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홍콩을 논하지 말자
당신의 밤은 우리의 낮보다 아름답다
흔히 아시아 최고의 야경을 품은 도시를 꼽으라면 홍콩을 얘기한다. 그도 그럴 듯이 하늘을 찌를듯한 마천루들이 밀집되어 있는 홍콩 센트럴 쪽 풍경은 가히 압권이다. 구룡반도에서 바라보는 모습도 빅토리아 피크에서 내려다보는 모습도 하늘 아래 이렇게 휘황찬란한 곳이 또 있으랴 싶다.
하지만 이제 홍콩은 '아시아 최고의 야경'이라는 왕좌를 내어줄 위기에 처해있다. 바로 중국 상하이의 약진 때문이다. 처음 상하이 여행을 계획했을 때 야경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었다. 아니, 상하이 자체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저 프로젝트가 끝나고 지친 몸과 맘을 여행으로 달래고 싶었고 짧은 휴식기간 중 갈만한 곳이 많지 않았는데 비행시간 2시간 남짓한 거리의 상하이는 꽤나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하지만 상하이를 여행하며 막연히 생각했던 '중국'에 대한 편견이 깨지기 시작했고 더더군다나 홍콩만큼 어쩌면 홍콩보다 더 화려한 야경에 넋을 잃고 빠져들었고, 덕분에 여행 내내 상하이의 낮보다 밤 풍경을 더 즐겼던 기억이 난다. 놓쳐서는 안 될 상하이의 멋진 야경 포인트 몇 곳을 소개해본다.
상하이 야경의 꽃, 와이탄
가장 먼저 소개할 곳은 상하이 야경의 시작이자 꽃이라 할 수 있는 와이탄 지역이다. 이곳은 황푸강을 마주하고 있는 약 1.7km에 걸친 거리로 동양에서 보기 힘든 유럽풍 건물들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대부분 150년 전 조계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금융회사나 세관 혹은 호텔 건물들이 멋들어지게 들어서 있어 밤거리를 더욱 화려하게 밝힌다. 사진 몇 장으로 와이탄 야경을 소개해본다.
밤만 되면 와이탄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와이탄의 야경을 보기도 하고 건너편의 푸동 야경을 보기 위해서도 모여든다. 주말이 되면 말 그대로 인산인해. 낮에 볼 수 있던 고풍스러운 빌딩들이 적당한 어둠에 빛에 뒤섞인 채 아름답고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1900년대부터 와이탄을 지킨 터줏대감 HSBC 건물과 상하이 세관 건물은 한밤중에 와이탄을 가장 밝게 빛내는 별과 같은 건물이다. 낮에 보는 모습 역시 웅장하고 멋지다. 한자만 지우면 여기가 유럽인지 어딘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이며 야경의 무게감만 따진다면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야경처럼 남성다운 선 굵은 힘이 느껴질 정도의 모습이다.
이 두 건물은 낮에 보는 풍경도 웅장하고 멋지다. 참고로 내가 상하이에 갔을 땐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한국에서야 일상 생활중에 내리는 비는 달갑지 않지만(다만, 집에 있을 때 내리는 비는 좋다) 여행 가서 내리는 비는 전혀 번거롭거나 기분 상하지 않는다. 비가 오면 평소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와이탄에 갈 때 역시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덕분에 물이 고인 바닥에 투영된 고풍스러운 건물들의 모습이 훨씬 더 분위기 있는 풍경을 만들어주었다. 잠시 감상해보자. 와이탄의 야경.
홍콩은 이제 안녕, 푸동
상하이의 밤거리는 위험하지 않다. 막연히 상하이를 간다고 했을 때 중국이니까.. 밤거리는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상하이, 꽤나 큰 도시이며 늦은 밤까지 현지인과 관광객이 길거리에 끊이지 않아 자정만 넘기지 않는다면 큰 걱정 없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
사실 와이탄으로 걸어 나오면 와이탄이 제일 먼저 보이기보단 황푸강 건너편에 있는 푸동의 야경이 보인다. 정면에 높이 솟은 벽 때문에 아래쪽이 보이지 않아 푸동의 야경은 마치 영화 예고편 마냥 기대감을 북돋고 높다란 건물 위로 적당히 낀 구름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면 온전한 푸동의 야경을 볼 수 있다. 동방명주는 푸동 야경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묘한 건물임이 틀림없다. 저 동방명주를 지우고 푸동의 야경을 본다면 흔하디 흔한 도심 야경에 지나지 않았을 터다. 그런데 동방명주 하나로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스카이라인이 완성된다.
아직 홍콩의 센트럴 쪽만큼 높은 건물이 있지도 않고 오밀조밀한 느낌도 없지만 머지않아 센트럴과 대등한 혹은 더 우월하고 개성 넘치는 야경을 보여줄 것이 틀림없다.
여기가 진짜 상하이, 난징동루 야경
좀 더 현실적인 야경이 보고 싶다면 난징동루로 가자. 와이탄에서 도보로 15분 정도면 도착하는 이곳은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하이의 명동' 이란다. 그야말로 각종 볼거리와 먹거리와 쇼핑거리로 가득 찬 이 거리는 구닥다리 가게에서부터 세련되고 고급진 가게까지 온갖 것들이 잡다하게 모여있는 곳이다.
낮이든 밤이든 난징동루 보행자 거리에는 먹으러 온 사람, 쇼핑하러 온 사람, 사람 구경하러 온 사람, 그냥 걸으러 온 사람 등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전부 모여있어 왠지 여기만 오면 상하이 사람들을 전부 다 볼 수 있는 느낌이 드는 복작거리는 거리다.
사실 와이탄이나 푸동은 과거 혹은 현대의 잘 꾸며놓은 상품 같은 느낌이 든다면 난징동루는 그냥 일상 속 야경이다.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고 할까.. 게다가 난징동루에서는 중국 특유의 분위기가 짙게 풍긴다. 와이탄이 주황색 빛이고 푸동이 니켈 빛이면 난징동루는 빨갛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중국을 상징하는 색이 여기저기 베어 나온다. 난징동루의 야경도 사진으로 구경해보자
상하이의 미래는 이곳에서, 푸동
중국에 대한 혹은 상하이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면, 여기 푸동에서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중국의 미래 혹은 상하이의 미래는 여기 푸동에 있다고 할 정도로 뭔가 미래지향적이고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푸동이었다. 그리고 밤엔 더욱 날카롭고 차가운 이성의 야경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그중 SWFC 전망대로 향하는 도중 담은 푸동의 야경을 공유해본다. 상하이의 진주라 불리는 동방명주는 밤에 더욱 아름다웠고, 동방명주 주변을 감싸고 있는 빌딩들과 마천루 3 대장의 모습은 현대적인 도시 상하이를 상징한다.
푸동 야경의 하이라이트는 마천루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다. 어느 도시를 가든 그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푸동지구의 3 대장 SWFC, 진마오, 상하이 타워 중 한 곳의 전망대에서 푸동을 내려다보고 싶었다. 여행을 갔던 시점에선 상하이 타워가 공사 중이어서 완공된 빌딩 중 가장 높은 곳인 SWFC 전망대를 향해본다.
SWFC 전망대는 우리나라 서울의 롯데타워 전망대 마냥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곳이라 올라가면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하다. 동방명주 마냥 전망대가 층층마다 있는데 가장 꼭대기층으로 올라가면 푸동지구에 있는 마천루인 동방명주나 진마오 타워를 발 밑에 두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저 멀리 성냥갑처럼 작게 보이는 와이탄 지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 잘 담기진 않겠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상하이 거주지역의 야경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SWFC 빌딩에서 내려다보는 동방명주나 와이탄도 예쁘지만 진마오 타워의 헤드 부분이 정말 별처럼 보석처럼 밝게 빛나서 좋다. SWFC 빌딩을 내려오면 다시 한번 푸동의 야경이 보인다. 동방명주를 필두로 앞뒤 모습을 담아본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도시 그 자체의 야경이다.
개인적으로 푸동의 야경은 잘 패키징 된 첨단 IT 제품을 보는 느낌이다.
제대로 된 중국의 야경, 예원
유럽풍의 와이탄, 미래를 엿볼 수 있는 푸동, 현대적 느낌의 난징동루를 보았다면 뭔가 아쉬울 수 있다. 그래도 중국에 왔는데, 상하이에 왔는데 이 곳만의 특징이 담긴 야경은 없을까? 그렇다면 예원으로 가보자. 상하이 예원은 중국의 옛 정원으로 명나라 시절 개인 정원으로 만들기 시작해서 완공에만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원래는 나이 드신 부모님을 위해 만들었으나 완공이 되었을 때는 이미 돌아가셨고 본인도 그 후 몇 년 살지 못하고 병으로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담이지만 1942년 일본군에 의해 심하게 손상되었으나 1960년대 상하이 시 정부에 의해 보수되었고 이듬해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고 한다.
옛 정원을 기대하고 간 곳이지만 조용하고 평화롭기보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주변엔 각종 기념품 가게와 프랜차이즈 등 온갖 상업시설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느낌이 난다. 다만, 예원 안쪽으로 갈수록 기대했던 조용한 정원 분위기가 나긴 한다.
예원의 야경이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는 기와의 곡선을 따라 드리워진 주황색 등일 것이다. 곡선의 뻗침이 한밤중에도 도드라져 보인다. 사람에 따라 난잡해 보이거나 정신사 나워 보일 수도 있지만 예원의 화려한 야경도 한 번 감상해보자. 그리고 중간의 구곡교는 꼭 놓치지 말자.
일상의 야경을 즐기자, 상하이 밤 풍경
이름난 관광지가 아니어도 그 도시의 밤거리를 거니는 건 언제든 좋다. 타이캉루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푸동의 SWFC 빌딩 전망대로 가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다가, 해가 지기 까진 시간이 좀 남아 시내를 걸어 다녔다. 이름난 관광지는 아니지만 난징동루보다도 덜 꾸며진 날 것의 일상이 그대로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잠시 상하이 일상의 밤거리를 즐겨보자.
상하이의 야경을 소개하며 다시 한 번 느낀 것은.. 정말 머잖아 상하이가 홍콩과는 또 다른 매력의 아시아 야경의 강자로 떠오르겠다는 생각과.. 낮에 한 번 오고 밤에 또 한 번 와야 온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낮에도 매력 있고 밤에는 더욱 매력 있는 상하이. 상하이의 밤은 진득하니 붉은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