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손님

by 김라희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문이 있어 그곳을 드나들며 정을 쌓는다. 그런데 어찌 내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아 사람 간의 정을 쉽사리 쌓기가 어렵다. 혼자만의 시간, 사적인 공간 그런 나만의 것을 지키느라 그 문은 굳게 닫혀있다. 누군가 다가와 그 문을 열려하면 두 눈만 빼꼼 보일 만큼 열어두고 그 틈으로 정을 나눈다. 그마저도 열기 전에는 오랜 시간 마음을 써야 한다. 어느 때는 그런 내가 답답해 그 문을 활짝 열어 환기라도 시키고 싶고, 더 활짝 열어 쉽사리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았으면 할 때가 종종 있다, 요즘엔.


누군가의 문을 여는 일도 어렵다 여긴다. 다른 이의 문도 내 것과 같이 단단히 잠겨 있거나, 활짝 열어 보이길 꺼려할 것이라 미리 짐작한다. 그래서 영국으로 온 것일까. 이곳에서 오래 살다오신 엄마 친구는 참 사귀기 어려운 사람들이지만 한 번 그들의 문을 열면 모든 것을 다 내어줄 만큼 정이 깊다고 말씀하셨다. 낯설지 않았다. 만나보지 않았어도 왜인지 나는 그들과 서로의 문을 지키며 그렇게 적당히 잘 지낼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건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의 착각이었다.


어느 날, 굳게 닫힌 문을 가진 여인은 완전 반대의 남자를 만났다. 그는 처음부터 뭐든 다 열고 사람 간의 정을 나눈다. 게다가 시끌벅적 목소리도 크고 구성지다. 그의 문은 누구든 열어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엔 자물쇠 같은 건 없다. 자기 집을 단단히 지켜낼 수 있는 믿는 구석이 있는 건지 아니면 가져갈 게 없다 생각하는 건지 그 보이지 않는 단단한 무언가가 무척이나 낯설었다. 그런데 왜인지 그 활짝 연 문에 숨통이 트인다. 시원하게 내뱉는 말에 속이 뚫리는 듯하다. 처음이다, 누군가의 문을 열고 시원함을 느낀 건.


문이 굳게 닫힌 집에 손님이 많을 리 없다. 정말 친한 친구 몇 명만 집으로 오곤 했다. 가장 사적인 공간에 누구를 들이는 일이 닫힌 문 여는 일만큼이나 쉽지 않다. 그러기에 다른 이의 집도 잘 가지 못한다. 그런 내가 용기 내어 그를 초대했다. 문을 열어두고 사는 그는 꽁꽁 닫고 사는 나의 사적 공간을 이해할 수 없다. 집에 와서 이것저것 돌아보며, 궁금해하는 게 많다. 조금만 천천히, 조금만 더 천천히. 그렇게 조금만 열려는 자와 다 열어 보려는 자, 둘은 줄다리기를 하며 옥신각신 서로를 그렇게 십여 년간 받아들이며 사는 중이다.


여름이면 우리 집 파시오 문은 항상 열려있다. 그러면 냉콩 손님 한 분이 몰래 찾아든다. 파란 눈에 긴 털, 도도하고 우아한 발걸음을 하고 말이다. 어느 집 고양이인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소리 없이 집 안으로 들어와 여기저기 탐색하고, 누워 쉬기도 하고, 배를 보이며 놀아달라 아양을 부리기도 한다. 그 손님이 오던 첫날 아무것도 모르고 주방에서 설거지 중이던 난, 그 몰래 온 손님의 파란 눈에 놀라 기절할 만큼 소리를 질렀다. 그 날 손님도 기겁하며 밖으로 내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파란 눈의 손님은 다음 날, 그 다음날 매일을 놀러 왔다.


이 손님은 본인은 누군지 말도 없으면서 우리 집 침실까지 궁금해한다. 나는 필사적으로 침실로 향하는 발을 막으려 하고, 남편은 그냥 두라며 괜찮다고 한다. 살콩살콩 자주 오시는 그 손님을 우리는 '지지'라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활짝 열린 문을 통해 제멋대로 왔다 가시는 손님을 맞으며, 천천히 그와 나의 속도로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침실만은 안된다고 몇 번을 말했더니 이제 얼씬하지도 않는다. 거실에서 놀고, 현관 복도에서 자고, 주방에서 장난을 친다.


파란 눈 지지와 몇 해의 여름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정이 들었는지 자주 그의 안부가 궁금하다. 우리 집 문을 언제나 마음대로 넘나들던 그 발걸음이 좋다. 하지만 짝꿍은 고양이는 너무 차갑다며 싫단다. 거리를 두었다가 또 갑자기 다가왔다가 다시 멀어지는 그 마음을 도통 모르겠단다. 그는 애완동물은 무조건 개가 좋단다. 난 이 천천함이 좋다. 조심스러운 발걸음과 행동도 이쁘다. 열듯 말 듯, 가까운 듯 아닌 듯 그런 사이였다가 어느 순간 그 문이 활짝 열리면 그제야 완전히 받아들이며 가까워지는 그런 사이가 좋다.


그래도 십여 년을 함께 사니 이제 서로를 닮아가는 구석은 있나 보다. 짝꿍은 활짝 열었던 그 문을 조금은 닫아두기 시작했고, 난 반즈음 더 열어두기 시작했다. 겨울이 되니 우리 집에 오시던 손님은 이제 그 발길을 멈추었다. 어느 곳에서 산책 중일지 동네를 걸어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다시 여름이 되면, 언제 발길을 끊었냐는 듯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자기 멋대로라도 찾아오는 손님이 그립다. 자물쇠를 풀어 버린다. 그리고 누구라도 다녀가도 괜찮다고 열어둔다. 자신만을 위한 공간을 지키는 건 자물쇠가 아니란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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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의 킬링포인트, 오동통한 발. 2019년 여름 ©김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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