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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Nov 03. 2019

왜 나한테만 시비야

현지인의 도움은 평생 기억이 남는다

몇 년 전이었다. 인천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 주안역 플랫폼에서 서울방향 열차를 기다렸다. 평일 낮이어서 그런지 출퇴근 시간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플랫폼이 굉장히 한가했다. 익숙한 장소에서 맞는 낯선 풍경. 같은 장소도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덕분에 여러 번 가본 여행지도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멀리서 보면 비슷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침이 점심이 저녁이 늦은 밤이 또 다르며, 아침에 와도 매일이 다르다. 이러다 보면 얼마나 그 여행지에 오래 머물러야 그 많은 모습을 전부 볼 수 있을까 라는 고민도 든다.


뜻하지 않은 한적함이 주는 공간적 여유 속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두리번거리는데 맞은편 플랫폼에서 어느 한 외국인 모자가 열차 안내도를 유심히 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거북목을 한 채 미간까지 찌푸려 가며 계속 뭔가를 훑는 것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쉽지 않은 모양새였다.


그 옆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던 8살 정도로 되어 보이는 아들은 그런 어머니의 초조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알 수 없는 언어로 어머니에게 말을 걸며 몸을 양 옆으로 흔들고 있다.


익숙한 장소에서 맞닥뜨린 낯선 풍경 정도에 어찌할 바를 몰라 두리번거린 나와는 달리 정황상 저 모자는 낯선 나라 낯선 언어 낯선 장소에 툭 하고 던져져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거다. 그들과 나는 같은 공간에 서 있지만 그 처지는 우리를 나눠놓은 플랫폼의 간극만큼 차이 났고 우리가 타고 가야 할 열차의 방향만큼이나 달랐다. 


'건너가서 도와줄까' 라며 오지랖 레이더를 발동하려는 순간 이제 막 지하에서 플랫폼으로 연결된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온 어느 한 대학생이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모자에게 접근한다. 대학생은 먼저 어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어머니는 대학생이 건넨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이다.


추측컨데 대학생은 영어로 물어봤을 것이고 어머니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 게 분명했다. '아.. 이러면 나가린데' 내가 오지랖을 발동했더라도 마찬가지로 별 다른 도움이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생각하려는 순간 어머니의 손을 잡고 몸만 베베 꼬을 뿐 지금껏 별 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던 아들이 대학생을 툭툭 치며 말을 건다.


그리고 대학생과 아들은 안내판을 보며 몇 번 말을 주고받더니 이내 대학생은 고개를 살짝 숙여 꾸벅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꼬마에겐 손인사를 한 뒤 그들에게서 멀어진다. 어머니는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학생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 아들의 손을 잡고 계단 쪽을 향해 내려가더니 이윽고 내가 있는 반대편 플랫폼으로 올라온다. 모자는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대략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서울행 열차를 기다렸고 어머니는 대견하다는 듯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제야 겨우, 우리를 벌려놓은 간극이 좁혀지고 같은 방향으로 가는 처지가 되었다.


이윽고 서울로 향하는 열차가 플랫폼 안으로 들어왔고 나와 외국인 모자는 열차 안으로 몸을 움직인다. 열차 안 역시 사람이 없어서 우리는 굉장히 많은 선택지를 들고 자리를 잡았다. 나와 그들은 대각선 반대방향에 앉았는데 서울로 향하는 내내 어머니는 긴장이 풀렸는지 계속 꾸벅꾸벅 졸았고 아들은 그 나이가 다 그렇듯 어머니 옆에서 쌩쌩한 체력을 과시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였다.


신도림에서 내려 신촌을 가야 했기에 모자의 내리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낯선 나라에 와서 서울 방향으로 가야 했지만 한글도 모르고 영어도 못했고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8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몹시 난처하고 힘든 상황이었을 거다. 그 순간을 구해준 한국의 이름 모를 대학생은 평생 기억에 남을까


신도림역에서 내려 2호선으로 갈아타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한적했던 주안역과 전철 안과는 달리 신도림역은 평일 낮에도 유동인구가 많아 북적였다. 익숙한 장소의 익숙한 풍경으로 회귀하며 모자를 다시 떠올려본다. 그리고 문득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나?'라는 생각에 닿는다.



몇 년 전 유럽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떠나 로마 떼르미니로 가기 위해 이탈리아 고속 열차인 유로스타에 탑승했다. 인기 노선이라 그런지 열차 안은 이탈리아 현지인들로 가득 찼다.


벗어날 수 없는 좁은 공간에 아시아인은 나 혼자이며 낯선 덩치 큰 이탈리아 현지인들이 가득 찬 상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자기들끼리 잔뜩 떠드는 환경은 그야말로 낯선 나라 낯선 언어 낯섦의 연속이었다. 그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고 긴장되며 때문에 잔뜩 움츠러드는 상황.


몇 겹의 편견과 선입견이 쌓인 (잘못된) 생각이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 만큼이나 말이 많고 시끄럽고 성량이 우렁찬 것 같다. (그래서 성악이 발달한 건가..) 덕분에 로마로 향하는 열차 안은 엄청나게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처음 타본 유로스타는 여태껏 타본 그 어떤 기차보다 깨끗하고 쾌적했다. 눈에 보이는 풍경과 귀로 들리는 소리만 적절히 조절한다면 그 외 나머지 촉감과 후각에 의존하는 감각은 이 열차 안이 상당히 쾌적하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출발 시각이 다가와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우리 이제 떠나요~'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유로스타는 '척' 하고 한 번 움직이더니 이내 그 커다란 몸집을 가볍게 밀어내기 시작했다. 선로 위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유로스타 안에서 창 밖을 보며 로마까지 어떻게 이 시끄러운 공간에서 버텨낼까를 고민하고 있는 찰나에 갑자기


'이 자리는 우리 자리야'라고 어떤 할머니 두 분이서 좌석 위에 달린 번호와 나를 번갈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영어로 따지신다. 안 그래도 상당한 난리 통에 두 할머님의 신경전에 '뭐야 이건 또' 라며 덩달아 날카로워진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낯선 언어 한가운데에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가 들리니 답답한 가운데 익숙한 안도감이 찾아온 정도랄까..


할머님들껜 미리 예약한 티켓과 좌석 번호를 보여드렸고 할머님들도 본인들의 티켓을 보시더니 '오 우리가 실수했구려 우린 다른 좌석이네' 라며 바로 사과하시고 맞은편 좌석에 앉으셨다. '뭐야.. 괜히 시비 거시고'라는 불편한 첫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소란스러운 열차 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창 밖을 보며 안간힘을 쓰려했다.


그런데 또다시 나의 노력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번엔 검표원이었다. 열차 끝에서부터 한 사람 한 사람 표를 대충대충 설렁설렁 대화를 나누며 검표하던 그분은 갑자기 나를 보고는 짐짓 표정과 태도를 바꿔 엄격한 검표원으로 탈바꿈한다.


이탈리아어로 뭐라 뭐라 말을 걸었는데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고 답답했던 검표원은 이내 바디 랭귀지로 내게 표를 달라고 손짓한다. 미리 꺼내 둔 유레일패스를 건네자 유심히 티켓을 보던 그는 다시 이탈리아어로 뭐라 뭐라 말하며 자꾸 본인이 들고 있던 검표기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한다.


열차 안에 있던 모든 이탈리아 인들이 각자 떠들다가 한 명 두 명 이쪽을 보기 시작하더니 이내 곧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된 순간이었다. 내가 구매한 유레일패스는 유로스타 역시 탑승 가능한 조건이었는데 영어로만 적혀 있던 탓인지 검표원 역시 알 길이 없던 상황인 것 같았다. 흡사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은 범죄자가 되어 모든 사람의 의심 어린 시선을 받는 느낌.


나도 답답하고 그도 답답하고 유로스타는 쌩쌩 달리고 있었는데 우리 둘만 고착된 상황에서 갑자기 적막을 깨고 내 앞에 앉아계신 할머님이 검표원에게서 내 티켓을 가져가시더니 앞면과 뒷면 그리고 티켓에 동봉된 설명서를 읽어보신다. 그리고 이윽고 검표원에게 이탈리아어로 뭐라 뭐라 얘기를 하시고 검표원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에게 (언제 시비를 걸었냐는 듯) 손으로 OK 사인을 보내며 쿨하게 다음 손님에게 가서 또 설렁설렁 검표를 하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탈리아어의 홍수 속에 추가 비용을 내야 하나 다음 역에서 내려야 하나 별 걱정을 다하던 순간 할머님들의 도움으로 그 위기를 모면했다. 동방예의지국 출신 청년의 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감사인사를 드렸다.


주안역에서 만났던 모자와는 달리 우리는 맞은편에 앉았기 때문에 감사인사 후 어색함을 깨고 싶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한 분은 미국 뉴욕에서 오셨고 다른 한 분은 프랑스에서 예술 사학을 공부하셨다고 한다.


이탈리아어도 알고 유로스타도 자주 타본 듯하고 로마도 자주 가신 것 같아서 '로마는 어떤가요?'라고 간단히 여쭈니 대답 대신 '최고지' 라며 엄지를 척 내미신다. 다만 로마는 커다란 도시이기 때문에 절대 걸어 다닐 수 없을 거라며 버스와 지하철을 탈 것을 권유하셨다. (하지만 난 걸어 다녔다..)


베네치아에서 로마로 향하는 동안 할머님들은 로마에 대한 본인들의 애정을 드러냈고 로마가 처음인 내게 가면 좋을만한 여행지를 추천해주셨다. 대화가 길어지고 할머님들에 대해 알아가며 첫인상과는 달리 친절하고 기푸 있는 모습에 오페라 하우스의 할머니가 떠올랐다.



오후 4시에 베네치아를 떠났는데 로마에는 밤 8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이렇게나 오래 걸릴 줄이야. 할머님들과의 대화는 나의 짧은 영어와 그분들의 피곤함 덕분에 중간중간 끊기다가 아예 멎었고, 떼르미니 역에 정차하고 짐을 챙겨 일어날 때 서로 '굿 럭'을 짧게 건네며 완벽히 종료되었다.


낯선 곳에서 어려움에 처해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를 구해주신 그분들을 평생 기억하고 싶어서 떼르미니 역에서 황망하게 이별을 하자마자 멀리 걸어가고 계신 두 분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이래서 여행사진은 중요하다. 남는 건 희미한 기억과 선명한 사진뿐)


요즘은 이런 상황에 처하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기술이 많이 좋아졌다지만(번역 어플, 인터넷 로밍) 예나 지금이나 주변인의 도움만큼 좋은 건 없다. 역시, 기술보단 사람..


이런 경험 때문인지 한국의 일상에서 그런 난처한 상황에 빠진 외국인이 보이면 평소보다 오지랖 레이더를 더욱 넓고 강력하게 가동해 손짓 발짓 다 동원해가며 도와주려 노력한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기술의 발달로 도움을 청하는 혹은 도움이 필요한 외국 여행객도 예전보단 많이 줄어든 느낌이지만.. 누군가를 도와줘서 그 사람이 문제에서 빠져나올 때의 그 뿌듯함을 무엇에 비교하랴.


떼르미니 역을 빠져나와 숙소였던 PAPA Gerlmano로 향했다. 역에서 가까워 금방 발견한 그곳엔 나이 지긋하신 카운터 직원이 어눌한 영어로 늦은 밤 찾아온 손님을 환한 미소와 함께 맞이해주셨다.


밤새 몸이 피곤한 야간열차를 타고 베네치아에 아침에 도착해 오전 오후 내내 물의 도시의 정취를 느끼고 유로스타를 타고 4시간 동안 이상한 검표원과 싸우고 할머님들의 도움을 받고 밤 8시를 훌쩍 넘겨 로마에 도착한 이상한 하루를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마무리한다. 나를 도와주셨던 할머니들을 다시 떠올리며.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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