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핑시선 여행 #2 스펀
작가의 말
참으로 오랜만에 브런치에 접속합니다..마지막으로 작성한 글이 아이슬란드 소개글이었는데 (https://brunch.co.kr/@lainydays/41) 작성일자가 6월 20일로 되어 있으니 실로 3개월 만이네요. 그간 바쁜 일이 있어 정신없이 지냈는데 이제야 여유를 조금 되찾고 오랜만에 글쓰기 버튼을 누릅니다.
오늘 전할 여행기는 대만 핑시선 여행 두 번째 이야기로, 천등 날리기로 유명한 마을 스펀입니다. 지난 5월에 이미 첫 번째 이야기인 고양이 천국 허우통에 관한 글을 올렸는데, 한 번쯤 복습 삼아 재미 삼아 첫 번째 이야기를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오랜만에 시작해보죠//
https://brunch.co.kr/@lainydays/36
고양이 마을 허우통에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린 뒤 한 시간에 한 대 찾아오는 핑시선 열차를 타고 천등으로 유명한 스펀으로 향했다. 몇십 분을 열차를 타고 가니 드디어 스펀에 도착했는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사람과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열차가 플랫폼으로 진입했다.
스펀의 첫 이미지는 다소 우중충함이었다. 허우통에서 변한 흐린 날씨는 스펀까지 이어졌고 기온은 여전히 높고 습도는 계속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도시를 떠나 시골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정취와 맑은 공기 덕분에 날씨에 대한 생각을 이내 곧 잊을 수 있었다.
스펀이라는 영화의 주연이 천등이라면 신 스틸러급 조연은 바로 이 철길이 아닐까. 천등을 날리는 곳이 바로 이 철길 위니까. 상행선과 하행선이 연이어 있는 철길은 그 폭이 상당히 좁다.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운행되는 상/하행선 열차는 자칫 마주 오기라도 하면 승객은 오금이 저릴지도 모르겠다.
열차 간격뿐 아니라 플랫폼 위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도 상당히 좁다. 사람이 빼곡히 들어찰 때면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이 작은 마을이 '천등 날리기' 하나 덕분에 이렇게 먹고 사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니 이야기와 콘텐츠의 개발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껴진다.
열차가 내린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스펀의 명물인 닭날개 볶음밥을 파는 가게가 보였다. 고민이 왜 필요한가! 바로 가게 앞으로 직행!! 하지만 이미 내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그 줄 때문에 통행이 불가할 정도로.. 이 정도로 인기 있는 음식은 꼭 한 번 먹어봐야 하지 않을까?!
가게 앞으로 가니 친절하게 한국어 설명도 있었다. 여러 가지 맛이 있지만 무난하게 즐기고 싶으면 볶음밥 맛을 선택하자. 머나먼 타국에 와서 먹거리로 도전을 해야 할 때가 있고 실패를 피해야 할 때가 있는데 지금은 바로 후자의 경우다. 날도 흐리고 사람에 치이고 컨디션 안 좋을 때 먹을 거로 도전하여 실패하고 싶지가 않다(...)
닭날개 볶음밥은 맨 아래 부분이 조금 애매하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고는 굉장히 맛있다. 닭날개 살도 두툼하고 안에 들어있는 볶음밥도 맛있다. 다만, 다 먹고 난 뒤가 조금 문제인데 이것을 버릴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서 계속 가방 겉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했다. 참고로, 닭날개 볶음밥 외에도 즐길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은 다양하다.
닭날개 볶음밥을 맛있게 먹고 우연히 건너편을 바라보았는데 무언가 무시무시한 다리가 보였다. 현수교처럼 다리 기둥 없이 케이블로 버티고 있는 폭이 좁은 흔들 다리로 보인다. 저런 건 꼭 건너봐야 한다.
기찻길의 중반 정도에 이르자 서서히 천등 날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기찻길 양 옆으로는 각양각색의 천등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자세히 보면 그 내용물은 비슷비슷하지만. 한국 여행객들에게 유명한 가게는 가용 엄마 천등이다. 한국어로 친절히 설명을 들을 수 있고 뭔가 한국인이 운영하니까 믿고 가보고 싶어 지는 곳이다.
열차는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스펀에 진입하기 때문에 그 한 시간 동안은 자유롭게 천등을 날릴 수 있다. 누군가가 소중한 바람을 적은 천등이 하늘 높이 향하고 있다. 하늘을 날지 못하는 인간은 하늘로 솟구치는 것들을 예부터 참 많이도 만들어냈다. 연이 되었든 천등이 되었든 열기구가 되었든...하늘로 향하는 행위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불가능의 극복, 이루지 못하는 것을 향한 의지 등등..
소원을 적어 하늘로 날리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무언가 절대적 존재가 높은 곳에 있다는 가정이 전제되어야 할 테고 그 절대적 존재를 향해 내 소원을 최대한 가까이 보낸다는 의미일까..사실 절대적 존재가 하늘 위에 있다는 보장도 없고 믿을 이유도 없지만 이런 종류의 행위는 마치 고민거리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그런 상황과 비슷한 느낌이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보장도 없고 냉소적으로 판단하면 그럴 리 만무하지만, 내 소원을 천등에 적고 하늘 위로 날리는 행위 자체가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 때문에 나는 스펀의 기찻길을 행복의 길이라 부르고 싶다. 이곳에서 천등을 날리는 사람 치고 표정이 어두운 사람 하나 없다. 각자의 소원을 적는 것 자체로 행복한 것이고 이미 이룬 것 마냥 즐겁다.
누군가는 이 거리의 상업화를 비판한다. 사람들의 소원에는 관심이 없고 천등을 팔기에만 급급하고 호객행위도 심하다고..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다들 이렇게나 좋아하는걸..천등이 하늘을 향하면 천등에 소원에 적은 이나 그렇지 않은 이나 자연스레 하늘을 바라본다. 살면서 얼마나 자주 하늘을 바라보았던가..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우리는 대개 앞만 보며 살아가지 않는가..
마을 한켠에는 아까 보았던 무시무시한 다리가 있다. 이름은 정안적교.. 대만을 여행하면서 이런 종류의 다리를 종종 보게 되는데 대만 사람들이 이렇게 생긴 다리를 좋아하는건가..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아무튼 계곡 사이를 이어주는 이 다리는 아까 말했듯 케이블로 상판을 지지해주는 현수교 구조로 되어 있다. 덕분에 다리 중앙으로 갈수록 많이 흔들리는데 이게 이런 다리를 걷는 재미 아닐까!
시간이 남아 마을을 조금 더 둘러보기로 한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을로 몰려든다. 기찻길은 이미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스펀의 천등은 4가지 색상이 있는데 색상 별로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고 한다.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더 많이 몰리기 시작했다. 밤에 천등 날리는 모습을 보면 더욱 멋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핑시선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지우펀을 목전에 둔 상태라 날이 더욱 어두워지기 전에 이 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천등을 직접 날려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념이 될만한 게 뭐가 있을까 싶어서 가용엄마 천등 가게에 들어갔다. 이곳에는 대형 천등에서부터 사람 주먹보다 작은 크기의 천등 모형을 팔고 있었다. 역시 천등 별로 담고 있는 의미가 있어서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해주기 딱 좋았다.
사실 스펀은 딱 여기까지인 것 같다. 귀여운 핑시선이 지나가는 철길과, 닭날개 볶음밥, 그리고 철길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하늘을 가득 메운 천등. 마을이 굉장히 작아서 돌아다닐 곳도 많지 않고 이것저것 다 구경한다 해도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아까 건넌 다리 근처에는 택시정류장이 있다. 핑시선을 타고 지우펀을 갈 수도 있지만 시간 절약을 위해 택시를 타본다.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에게 행선지를 얘기하면 가격도 불러주고 택시도 불러준다. 우연히 탑승한 택시는 천장에서 디스플레이 장치가 내려오는 특이한 구조의 차였고, 기사님은 K-POP팬인지 아니면 한국인인 나를 알아봐서 그런지 소녀시대 콘서트 실황을 틀어주셨다. 오오..서비스 서비스
다음 행선지는 그 유명한 지우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 )
words by la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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