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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Oct 21. 2019

빙하 타고 내려올만 했다

아이슬란드 요쿨살론



금강산도 식후경


빙하 워킹투어는 전체 투어 시간이 대략 3시간이며 그중 한 시간 이상을 단단한 빙하 위에서 불편한 신발을 신고 힘겹게 걸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풍경 자체는 매우 아름답지만 투어가 끝나고 나면 체력적으로 힘들 수 있다. 힘들 땐 먹어서 기운을 챙겨야 한다. 


다음 행선지는 요쿨살롱이었지만 일단 경치 좋은 곳에 잠시 차를 세우고 테이블 위에 고국의 맛을 펼쳐놓는다. 숙소에서 뜨겁게 끓인 물을 스타벅스 대형 텀블러에 넣었는데 반나절이 지나도록 그 온기가 유지되어 충분히 컵라면을 끓일 수 있었다. (스타벅스 텀블러 PPL 아닙니다)


사실 아이슬란드 짐을 쌀 때 라면을 많이 챙기지 않았는데 이게 제일 아쉬웠던 부분이다. 딱히 주변에 음식점이 없을 때 가볍게 한 끼 해결하기에 가장 좋은 게 (컵) 라면이다. 아이슬란드 일주를 계획하고 있으시다면.. 캐리어에 라면 넣을 공간은 충분히 확보하자.



링로드를 따라 운전하다 보면 이런 쉼터를 종종 마주친다. 우리나라로 치면 졸음쉼터 정도 될 것 같다. 그 흔한 표지판도 안내판도 없다. 자연을 최대한 해치지 않고 이용한 모습이다. 이런 쉼터가 나타나면 속도를 줄이고 잠시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자. 쉼터 주변엔 멋진 풍경이 항상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



넘실넘실 산을 넘고 흘러내린 빙하가 보인다. 사진이 장엄한 풍경을 다 못 담아냈을 뿐 실제 눈으로 마주하면 숨마어 앗아갈 정도로 압도적인 풍경이다. 수 천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걸작. 상투적 표현이지만 가장 적절하다. 요쿨살론에 점점 가까워지나 보다.



요쿨살론은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로, 유럽 최대 규모의 빙하인 바트나요 쿨이 녹아 흘러내려 만들어진 빙하 라군이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며 장엄하고 웅장하고 거대하고 아름답고 멋진(!!) 풍경은 많이 봤지만 '신기하다'라고 할 만한 풍경은 몇 없었는데 뒤 이어 나올, 지옥 열기를 내뿜는 '흐베리르'와 더불어 유이하게 그런 감정을 느꼈던 곳이 바로 요쿨살론이다. 


구글 지도로 보면 마치 왕관을 쓴 램프의 요정이 엄지 척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담인데 헬싱키에서 아이슬란드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창밖을 봤는데 거대한 빙하지대가 보여 별생각 없이 사진에 담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요쿨살론이었다. 신기..



구글 지도와 상공에서 실제로 찍은 모습이 똑 닮았다. 대동여지도도 신기한데 구글맵도 신기하다. 하늘에서나 볼 수 있는 형상을 어떻게 저렇게 실제와 똑같이 그려낼 수 있을까. 비행기는 (그때는 몰랐지만) 요쿨살론을 지나쳐 레이캬비크 공항으로 향한다. 그러면서 보여주는 유럽 최대의 빙하, 바트나요 쿨(아래)의 장대한 모습. 갈색 브라우니 케이크 위에 설탕 파우더를 뿌린 모습 같다.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자.



요쿨살론은 그냥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도 그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느끼기 충분 하지만 직접 그 속에 뛰어들어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요쿨살론 보트 투어를 이용하면 수륙 양용차를 타고 빙하가 녹은 물이 만들어낸 호수 위를 둥둥 떠다니며 빙하 라군을 바로 눈 앞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차에서 내려 요쿨살론에 다가갈수록 무언가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요쿨살론인데 이걸 직접 내 눈으로 본다니. 저~~ 멀리 맑은 호수 위 영롱한 푸른빛을 띠며 둥둥 떠다니는 라군들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물가에 옹기종기 모여 눈 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빙하를 구경하고 있다. 어떻게 색이 저렇게 푸르고 영롱할 수 있을까?


때마침 내 옆을 지나가는 수륙양용차. 지금 막 투어를 끝내고 돌아온 차다. 사람들이 하나둘 내리고 있다. 수륙양용차는 에버랜드 사파리(로스트 월드)에서 두 번이나 타봐서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차원이 다르다.



예약한 시간이 되어 수륙양용차에 올라탄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수륙양용차. 얌전히 모여 앉은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다. 땅 위를 달릴 때 무척 조심스럽게 운전한다. 이렇게 느리게 가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안전상의 이유겠지? 운전석이 굉장히 독특하다. 배 조종석 같기도 하고 자동차 운전석 같기도 하고..



천천히 물가로 접근하던 배는 뭍에서 물로 바뀌는 구간에서 살짝 덜컹하더니 이내 곧 붕~하는 느낌과 함께 물 위데 동동 떠버렸다. 그리고 펼쳐지는 평화로운 풍경들. 어디선가 참치나 돌고래 떼가 첨벙첨벙 나타날 것만 같다. 실제로 보트 투어 중에 고개를 빼꼼 내민 물개를 만나기도 했다. 사진에 담지 못했을 뿐.



배는 어느 쪽에 앉아도 빙하 라군을 잘 볼 수 있다. 배 아래로는 시리도록 푸르고 청명한 물이 흐른다. 여느 호수에서 보던 것과는 그 느낌이 다르다. 이건 진짜 수 천 만년 된 물이니까. 


거대한 빙하가 눈앞에 둥둥 떠다닌다. 처음에는 배가 움직여서 착각한 건가?라고 생각했지만 보트가 잠시 멈춘 사이에도 슬금슬금 움직였다. 맑고 투명하게 빛나는 빙하는 마치 보석 같았다. 


운전기사님은 현란한 솜씨를 발휘하며 거대한 빙하에 최대한 가깝게 붙여준다. 손이 닿을듯한 거리에, 빙하를 뚝 떼어 고대로 먹어도 되겠다고 생각한 순간, 



아니나 다를까 늠름하고 씩씩하게 생긴 가이드 누님이 자기 얼굴보다 더 큰 빙하 덩어리를 어디서 공수해와서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내 조각조각 나누어 관광객들에게 나눠준다. 그야말로 수 천 년짜리 얼음. 냉동실에 얼린 2시간짜리 얼음만 먹다가 이런 황송할 상황이라니.


그런데 나에겐 신기한 저 수천 년의 시간이 담긴 얼음덩어리가 가이드 누님에겐 그저 매일 보는 평범한 얼음 덩어리인가 보다. 수천 년의 역사를 저렇게 아무 곳에나 막 올려놓는다. 



보트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말 그대로 집채만 한 빙하도 마주친다. 가히 공룡 한 마리가(둘리) 빙하를 타고 둥둥 떠내려와도 가라앉지 않을 만하다. 저 밑에는 얼마나 엄청난 규모의 빙하가 숨겨져 있을까? 바트나요 쿨에서 떨어져 나온 빙하는 요쿨살론을 떠돌다가 다시 바다로 향한다. 안녕, 빙하..


보트 투어는 대략 한 시간 정도 진행된다. 배가 다시 육지로 향하면 가이드 누님이 엄격한 목소리로 승객들에게 착석을 명한다. 모두 긴장된 표정으로 꾸깃꾸깃 앉아있다. 



보트 위에서의 한 시간이 좀 아쉬울 순 있지만 이곳은 육지에서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보트는 운행 특성상 라군이 많지 않은 곳만 골라가지만 육지에서는 엄청난 수의 라군이 떠다니는 걸 볼 수 있다. 물가에서 위를 바라보면 높은 언덕에 올라 라군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관찰 중인 사람들이 보인다.


전망이 좋아 보여서 따라 올라가 본다. 맑은 호수와 그 위를 떠다니는 거대한 빙하 라군,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만년설. 물가에 서 있는 사람과 비교해보면 빙하의 크기가 얼추 체감될 것이다. 



빙하 녹은 물이 바다와 만나는 곳. 새삼 이렇게 유명한 관광지라면 우리나라였으면 유흥시설 위락시설 숙소 뭐 이것저것 다 들어섰을 텐데 아이슬란드의 관광지는 웬만하면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둔다. 사람의 손을 최대한 덜 타게 하려는 것일까. 여기저기 악마의 손길이 많이 뻗쳤을 텐데 개발의 유혹 등등 그걸 다 뿌리쳤네..


투명한 빙하는 빛을 투과시켜 푸르게 빛난다. 날씨가 이상스레 더워서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녹아 쓰러질 것 같아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하단 좌) 내가 볼 땐 꿋꿋하게 버티더니 잠시 한 눈 파는 사이 쓰러져 물에 녹아버렸다. 



내가 한 눈을 판 이유는 어딘가의 물살에 떠밀려온 저 빙하 덩어리(하단 우). 수면 위로 올라온 부분이 작아서 크기가 얼마 안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땅에 가까이 다가와서 손으로 끌어보니 생각보다 거대한 얼음덩어리(좌상단 사람 발과 크기 비교)가 올라왔다. 역시 빙산의 일각!!



잠시 똑하고 떼어내어 햇빛에 비추어본다. 맑은 수정보석 같다. 아이슬란드에 도착하고 나서 내내 이상고온 현상이 벌어졌다. 지난번 빙하투어를 갔을 때도 너무 빠르게 녹아 아예 커다란 하천으로 범람하던 장면을 보았는데 여기서도 빠르게 녹아 잠시만 한 눈 팔면 사라져 버리는 빙하를 보며 지구의 건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여기는 요쿨살론 인포센터. 이 곳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만든? 구조물. 간단한 음료와 간식, 그리고 기념품 등을 판매 중이다. 이 안에는 화장실도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며.. 요쿨살론에서 매우 가까운 또 다른 빙하지대, 프론살론으로 가본다. 개인적으로는 요쿨살론보다 훨씬 더 맘에 들었다. 이유는 다음 여행 글에서 확인해보자 :D




중간에 안 나가시고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글&사진 전부 by la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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