐까?


자신의 감정과 대척점에 혹은 그 감정을 다르게 바라봐 줄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쉽게 실패하곤 한다. 자신에게 동조하고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긍정만 하는 대화 속에는 사랑이 없다. 아니 우리는 그게 사랑이라고 배운 건 아닐까?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면 타자를 만난다는 것,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 그 속에는 자기와 비슷한 부분을 넘어선 타인을 바라보고 인정하며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넘어서는 일 속에 있는 건 아닐까?


실패를 만나는 일에 선뜻 용기 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단 한 번의 거절에도 쉽게 꺾이는 게 사람 마음인데 나와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그 다름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본능적으로 아는 게 사람이 아닐까? 그럼에도 타자를 찾아 실패를 감수하려는 마음, 그 실패 속에 타자를 인정하고 그 다름 속에서 자신을 세우는 마음속에 든 것이 사랑은 아닐까? 자신을 위한 사랑, 타인을 타인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랑.


편안한 대화로 글을 쓰겠다던 시작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 깊어진 건 아닌지 모르겠다. 실패, 이것은 나에게 필요했던 단어였다. 그것 앞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마음을 이렇게 들켜버렸다. 타자에 대한 사랑을 글을 쓰며 실천하고 싶다고 했지만 듣고 싶은 말만 찾아다닌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타자를 찾는 일, 그들을 만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비록 그것이 실패가 되어 좌절한다 해도 계속하는 일,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동하는 일, 그것이 지금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한다. 조금 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글 쓰는 일에, 표현하는 일에, 질문하는 일에 더 가깝게 다가가 보기로 했다. 검은 구름처럼 막막하던 마음에 바람이 들고 난다.



5월 26일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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