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지구촌이 코로나 시대로 접어든 요즘, 이탈리아에선 귀촌이 유행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하면 으레 생각나는 것들, 즉 명품과 요식업과 화장품 같은 업종들이 다 멈춘 까닭이다. 돈 나올 곳은 없고, 분위기는 갈수록 긴장되기만 하고. 도시의 삶이 보일 수 있는 황량함의 극한에 다다른 청년들은 그간 거들떠도 안 보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동네로 눈과 발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족했다. 도시에선 도저히 구할 수 없던 안정적인 소득과 분명한 성취의 기쁨을 찾았노라 말이다.
먼 나라 이탈리아의 이야기가 한눈에 쏙 들어온 건, 나 또한 그들과 비슷한 전환의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코로나는 불안감을 몰고 왔지만, 다른 불안감을 소거해버리기도 했다. 감염될 수 있단 불안함은 모두에게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멈출 수밖에 없던 이 시간, 누군가는 끊임없이 경쟁하고 성공해야 한단 불안감으로부터 모종의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다. 흔들리는 게 자연스러운 줄로만 알았으나, 멈춰 설 수도 있는 것임을 알게 된 사람들. 그렇게 멈춰선 순간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의 바운더리가 혼자 숨 쉬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좁아져 있음을 발견하게 됐다.
새로이 큰 숨을 들이켜 호흡하는 시절. 코로나 사태 이후, 나는 취미발레를 시작했다. 취업 준비에 집중해야 한단 압박감, 끊일 듯 간간이 이어지는 공채들 속에 ‘나중에 한 번 해 보자’며 미뤄두기만 했던 일 중 하나였다. 직장에 다니는 한 친구는 교대로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물론 윗분들은 이틀에 한 번 출근할 때마다 의심스런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신다만, 그 눈길에서 멀어지는 만큼 오히려 일은 더 잘 되던데?’ 하고 친구가 말했다. 뭐든 일단 해보면 되긴 되더라. 막연한 훗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던 발레를 홧김에라도 시작한 덕에 나는 건강을 얻었다. 고려조차 해보지 않았던 재택근무 시대를 열게 된 회사, 그 속에서 친구는 전에 없던 일의 효능감을 느껴볼 수 있었다. '하면 된다'는 불가능한 일을 성취해보이란 뜻일 때보다, 하면 뭐든 될 수 있단 미완의 자유로움을 담아낼 때 더 멋진 말이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눌려 있던 내 숨을 쉬게 되고 보니, 옆 사람의 숨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볼 여력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온갖 쓴 소리를 다 받아내고, 다시 비슷하게 좁은 자리로 옮겨 더 일을 해나가야 했던 사람들. 온 사회가 자신을 지키는 데 한창 예민할 때조차도 모두의 발이 돼 달리느라 코로나에 노출돼야 했던 사람들이 우리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신문지면 위에도, 친구와 나의 대화 속에도, 인터넷 세상에서도 그들의 모습을 향한 질문이 전보다 더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왜, 그들이 왜?’하고 말이다. 사실 병은, 위기는, 언제나 가장 낮은 곳으로 세차게 흐른다는 걸 우리라고 몰랐을 리 없다. 다만 우리는 새 숨을 들이켠 덕에 촘촘히 이웃을 옥죄고 있는 권력의 고리를 보다 명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뿐이다.
이제껏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거스르기엔 두렵고, 따라가기엔 버거운 에스컬레이터 같은 거였다. 그 세상이 잠깐 멈춰 섰을 때, 우린 한 걸음 물러난 세상의 면면을 응시할 수 있게 됐다. 그건 어느새 우리 삶의 필수 조건처럼 돼버린 돈, 명예, 안정, 인정과 같은 여럿의 목표일 수도, 혹은 자연스레 합리화되기 시작한 불공평의 논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린 경험하지 않았나. 아직 오지 않은 것들도, 이미 존재하던 시스템도 우리를 위기에서부터 구해내진 못했다.
그러므로 코로나 시대를 살아본 우리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장 우선해야 할 건 기술이나 보건의료에 대한 민감함이 아닌 것 같다. 언택트 산업의 흥망 같은 것보다 더 근본적인 태도의 문제, 오늘 발견한 이 모순들을 끊임없이 추적하며 반문해보려는 민감함부터 기르는 게 먼저 아닐까.자꾸 이런 걸 되뇌어보게 된다.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세상은 더 나은 것을 고민하고 실천해볼 수 없는가. 우리는 잘 숨 쉬고 있나, 내 옆의 그들은 무사한가, 사회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나. 기술이 아닌 사람을 기준으로. 어쩌면 우리의 구원은 각자의 빠른 걸음보다 여럿의 함께하는 걸음에 달려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