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통해 떠올리는 기억
여행사진을 찍는 목적은 기억일까 기록일까
기억은 오래가지 못한다. 한 번 본 것을 짧게는 몇 초(나 같은 경우..) 길어야 몇 일에서 몇 개월 정도 기억할 뿐. 그리고 그마저도 내 머릿속에서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도 많을거다. 기억(력)을 오래 보존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반복적으로 보고 또 보는 것이라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외울때 계속 해서 보고 적고 하는게 바로 그 때문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여행에서 사진이라는 것이 차지하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사진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진은 그 자체만으로 여행의 기억을 연장시켜주는 도구가 될 뿐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임의로 조작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는 상당히 객관적인 기록으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또한 여행의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여행을 갈 때면 언제나 카메라를 챙긴다. 유명 여행지에서는 눈으로 그 무언가를 담는 사람들도 많지만 연신 카메라로 그것을 담는 사람들도 많다. 고가의 DSLR에서부터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핸드폰 카메라 까지 각양각색의 카메라에서 울리는 찰칵 소리로 가득찬다.
하지만 궁금하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 집에 돌아와서 몇 번이나 볼까? 나같은 경우 여행을 좋아하고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해서 2박 3일 여행만 다녀와도 메모리카드에 천 여 장의 사진이 담기지만 막상 어딘가에 업로드하는 몇 장의 사진을 제외하고는 다시 보지 않는 경우가 부기지수다.
그래도 그렇다 할지라도 그건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지금 이순간 내가 보고있는 것을 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행위 자체도 여행의 일부가 아닐까. 그리고 자칫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찰나의 장면들도 수 천 번의 셔터누름 중 한 번에 담길수만 있다면, 그래서 먼훗날 우연히 그 여행사진을 다시 보다가 '아..이 때 이랬었지?'라고 추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 사진은 왜 찍은거지?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캐리어를 정리하고 지친 몸을 씻는다. 그리고 그 다음엔 바로 카메라에 있는 메모리카드를 뽑아 PC에 꽂고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 사진을 추려낸다. 작은 뷰파인더 및 LCD 화면으로만 보며 '와 이사진은 진짜 멋질거야!!'라는 설레임으로 담은 사진을 큰 모니터로 볼때의 감동이란..
하지만 수천장의 사진 중에 살아남는? 사진은 혹은 어딘가에 업로드 되는 사진은 몇 장 되지 않는다. 1차적으로는 포커스가 맞지 않거나 얼핏 보기에 의미없어? 보이는 사진들을 바로 삭제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전체 여행사진 중 대략 30%는 사라진다. 그리고 더욱 신중하게 다시 한 번 사진을 살피며 이번에는 살릴만한 사진들을 선별한다. 이렇게 뽑힌 사진들은 어도비 프로그램으로 들어가 이쁘게 꾸며진 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등 어디론가 올라가서 그 매력을 뽐낸다.
의미없어 보이는 사진들을 삭제할땐 굉장히 과감하다. 느낌적인 느낌에 의존해 한 번 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삭제한다. 그런데, 정말 가끔은 분명 의미없는 사진이 맞는데 한 번에 삭제하기 보다는 이건 뭐지? 왜 찍은거지? 라는 의문을 들게하는 사진이 몇 개 있다. 예를 들면, 바로 이런 사진
마카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메모리카드 속 여행사진을 살펴보는데 과감하게 하나하나 삭제하다가 이 사진에서 잠시 마우스가 멈췄다. 정말 그냥 평범한 사진이다. 타이파 빌리지에 들렀을때 여러 상점이 가득한 골목길을 지나가다가 과자박스 위에 어떤 유명 연예인(으로 추측..)의 상반신 모형이 그윽한 눈빛으로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왜? 왜찍은거지? 도대체 왜? 내가 저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저 과자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잠시 망설였지만 나는 과감히 저 사진을 지웠다. 그리고 또 다시 이후에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었는데 얼마 내려가지 않아 또 다른 사진을 보고는 무릎을 탁 치고야 말았다. "아, 이래서 내가 이 사진을 찍었구나?" 라고. 다시 한 번 아래 사진을 보자
아..진짜 놀랐다. 아무생각없이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저~~멀리 가게 한쪽 구석에서 어떤 남자가 그윽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게 아닌가? 계속 다가가도 얼굴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던 그남자. '뭐야 이상해' 하면서 가까이 다가갔다가 그 자리에서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바로 아까 보았던 그 등신대 아닌가?!
첫번째 사진만 보면 절대로 떠올릴 수 없던 기억과 그 때의 감정이 이 사진을 보고나니 퐁퐁 샘솟듯 생각났다. 사람이 아닌 것에 깜짝 놀랐으며 스스로가 챙피했던 그리고 허무한 웃음이 터져나왔던 그 날의 기억과 감정들.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는 이유는 바로 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진이라는 기록을 통해 불완전한 내 머릿속에 있던 그 날의 추억과 감정 등을 기억이라는 매개로 꺼내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의미없는 사진은 없다. 아무리 생각없이 찍었다 할 지라도 그 순간에는 무언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혹은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카메라 셔터를 누른 것이고 돌아와서 왜 찍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뿐.
여담이지만..요즘엔 핸드폰 카메라 성능이 워낙 좋아지면서 예전처럼 여행갈 때 DSLR이나 렌즈 수 개를 챙겨가는 번거로움이 줄었다. 그리고 사진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본질인 여행을 놓치는 우를 범할수도 있고..
작품으로서 여행 사진은 DSLR이 필요하겠지만 추억과 감정을 다시 꺼낼 매개체로서의, 기록으로서의 사진은 핸드폰 카메라로도 충분한 것 같다.
words by lai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