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정돈되지 않은 마음을 엉성하게 매달고

by 레이크킴 Lake Kim

아무도 타지 않은 기차에 제일 먼저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아직 누구의 숨도 채워지지 않은 객차는 마치 잘 정돈된 호텔만큼이나 쾌적하다. 무궁화호에서는 느끼기 힘든 정적과 상쾌함을 잠시나마 홀로 누린다


영주에서는 유독 혼자 조용한 곳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아직까지도 충분할 만큼. 그 시간 속에서 특별한 깨달음이나 안식을 얻은 건 아니다. 그러나 혼자 세상에 던져졌을 때 갈팡질팡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내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 그 시간은 나에게 든든한 용기와 믿음이 되었다.


기차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차고 기장의 안내방송이 나온 후 기차가 출발했다. 한 시간 반 정도 달렸을 때부터 밖은 점점 컴컴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 밖을 바라보려 해도 유리창에 비친 기차 내부만 보일 정도로 완벽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 거울이 된 유리창으로 보였고 그 사람을 지켜보는 내가 내 옆에 있었다. 똑같은 세상이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진 시간, 나는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같은 사람이 보여서 그냥 내 얼굴만 멍 하니 바라보다가 이어폰을 꼽고 잠들어 버렸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 쯤이면 직감적으로 눈꺼풀이 떠지리라 믿으며 알람은 맞춰놓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머무는 곳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짧게 느껴졌다. 음악을 몇 곡 듣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대전이라니. 벌써 여행이 끝났다니. 벌써 내일이 가까워지다니... 정돈되지 않은 마음을 엉성하게 매달고 밤길을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갔다.


집은 여전히 평온했고 늘어놓고 간 물건들도 그대로 있었다. 분명 무언가가 달라지기엔 너무 짧은 1박2일이었다. 하지만 그 기억을 곱씹는 일은 평생에 걸쳐 일어날 것이기에, 비록 무언가를 바라고 떠난 여행은 아니었지만, 이 짧은 여행은 내 인생에 어떠한 형태로든 흔적을 남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그 흔적에 비추어 세상을 바라보고 비슷한 흔적을 가진 사람들과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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