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만의 퇴사, 그리고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2023년 상반기, 나는 4년 넘게 다닌 정든 회사를 뒤로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이직을 하게 됐다.
이직한 회사는 유니콘이라고 불리며, 크고 빛나는 사옥과 사내카페가 있는 멋진 곳이었다. 첫 출근 후 며칠 동안은 새로운 직장과 동료들에 대한 기대에 설레는 출근길이 펼쳐졌다. 단 며칠 동안은.
새로운 조직과 업무들이 어느 정도 눈에 익어갈 즈음부터 나는 서서히, 그리고 직감적으로 이번 이직이 실패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입사 전에 막연하게 기대하던 업무들과 회사의 모습이 현실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으며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서 적응하거나 상사와의 면담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회사에 문제가 있다기보단 마치 나에게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에 가까웠다.
머리가 아찔했다.
이렇게 커리어에 중요한 시점에 어째서? 모든 직장인이 성공적인 이직을 할 순 없는 거겠지만 그중에서도 하필 내가 실패할 줄은 몰랐기에. 솔직히 말하면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홧김에 이직을 결정한 것도 있었으니 이런 결과가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자책하기보단 대책을 고민하는 게 시급했다.
'빠르게 퇴사해야 할까? 조금 더 다녀볼까? 너무 성급한 판단을 하는 건 아닐까? 지금 나간다고 뾰족하게 갈 곳이 있을까? 다니면서 이직하는 건 어떨까? 전 회사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퇴사한다고 인사까지 다녀놓고선 이런 결말이라니... 아 쪽팔려라!'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느라 여러 날 밤을 밤새 뒤척이며 보냈다. 그리고 결국 내 커리어 지향점은 이 회사에 있지 않으며, 여러모로 이곳에 오래 다닐 순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애매한 경력을 쌓을 바엔 빠르게 정리하는 걸 선택했고 한 달 만에 빠르게 퇴사했다. 물론 모범적인 결정은 아니고 지금도 여러 가지로 반성한다. 나의 부끄러운 이 과정들을 복기해 볼 겸 현재의 생각들을 써보려 한다.
사실 이 이유에 대해 몇 주 동안 고민했었다. 이직실패는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두세 번씩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기에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싶었다.
그리고 고민해 본 결과, 내 생각엔... 내가 이직에 실패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했었다는 것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신중하게 업계동향을 살피며 커리어 방향부터 정해야 하는 시점에 마음만 급했다. 그래서 눈을 질끈 감고 이직이라는 골을 향해 달려갔다. 이직은 이직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었는데 바로 내가 그랬다는 것을 다 끝나고 나서야 알았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냅다 뛰기만 하다가 도착하고 나서야 아차 싶었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급했던 이유는 전력질주로 일만 하다가 지쳤을 때에야 비로소 이직을 알아보기 시작했던 탓도 있다.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니 마음이 급할 수 밖에…^^;;
그 당시 내가 한 발짝 물러서서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더라면, 조금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신중하게 움직였더라면… 하는 후회는 반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남는다.
요즘은 사실 이직시장 혹한기라 돌아간다고 해서 선택지가 많진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마음의 여유를 갖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다니는 회사가 너무 힘들고 지쳐서, 구직기간이 길어져서, 계속 탈락만 해서... 등등 이직과정에는 사람을 조급하게 만드는 것들이 정말로 많다. 그래서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천천히, 나에게 맞는 일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하고 맞는 회사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보는게 순서였던 것 같다. 그랬다면 나와 안 맞는 회사를 고르지도 않았을 거고 설령 안 맞더라도 그 때와 같은 고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밑바탕이 없었기 때문에 이직 직후가 더 혼란스럽고, 적응하랴 뒤늦게 고민하랴 혼자서 힘든 시기를 보냈던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100%는 없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직장이 기대에 딱 맞기란 불가능하기도 하고, 이직은 마치 소개팅 같아서 아무리 재봐야 직접 만나고 부딪혀봐야 결론이 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가 뭘 원하는지 충분히 고민한다면 애초에 나의 짝이 아닌 곳들을 사전에 걸러내는 작업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나는 한번은 실패했지만, 이를 바탕으로 다음번엔 좀 더 성숙한 결정을 할 수 있을거라 믿으며 이 글을 마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