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그래서 미희 씨를 그려보고 싶었어요"

---작은 기록을 남기는 사람의 고백---

by 월화수 엔 Jane

동굴 같던 날들

한동안 마음이 어려운 날들이 있었습니다.

누구를 만나고 싶지도 않고, 마음을 열기 어려워서

혼자만의 동굴 안에 고개를 처박은 채 지냈던 시간들.

거울 속 내 모습조차 지우고 싶었던 그런 날들 말이에요.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지만, 저는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전화벨 소리도, 문 밖의 발걸음 소리도 모두 멀게만 들렸어요.



우울의 가장자리에서

그런 저를 기다려준 분들이 계셨습니다.

요란하게 소리치며 손을 잡아당겨 끄집어내려 하지 않았어요.

제 우울의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서 있다가, 제가 필요한 것들을 전해주고는

다시 한없이 기다려주는 분들이었습니다.


햇살이 좋은 날이면 "산책 가자"고 전화해 주시고,

좋은 책을 만나면 "함께 나누고 싶었다"며 집 앞에 놔두고 가시기도 했어요.

"너를 위해 늘 기도해"라는 한 줄 카톡을 보내주시거나,

"커피 향이 너무 좋다"며 함께 가고 싶은 커피숍으로 데려가 주신 분들도 계셨죠.



한 발, 한 발

그분들의 조용하고 작은 친절들이 저를 한 발, 한 발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은 현과 문 앞에 놓인 책 한 권이,

어느 날은 문득 울린 안부 전화 한 통이,

또 어느 날은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아있어 준 시간이

저에게는 작은 계단이 되어주었어요.

그렇게 몇 걸음씩 떼다 보니,

어느 순간 "아, 이제 살 만하다"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미희 씨가 태어난 이유

그런 분들의 감사한 마음을 담은 사람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제게 생강차를 건네주던 분, 아무 조건 없이 기다려주던 분,

작은 선물을 남기고 사라지던 분들...

그분들의 모습이 하나로 모여 미희 씨가 되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며 숫자를 세고, 귤 한 알을 건네며, 화분에게 아침 인사를 하는 미희 씨.

그 모든 습관들이 실은 누군가를 향한 조용한 기도였던 것처럼요.



서툰 기록

변변치 않은 글솜씨로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를 생각하고 이야기를 써나간다는 게

글쓰기 초보인 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매주 새로운 이웃들과 미희 씨를 그려내는 과정을 통해,

또 마음이 어려운 누군가에게 한 줄이라도 다가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되었어요.

정화의 꽃집 앞을 지나며, 지훈의 새벽 편의점에서, 택배 기사의 아침 인사 속에서...

저는 제가 받았던 따뜻함을 조금씩 나누어 놓으려 했습니다.



빗물 같은 존재들

미희 씨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단순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스며드는 빗물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

갈라진 땅에 스며들어 보이지 않게 생명을 키우는 빗물처럼,

우리는 서로의 하루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다는 것 말이에요.

특별한 영웅이 되지 않아도, 극적인 변화를 만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누군가의 계단 한 칸이 되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를 살고 있는 거니까요.



지금도 충분히

"당신,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거예요."

미희 씨가 가장 자주 건네는 이 말이, 제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습니다.

무너지지 않고 하루를 견뎌내는 것, 작은 친절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기억하는 것,

때로는 그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다시, 안녕

이제 미희 씨의 이야기를 마무리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끝이라기보다는, 시작에 가까운 마음입니다.

미희 씨 같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오늘도 조용히 누군가의 하루를 밝혀주고 있을 테니까요.

혹시 이 이야기를 읽는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미희 씨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건네는 작은 미소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동굴 같은 하루에 작은 창문이 되어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오늘도, 내일도.

미희 씨, 참 유쾌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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