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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May 29. 2016

파리 북역(Gare Du Nord)은 꽤나 무서웠다

당신의 첫 여행은 어떠셨나요


나는 해외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새로운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하는 몇 안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 치고는 적지 않은 나이에 처음 해외여행을 떠났다. 뒤늦게 눈을 떴다고 해야할까. 해외여행을 가는 알맞은 나이란 없지만 만약 나중에 자식이 생긴다면 난 한 살이라도 이른 나이에 해외여행을 보낼 것이다. 조금이라도 편견과 선입견이 생기기 전에 다양한 문물을 체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9년 5월 약 40일 간 유럽여행을 떠났다. 첫 해외여행치고는 다소 긴 일정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 둔 시점이라 직장인이 되면 이렇게 긴 여행을 다시는 떠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길게 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 결정은 두고두고 잘 한 선택이라 생각 중이다. (적극 지원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비록 이 글을 읽으시진 못하시겠지만..)


모든 첫경험이 다 그렇지만, 나역시 이때를 잊을 수 없다. 경험의 폭이 사람을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지 직접 체험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쓰다보니 다소 길어졌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 나라는 사람의 첫 해외여행 발자취를 따라가며 읽는 분들의 첫 해외여행도 함께 떠올려보셨으면 좋겠다.


2009년에 떠난 40일 간 유럽여행 동반자들. 말 그대로 배낭여행이며 사진 속 짐 중 상당수는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다. R.I.P


공항가는길


아침 9시쯤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5월 초순의 선선한 아침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좋은 기분과 함께 간단히 기합을 넣고 공항 리무진 타는 곳으로 향한다. 그 당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버스 정류장은 (구) 시민회관 앞이었다. 비록 건물은 사라지고 공원이 되었지만 어린시절 추억이 깃든 장소 앞에 서니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약간이나마 줄어들었다.


30분 정도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생전 처음보는 공항버스. (그 전까지 공항에 갈 일이 없었다) 어색하게 8천 원을 현금으로 내고 올라탔다. 버스가 텅 빈 탓에 나는 자리 선택에 대한 무한 자유권을 획득했고, 내가 좋아하는 오른쪽 창가자리에 앉았다.


'부릉부릉..' 이윽고 버스가 출발했고 나는 여행 전부터 상상으로만 꿈꿔왔던 순간을 맞이했다. MP3 플레이어를 꺼내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찰랑거리는 기타 반주와 함께 가슴을 설레이게 만드는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아무도 없는 파란 새벽에 차가운 바람 스치는 얼굴 불안한 마음과 설레임까지 (중략) 또 다른 길을 가야겠지만 슬퍼하지는 않기를 (중략) 이젠 익숙한 공항으로 가는 길 (공항가는길 듣기)


My Aunt Mary의 '공항 가는 길' 정말 기가막힌 선곡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내가 여행을 떠난다면 공항 가는 길에 필히 듣고야 말겠다라고 생각한 노래였다. 비록 익숙한 공항가는 길은 아닐지라도 불안한 마음과 설레임은 정말 지금의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지니까.


결혼하여 서울에서 살고있는 지금은 버스보다는 공항 지하철을 애용한다



공항에서


공항버스는 출발 후 약 한 시간이 지난 오전 10시에 인천공항 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오후 1시 반 출발이라 시간이 굉장히 많이 남은 상태. 여행이 익숙해질 수록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과 비행기 탑승시간 사이의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데 이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일찍 도착한 기억이 난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한 동안 좀 어리바리했던 기억이 난다. 공항은 엄청나게 크고 출국 절차는 여행이 처음인 나에게 분히 복잡했다. 어디에서 무얼 해야할지 인터넷과 여행책자로 예습하긴 했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니 머리속이 멍해지는건 순간이었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여기저기 물어본 덕분에 항공사 카운터에서 발권도 하고 보안검색대도 무사히(?!) 통과했다. 지금도 여전히 항공사 카운터에서 짐을 붙일 때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수줍게 몸무게를 재고 내 캐리어가 사라질 때면 안녕과 건강과 무사도착을 기원했다.


여행을 자주 다닌 지금도 공항엔 되도록 일찍가려한다. 한산한 공항 풍경이 좋다


두 가지 입국 미션을 무사히 통과하고 면세구역에 진입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천공항만큼 면세구역이 잘 되어 있는 공항은 본적이 없다. 비행기를 타고 빠져나가는 순간까지 여행객들의 지갑을 열어젖히려는 시도는 흡사 유럽의 어느 소매치기를 보는 느낌이다. (격한 표현이지만 개인적 느낌은 이렇다..) 탑승 게이트로 가는 동안 계속 이어지는 면세점의 유혹은 흡사 사이렌의 노랫소리 마냥 강력했지만 첫 여행자였던 나는 그런 노래에 귀를 기울일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앞만 보고 비행기 티켓에 적힌 탑승 게이트로 이순재 선생님 마냥 직진한 나는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비행기에 그제서야 놀라며 '와 나 진짜 여행을 가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내가 타고갈 비행기는 나중에 견과류로 유명해진 항공기였다. '프랑스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줘야해~'라며 난 나를 태울 비행기 사진을 찍었고 이후 여행을 떠날 때 마다 나를 태울 비행기를 찍는 것은 일종의 무사안전을 기원하는 의식마냥 되풀이되었다.


언젠가부터 찍기 시작한 내가 타고갈 비행기 사진. 출발 전 안전 세레모니 정도라 할까


첫 비행


탑승게이트는 전광판에 새겨진 시각인 1시에 열렸고 사람들은 저마다 무언가에 홀린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1등석/비즈니스석 승객용 출입구와 이코노미석 승객용 출입구가 따로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지불한 비용에 따라 편의가 달라지고 사람을 가른다니. 지금이야 여러번 보다보니 당연하듯 생각하지만 이후 나는 비슷한 메커니즘의 장면을 여러번 목격한다. 그리고 몇 년 뒤 마이클 샌델 교수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서 정확히 이 장면을 언급한다.


비행기 출구 앞에서 승무원들은 자본주의 미소로 나를 맞이했고 나는 있어 보이려는 생각에 영자 신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신문은 파리로 가는 10시간 내내 단 한 번도 펴진적이 없었다) 두툼한 비행기 문을 탕탕 두들기며 '잘부탁한다' 말 한마디 건내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비수기 평일에 탄 덕분인지 공항버스와 마찬가지로 비행기 안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버스와는 달리 자리 선택의 자유는 없었고 항공사에서 지정해 준 곳으로 얌전히 걸어들어갔다. 다행히 탑승객이 많지 않아 좌석 한 열을 전부 혼자 쓸 수 있었다. (나중에야 안 것이지만 이런 행운이 흔치 않았..)


귀국 후 로또라도 사야하는 상황


처음 앉아본 비행기 좌석은 너무나도 갑갑했다. 덩치가 큰 사람은 2개 좌석이라도 예약해야할까.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버티기엔 비행기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정말 열악했다. 이것저것 뒤적이고 있는데 이윽고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마치 롤러코스터가 급하강을 하기 전 오르막을 천천히 오를 때의 위기감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 평온은 오래가지 않아!!)


천천히 이동하던 비행기는 이윽고 살짝 정지했고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제 내려가는구나 아..아니 올라가는구나!!! 바로 이 순간이 롤러코스터의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 직전 살짝 멈추는 그 순간이다! 비행기는 이내 이륙을 위해 급가속을 시작했고 영화에서나 볼 법한 온몸이 뒤로 젖혀지는 (기분탓이다) 체험을 했다.


더더더더덜덜덜덜 비행기는 온몸을 흔들어댔고 크아아아앙 괴성을 질러대며 어느 순간 붕~하고 가볍게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마음 속 가득 기도문을 수없이 읍조렸고 평소에 찾지 않던 하느님 성모님 예수님도 수십번 소환했으며 양손엔 힘을 가득주고 식은땀이 흘렀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듯 평온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훗, 이정도야'


하지만 처음 타 본 비행기는 이륙하고 착륙할 때만 재밌고 신기했고 하늘에서는 그냥 그랬다. 눈감고 있으면 그냥 열차를 타는 느낌과 비슷한게 신기했을 뿐...이게 다라고? 그럴리가. 그냥 그랬다고? 그럴리가. 난기류를 만나면 이런 생각이 쏙 들어간다. 이륙할때 소환한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이 다시 소환되신다. (아..저때문에 많이 바쁘시죠?) 비행기를 아무리 많이 타도 난기류는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하..


땅에서 먹으면 별로인 것도 이상하게 하늘에서 먹으면 맛있다


기내식은 그냥 그랬고 간식으로 주는 피자는 매우 훌륭했다. 나중에 유명해질 그 견과류를는 마음에 들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정도 순항하자 그제서야 비행기 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국적기여서 그런지 대부분이 한국사람이었지만 드문드문 노랑머리 외국인들이 앉아있었다. 하지만 '10시간 뒤에는 내가 외국인이 되겠지?'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했다.


앞 좌석에 앉은 독일에서 온 꼬꼬마들이 불현듯 뒤돌아보며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왜이래 나도 너네가 신기해' 확실히 서양 아이들은 동양 아이들에 비해 뭔가 타고난 체력이 남다르다. 비슷한 좌석에 탄 한국 아이는 한 시간 정도 울다 지쳐 잠들었는데 서양 아이는 무려 세 시간을 계속 울어댔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은 매우 지루했다. 좁은 좌석에서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고 앞에 있는 모니터로 영화를 이거 보다가 저거 보다가 잠을 청하기도 했다가 멍 하니 앉아 있기도 했다가 별 짓을 다했지만 시간은 무척이나 더디게 흘러갔다. 이 때 이후로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 리스트에 '비행기 안에서 바로 잠드는 사람'이 추가되었다.


비행기안에서 점점 외국인이 되어가는 순간 비행기는 파리 상공에 도착했다.


언제나 창가쪽 자리에 앉는다. 이 풍경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다


CDG 도착


비행기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귀는 멍멍해지고 이륙할 때와 난기류를 만났을 때 나타나신 분들이 고대로 재출연하셨다. 다행히 첫 착륙은 굉장히 매끄러웠고 주변에 있는 모두와 '살아서 내렸네요'라는 안녕의 눈빛을 교환한 뒤 비행기에서 가볍게 내렸다.


드디어 처음으로 외국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지만 사실은 땅이 아니고 건물이었지. 공항에서는 내가 어디 도착했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다만 간판의 안내문이 한글에서 영어 등으로 바뀌어 있고 외국인이(사실은 내가 외국인이지만) 주변에 많아진 것으로 미루어 '외국이다' 짐작할 뿐.


입국장은 한산했고, 파리에 왜 왔냐는 간단한 직원의 물음에 '놀러왔어'라고 대답하자 'ㅇㅇ' 이라고 대답하며 여권에 입국 장을 쾅 찍어주었다. 외국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도장인 셈이다. 곧 수화물을 찾기 위해 사람들의 행렬을 뒤쫓았고(모를땐 다수를 쫓아가는게 답이라는 걸 이 때부터 본능적으로 느꼈다) 나올듯 안나올듯 다른사람들 꺼 다 나오는데 왠지 내꺼만 안나오는 것 같아 라는 안달감을 느낄때 즘 익숙한 나의 짐이 나왔다. (비행기에서 빨리 나와봤자 다 소용없어!)


처음 타 본 RER. 낡고 오래되었지만 정겨웠다


입국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마친 뒤 드디어 입국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한마디로 아수라장.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뒤섞여 공항 안을 가득 메웠다. 벨기에로 가는 고속열차인 탈리스를 타기 위해서


보안 검색대를 또 통과하고 짐을 찾으러 사람들 뒤를 졸졸 따라갔다. 어디서 수화물을 찾아야 하는지 몰랐으니까. 모를 땐, 대세를 쫓으면 되는 거다. 아무튼 수화물을 찾고 잠시 의자에 앉아서 공항에서 파리 북역(Gare du Nord)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색했다. 파리 북역에서 벨기에로 가는 고속열차인 탈리스를 탈 수 있으니까.


파리 CDG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유레일 패스 소지자라면 RER-B line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 파리 북까지 갈 수 있는 RER티켓을 무료로 주기 때문이다. (RER은 파리에 있는 14개 지하철 노선과는 달리 외곽지역을 연결해주는 전철 쯤 된다)


근처에 보이는 아무 매표소에 들어가서 유레일 패스를 보여주며 북역까지 가는 공짜표를 달라고 하면 된다. 다만 그 티켓은 북역까지만 유효하니 그 다음 역으로 가려면 북역에서 또 다시 티켓을 사야한다. 우여곡절 끝에 RER 플랫폼에 내려갔고 어느 역무원의 도움으로 북역으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었다.


CDG에서 RER을 타고 파리 북역에 도착했다.


무서웠다. 파리북역(Gare du Nord)


지금이야 워낙 노련한 여행자인 탓에 공항 입국 이후 숙소까지 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상세히 담아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리지만 여행 초보였던 이 때에는 경황이 없었다. 카메라고 뭐고 내 몸 내 짐 하나 지키기 바빴고 제대로 찾아가기 바빴다. (사진이 없는 것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 타 본 RER안은 사람도 없이 굉장히 조용했다. 노선표를 보고 또 보며 나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거야 제대로 가고 있는 거야' 지금 같으면 데이터 로밍을 신청한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구글 지도도 켜보며 바로 확인했겠지만 2009년만 해도 그런게 전혀 없어서 사전에 입수한 정보가 전부였다.


열차 노선도에 찍힌 역을 하나하나 세다보니 이윽고 어눌한 발음으로 gare du nord를 말하는 방송이 들렸고 저녁 7시쯤 북역에 내렸다. 기차에서 내려 플랫폼에 발을 내딛고 주위를 둘러보니 비로소 '정말 외국이네, 여기서는 내가 외국인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첫 해외도착지였던 파리 북역. 고풍스럽고 웅장한 이 건물이 나에겐 온갖 악귀로 가득한 던전이었다.


기차역은 거대했으며 어둑어둑하고 생각보다 낡고 지저분했다. 주변을 거니는 사람들은 전부 나보다 덩치가 컸다. 아니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외국인이었다!(사실은 내가 외국인인데) 태어나서 다른 나라 사람을 이렇게나 많이 본 경험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조금 과장을 하면 정말 나홀로 다른 인종인 듯한 느낌? 벨기에로 향하는 탈리스를 타기 까지(밤 9시 55분) 시간이 꽤 남아서 북역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공항까지는 무언가 나를 지켜주는 느낌이 들었는데 파리 시내에 도착하는 순간 야생에 홀로 남겨진 어린 사슴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주변을 서성이고 어슬렁거리고 스쳐 지나가는 모두가 나를 잡아먹을 포식자로 보였다. 덩치큰 남자들이 지나갈 땐 괜시리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걸음을 재촉하고 주변을 경계하며 걸었다.


하지만 이런 경계심도 단 하나의 본능에 무너졌는데 바로 배고픔이었다. 너무나 배고파진 나머지 무서움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보이고 오로지 먹을 것을 찾기 시작했다. 파리 북역을 빠져나오자마자 본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처음 본 유럽의 하늘이었다. 저녁이 되어 한 낮의 푸르스름한 빛에서 거무스름한 빛으로 바뀌는 가운데 자취를 감추고 있는 해의 흔적이 푸른색과 검은색이 뒤섞이는 하늘 한가운데를 붉게 물들였다. 너무나 예뻐서 무서움과 배고픔마저 몽땅 잊어버린 채 한참을 바라봤다.


기억 속에 콱 박혀버린 아름다운 장면


유럽의 하늘은 언제봐도 예쁘다. 아마도 하늘 자체도 예쁘지만 하늘 아래 담긴 풍경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보이는 밋밋한 건물이 아니라 영화에서만 보던 고풍스럽고 덩치 큰 건물 아래 아담하게 자리잡은 네온사인을 밝힌 레스토랑. 한동안 나에게 유럽이라는 이미지의 전형이 된 모습이다. 그냥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자꾸 보다 보니 이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지만 이 때는 정말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원래, 처음은 다 그런 것 아닌가


하늘은 이내 밤의 기운으로 뒤덮였고 문득 내 처지를 다시 깨닫고는 먹을 곳을 찾았다. 긴장하고 뻣뻣한 몸을 이리저리 돌려 주변을 둘러보니 낯익은 곳이 눈에 보였다. SUBWAY. 낯선 곳일수록 기대하는 수준의 맛을 보장하는 패스트푸드점이 나을 것 같아서(사실은 돈이 없어서) 반가운 마음에 외국에서 맞이하는 첫 식사로 서브웨이를 선택했다.


나에게 인생샌드위치를 만들어준 파리 북역 근처 서브웨이. (넌 나에게 X을 줬어)


그런데 우스운 건, 한국에서도 서브웨이를 이용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굉장히 반가웠다. 마치 한국에서도 친하지 않았던 사람을 외국에서 만났을 때의 기분이랄까.


하지만 덕분에 주문방식을 모른 채 가게에 들어섰는데 종업원이 영어를 할 줄 몰라 주문하는 나도 주문받는 그도 굉장히 답답해했다. 그러다가 둘 다 그냥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것저것 다 넣어버리고 샌드위치를 완성했는데 자리에 앉아 한 입 베어무니, 언어소통의 부재가 얼마나 괴상한 먹거리를 만들 수 있는지 알게된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연이은 충격을 안겨준 인도의 어느 빵집. 미식의 나라라며? 미식의 나라라며!!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의 첫 끼니가 괴상망측한 서브웨이였다니.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탄식할 노릇이지만 이 때는 돈도 없었고 노하우도 없었다. 불쌍한 2009년의 나. 아무튼 서브웨이에서 괴작을 맛보고도 시간이 남아 북역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북역을 기준으로 왼쪽 길과 오른쪽 길이 있었는데 오른쪽 길은 뭔가 무서워보여서 가지 못했다. 분위기도 안좋아보였고. 그래서 안전해보이는 왼쪽 길을 택해서 조심히 걷기 시작했다. 인도 사람들이 하는 음식점이 많이 보였는데 뭔가 맛있어 보여서 서브웨이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용기를 내어 들어가 빵과 비슷한 것을 구입하고 다시 북역으로 돌아왔다. (그 빵은 벨기에로 향하는 탈레스에서 맛보았는데 서브웨이를 가볍게 뛰어넘는 폭탄이었다)


너무나도 신기하고 낭만이었던 타임테이블. 차르륵 소리가 매력이다. 21:55분에 내가 탈 열차가 보인다


북역은 여전히 어둡고 무서운 분위기였고 영화 언더월드에서나 볼 법한 사람들만 사람들만 지나다녔다. 괜시리 목을 움켜쥔 채 탈레스를 기다리며 챠륵챠륵 넘어가는 타임테이블을 보기도 하고, 괜시리 안내판 같은 곳에서 현지인인냥 무언가를 읽어보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거대한 북역의 천장을 넋놓고 바라보기도 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철저하게 낯선 환경에 떨어진 기분을 만끽한 순간이었다.


결국 밤 9시 50분이 되어 벨기에로 가는 탈리스에 올랐고 지정된 좌석에 앉아 출발을 기다렸다. 열차 안에는 동양 사람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었다. 고요히 출발한 열차는 캄캄한 파리의 밤을 가로지르며 달렸고 정말 은근슬쩍 국경을 넘어 브뤼셀 미디역에 정차했다. 그리고 약 40일 간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긴 여정의 시작이자 여행 만렙길의 시작인 벨기에로 향하는 탈리스 열차 안


돌아왔다. 파리북역


이후 벨기에 - 네덜란드 - 독일 - 체코 - 오스트리아 - 이탈리아 - 스위스 -스페인을 거쳐 정확히 한 달이 지난 뒤 다시 프랑스 파리로 돌아왔다. 파리에서도 5일을 보낸 뒤 영국 런던으로 가기 위해 다시 파리 북역을 찾았다.


유럽 여행의 시작이었던 북역을 한 달 만에 다시 찾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예전의 그 어둡고 무서웠던 분위기를 떠올리며 약간 긴장한 채 기차역에 들어갔다. 그런데 어찌된일이지? '여기가 예전 그 북역 맞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웅장하고 거대한 기차역은 밝고 유쾌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역 안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인상좋고 기분좋아 보였다. 영화 언더월드가 아니라 미드 프렌즈에서나 볼법한 친근한 캐릭터들로만 보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한 달 전에는 보이지 않던 북역의 세세하고 소소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런게 있었나? 이런게 있었다고? 이건 언제 여기 있었지?


너무나도 아름답고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파리 북역. 비단 도착 시각이 문제는 아니었다


너무나도 놀라 북역 밖으로 나왔다. 한 달 전과 동일하게 역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잠깐만, 그 위험했던 길이 오른쪽이었나 왼쪽이었나? 찾을수가 없어?!! 어느 길도 전혀 위험해보이지 않아!!' 한 달 전 들렀던 서브웨이와 인도 빵 가게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북역 주변을 한바퀴 도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다시 북역으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여기에 도대체 무슨 변화가 생긴거지? 저녁이 아니라 낮에 와서 그런건가? 런던으로 향하는 유로스타를 기다리며 별 생각을 다 하다 내린 결론은 바로 이거였다 "북역이 달라진 게 아니라 내가 달라졌구나"  약 한 달 간 유럽을 누비며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한 달 전의 나와 지금 이순간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내 인생에서 이런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분을 감정을 느낀 순간은 이 때가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무서웠던 북역 주변길도 여유롭고 거침없이 걸었다. 이렇게 좋은 길을..


같은 장소를 한 달 기간을 두고 찍었다. 왼쪽은 2009년 5월 7일, 오른쪽은 2009년 6월 9일.  같은 장소지만 다른 풍경으로 보이듯 한 달 전 내가 본 풍경과 한 달 뒤 내가 본 풍경이 서로 달랐다. 내가 달라졌기에..


경험이라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온 몸으로 체험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나이가 어릴 수록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것 같았다. (그렇다고 또 생각과 가치관이 형성되기 전인 아주 어린 나이에 가면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이런 컬쳐 쇼크? 갭이 안느껴질 것 같기도 하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진 탓에 끝까지 읽은 분이 계실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도 슬슬 걱정이 되지만 어디선가 읽었던 감명깊은 문구로 마무리를 대신한다.


"나는 책을 읽었고 책장에 꽂았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여러분들의 첫 여행은 어떠셨나요?



words by

lainy


http://lainyday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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