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용기가 와 달라붙었다

듣는 귀가 좋아야 뭐라도 하지

by 김라희

"그 길이 가시덤불이라도 맨 발로 걸어 나갈 용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연 초가 되면, 엄마는 조심하라는 거 조심해 나쁠 것 하나 없으시다며, 가족들의 토정비결을 보곤 말씀해 주신다. 그런데 올 해는 항암 치료다 뭐다 해서 기력이 많이 쇠하셨다며, 괜스레 조심스럽다고 하셨다. 은근슬쩍 나라도 대신 부모님의 토정비결을 좀 봐보는 건 어떨까 하는 속내를 내비치신 거다. 한 해를 이렇게 보내려니, 내 년 신수가 궁금한 나도 핑계 삼아 봐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가족의 사주를 그분께 카톡으로 보내 두고, 약속 날짜를 기다렸다.


전화 통화 일정이 있기 하루 전 저녁, 짝꿍에게 이 일정을 알리니 웃음을 터트린다. 정말 그 사람에게 내년에 무슨 일이 있을지 물어보겠다고? 진심이야?라는 물음표 가득한 이탈리안 남자의 눈동자가 재미있다. 그 날 저녁 테이블은 샤머니즘부터 시작해 한국인과 이탈리안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미신(superstition)등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그러더니 농담 삼아 자기를 대신해 꼭 물어봐 달라며, 숫자 5개를 꼭 받아 오란다. 그는 절대 누군가가 자신의 미래를 점쳐 낼 수는 없다는 굳은 생각을 이렇게 드러내며, 굿 나이트 인사를 남긴 채 침실로 들어갔다.


석연찮은 남편의 반응과 반신반의의 내 궁금증으로 다음 날 이른 아침 그 분과의 통화가 시작됐다. 굵직하게 들려오는 저 너머 목소리는 무슨 고민으로 상담을 원하는지 묻는다. 몇 가지 고민을 내어놓았더니, 돌아오는 건 깊은 한숨이다. 그 후 조심스레 내어놓는 말들의 끝에 기억에 남는 표현이 몇 개 있었는데, "극기를 한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마음과 정신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왜인지 웃고 넘길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 또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른 이와 비교, 눈치 없이 스스로를 갖추어 가는데 노력을 기울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길이 가시덤불이라도 맨 발로라도 걸을 수 있는 용기로 걸었으면 합니다."


한 숨을 먼저 내 쉰 건 저 너머였는데, 어느덧 그 한숨이 내 입에 와 달라붙었다. 마흔을 넘겼으니 이제 좀 편하게 걸어볼까 하는 얕은 기대심이 내심 있었는데, 돌아온 대답이 "기대 이상"이다. 가시덤불을 맨 발로라도 걸을 수 있는 용기라니. 그것은 무엇일까? 가시덤불은 피하면서 잘 돌아 걸어가는 게 아닐까? 극기? 극기의 정신은 무엇일까? 살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단어들이 내 앞에 낯설게 펼쳐진다. 그렇게 저 너머의 목소리는 두 시간가량 변함없이 정제된 말로 무거운 단어들을 신중히 건넸다.


며칠이 지나, 그 날의 대화를 꼼꼼히 적어 둔 다이어리를 펼쳤다. 천천히 다시 읽다가 친한 동생과 나눈 대화 한 토막이 떠올랐다. 그 동생은 요즘 브런치에 올라오는 내 글을 종종 읽고 있는데, 앞으로 글을 계속 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얘기했다. 사실, 이런 얘기를 듣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누군가는 "글을 써 보는 거 어때?"라는 제안을 스쳐가는 바람처럼 곁에 남겨두었다. 그럴 때마다 드는 마음이 있었는데, '글은 아무나 쓰나?' '그런 건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나처럼 이렇게 평범한 사람이 무슨 글이야.' 오랫동안 언감생심 글 쓰는 일은 내 것이 아니라 미리 겁을 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이어리 속 메모를 읽던 그 날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의 한계를 한정 짓고,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규정지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구나. 찰떡같이 알아듣고, 옹골차게 한 번 움직여봐도 시원찮은 현실에 용기를 내어볼 틈도 없이 문을 닫아 버린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어. 적어 둔 긴 메모를 다시 찬찬히 읽어 본다. 그리고는 그분의 상담 방법에 다소 특별한 구석이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한숨을 길게 내쉬며, 극기를 해야 한다는 엄포로 시작은 했지만, 대화의 끝에 용기라는 것 한 번은 내어보고 싶구나 하는 마음을 일게 했으니 말이다. 그 날의 대화는 앞 날을 예견하는 일이라기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온 선배의 가르침 비슷하게 남았다.


삶에 용기가 가득 들어찼던 때는 스물 중반 내 키 반을 훌쩍 넘는 커다란 이민 가방과 노트북을 짊어지고 홀로 영국으로 넘어올 때였다. 지금 다시 하라면 할 수 있을까? 그때 너무 힘이 들었었나? 그 후로 가장 쉽고 편한 선택만을 해오고 있다. 그 사이 나도 모르게 잃어버렸던 건 용기가 아닐까. 그 날의 대화는 그 용기를 다시 찾아 걸어보아도 괜찮다는 응원의 말이 아니었을까. 듣는 귀가 좋아야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던데... 그저 하나는 확실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한계 지어 가능성과 희망이 가득할지 모르는 문을 스스로 닫아 버리지는 말라는 것.


주변을 둘러보면 서슴없이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이든 밀고 나가는 사람들의 행동력 앞에서 가끔은 무모하다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 보니 영국까지 내디딘 발걸음 속에 숨은 건 무모해 보이는 용기 가득 행동력이었다. 여전히 쓰는 사람이 되려면, 특별한 구석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특별함은 쓰다 보니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그 순서를 바꿔본다. 특별해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다 보니 특별해지는 것! 그렇게 뜬금없이 용기가 와 달라붙었다. 그러니 듣는 귀가 좋아야 뭐라도 한다는 말이 맞긴 맞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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