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그 결심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퇴사도 트렌드
지금 한국은 퇴사 열풍이 불고있다. 여기저기 퇴사와 관련된 책이며 글이며 강연이 줄을 잇고 있으며 이 곳 브런치에도 관련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직장생활을 하는 입장으로서 '퇴사'나 '이직'이란 단어를 보면 먼저 부러움이 솟아나지만 차분이 마음을 가라앉힌 뒤에는 '오죽하면..' 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간 우리나라는 유연하지 못한 고용환경 탓에 직장을 옮기는게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무슨 정신인진 모르겠지만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람들 머릿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당연히 퇴사나 이직은 흔한 경우가 아니었고, 주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매우 놀라며 '왜??' 라고 화들짝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어린 기억에 그런 철옹성 같던 개념이 깨져버린건 아마도 1998년 IMF때가 처음인 것 같았다. 입사만 하면 평생 다닐줄 알았던 직장에서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내 몰린 샐러리맨의 심정은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것 같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지금 퇴사나 이직은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어버렸다. 주변에서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왜??'라고 놀라기 보단 '잘했네' '아..그래?' '부럽다' 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하지만 여전히 퇴사나 이직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그런데 왜 요즘 이렇게나 퇴사가 열풍인걸까?
아마도 세대가 바뀌고 그에 따라 가치관에 변화가 온 탓이 크지 않을까. 요즘 회사를 다니는 젊은 20~30대 직장인들은 예전 세대들 만큼 참을성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런데 참을성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갑갑함이 싫어서, 갑질이 싫어서, 회사의 자아보단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 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발버둥치고 고민한 결과가 아닐까..
4년 전 나도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경험이 있다. 그 전까지 퇴사는 나와 상관없는 얘기라 생각했다. 다니던 회사에 매우 만족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다니고 싶었던 회사에서 하고 싶었던 업무를 하게 된 보기 드문 행운아이기도 했다.
나는 어릴때부터 자동차나 비행기 등 기계를 좋아했고 자연스레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자동차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우연히 참여한 통신사 인턴이 계기가 되어 지난 10년 간의 꿈과 4년간 배운 전공을 버리고 뜬금없이 통신사 마케팅 업무에 지원했다. 그리고 합격'해버렸다'
회사 생활이 다 그렇듯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고 내가 꿈꿔왔던 통신사 마케터로서의 삶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비슷한 일이라도 하고 있으니 난 다른 사람에 비하면 행운아지 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다독여왔다. 또한 내가 다니는 회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통신회사이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정적인 직장 중 하나이기도 했다.
업에 대한 흥미와 회사에 대한 로열티 그리고 직무에 대한 전문성 덕분에 무수히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회사를 끝까지 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운명의 여신은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 창업을 준비중인 회사에서 내게 제안을 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risk를 안고 가는 것도 고민이었고 업종 회사 직무 모두 전혀 생소한 것도 고민이었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답이 없자 나는 고민을 미루기로 했다. 서류와 면접 등 각 전형을 통과하면 그 때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으로.
그런데 어...어...어?? 하는 순간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고..팀에는 어떻게 말해야하지 고민하는 순간 벌써 본부장 및 팀장에게 통보가 갔다. 고민이고 뭐고 그냥 앞만 보고 달릴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나는 인생을 살면서 어느 정도는 별 생각 없이 운명에 맡기는 편인데. 이번 결정 역시 그랬던 것 같다. 흘러가는대로 자연스럽게.
모든 직장인의 꿈 중 하나인 사직서는 TV나 영화에서 보던 것 마냥 낭만적이진 않았다. 보안서를 쓰고 사유서도작성하고 각종 반납서류와 물품 등 번거로운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드디어 기다리단 퇴사 발령문서가 떴고 한 동안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봤다.
아..이제 진짜 회사를 나가는구나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게 눈치가 보여 사람들도 만나고 인사도 하며 슬슬 돌아다녔다. 아직도 난 앞으로도 난 이 회사에 계속 다닐 것 같은데 현실은 다음주면 신분증도 반납해서 출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던 기회는 준비가 되지 않은 나에게도 찾아왔다. 아니 사실은 준비할 생각도 없는 나에게 찾아온게 더 정확한 표현일까. 하지만 왠지 이 기회를 놓치면 내가 준비 되었을 때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제 기회의 등에는 올라탔고.어떻게 하느냐만 남아있다. 먼훗날 이 때를 되돌아봤을때 정말 잘 한 선택이라고 혼자 곱씹게 되길 바랬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여전히 4년 전 회사를 옮긴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지만 잠시 접어두고 생각해보면 그렇다. 이직한 뒤에도 앞만보고 쉬임없이 달린 것 같다. 서서히 불어닥치는 퇴사나 이직 열풍에도 흔들림없이 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업종과 업무를 하고 있지만 또 새로움에 책임감에 재미에 빠져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잠시 회사생활에 쉼표를 찍는 느낌이다. 준비가 되지 않는 나에게 찾아온 기회는 일생일대의 행운일 뿐이었고 이제는 준비를 해야 기회가 찾아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회사에 매몰되어 작은 일만 고민하던 내가 요즘은 좀 큰 고민을 하고 있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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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by lai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