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대길' 문자를 받고는 봄이 오나 보다 했는데, 영국에는 폭풍 '다아시 (Darcy)의 영향으로 강추위(bitter cold)와 눈만 한창이다. 돌림 노래처럼 들려오는 서울과 런던의 눈 소식, 겨울이 지나가는 길목에 만난 추위는 왜인지 더 맵고 시린 듯하다. 하루 종일 창 밖을 내다보며, 2월의 늦겨울을 마음껏 느껴본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바람소리와 함께 보내는 시간, 무엇으로 적적한 마음을 달래 볼까. 불현듯 며칠 전 산책길에 만난 활짝 핀 분홍 동백과 개나리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이번 추위로 고생 좀 할 텐데... 잘 견뎌내겠지? 그리고는 더 이쁘게 활짝 피어나겠지?' 이내 마음이 설렌다.
산책길 봄이 오는 소리를 누구보다 빨리 듣고 싶다. 가지마다 올라오는 동글동글 꽃망울이 다 피기 전에 더 자주 만나고 싶다. 아직 겨울이 여기에 있는데, 봄을 맞으려 설레는 마음이 괜히 미안하다. 무거운 옷 걸치고, 긴 어둠에 서 있느라 노곤해진 겨울의 마음을 여리게 올라오는 꽃봉오리와 새싹을 바라보며 봄의 마음으로 갈아입고만 싶다. 저 멀리 서울에 있는 엄마는 이런 딸의 마음을 아시는지 '봄처녀'를 보내주셨다. 새 풀옷을 입고, 진주 이슬 신고 오시는 봄의 선율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하얀 눈 앞에 두고 봄 타령하는 이 아침이 참으로 복되다.
꽃 봉오리가 추위를 뚫고 올라오는 이 맘 때면, 강낭콩 싹을 틔우던 초등학교 때가 떠오른다. 물을 잔뜩 먹은 거즈 위에 강낭콩을 올려두고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맞춰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조그마한 연두 초록잎이 두터운 떡잎을 비집고 살짝 고개를 내민다. 시장에서 사 온 단단한 강낭콩 속에 여린 새싹이 톡 하고 나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 아기 잎은 어디서 생긴 거냐고 묻던 그 호기심 가득하던 마음을 잊고 싶지 않다. 여린 새싹이 자라나 하얀 꽃을 피울 때까지 정성을 기울여 보살피던 그 시간은 지금껏 소중한 추억이다.
그 후로 식탁에 오른 콩을 보는 마음이 달라졌다. 무엇이라도 생명을 틔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신비로움이 자리했다. 그래서였을까? 감자, 고구마, 양파, 파 등 싹을 틔울 수 있는 모든 채소들을 삼삼오오 키웠다. 어떤 모양의 싹이 숨어 있는지, 꽃은 어떻게 피워낼지 너무도 궁금했다. 그렇게 하나 둘 키우기 시작하다 보니 어느덧 주방 한 켠에는 한동안 내 작은 새싹 밭이 생겨났다. 하얀 감자꽃이 핀 창가 옆에서 이대로 계속 키우면 감자도 먹을 수 있는 것이냐 묻던 그 천진하던 아이는 아직 어딘가에 남아 있으려나?
농부의 마음이라는 것은 또 어떤 것일까? 흙을 제대로 밟고 살아본 적 없는 불쌍한 도시 사람에게 아무것도 없는 흙에서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농부의 손은 신기에 가깝다. 긴 인내와 자연에 대한 이해로 열매를 맺어 곡식을 만들어 내는 그 손이 마법사의 것과 무엇이 다를까. 씨를 묻어두고 싹이 트기를 기다리고, 그렇게 자라기 시작한 온갖 생명을 품으로 길러내는 그 인내를 따라가 보고 싶다.
도시에서 급한 움직임은 미덕이 될 때가 더 많다. 시간에 쫓기는 순간이 잦은 이곳에서 진득한 인내가 자라날 자리는 그리 넉넉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였을까? 열매를 기다리는 내 인내 또한 참 짧다. 무엇이든 빠르게 익히는 재주가 있어, 여기저기 뿌리는 씨앗은 많을지 몰라도 계획한 만큼 결과가 "빨리" 나타나지 않으면 속이 탄다. 그러다 이내 다른 곳으로 냉콤 옮겨가 다시 새로운 씨앗을 뿌려두고, 급하게 열매를 기다린다. 그게 그렇게 급하게 이뤄질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인내는 누구의 것일까?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결과를 내어놓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더 잘 들리는 세상에 천천히 열매가 익어가는 시간을 기다리는 그 마음은 욕심일까? 차갑게 얼은 땅을 비집고 나오는 수선화의 초록잎은 어둠 속에서 봄바람을 기다리던 고독의 시간을 말해준다. 농부의 품을 먹고 자란 열매는 그 진득한 인내를 기억하라고 귀띔하는 듯하다. 느긋한 인내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건 순리대로 흐르게 마련이라고 저 멀리 불어오는 봄바람이 다시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