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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크킴 Lake Kim Apr 30. 2019

여수밤바다, 그 짙은 음악

여수밤바다, 청춘, 그리움



일요일의 저녁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TV 앞에 앉아 볼 만한 프로그램을 찾기 위해 하염없이 리모컨만 꾹꾹 누를 시간이었지만 그날따라 우리 가족은 몸이 근질근질해서 바람을 쐬러 드라이브를 갔다. 사람도 없고 차도 달리지 않는 시간에 우리는 가로등이 밝혀준 하얀 차선을 따라 도시의 외곽으로 달렸다. 타이어가 지면을 구르는 소리, 자동차의 엔진 소리, 사사로운 대화 소리로 각종 소리는 충분했지만 우리에겐 드라이빙 뮤직, 음악이 필요했다.
 <‘여수밤바다’라는 노래 때문에 여수에 사람들이 많이 간다며. 그 노래 좀 틀어봐. 들어보자.>
엄마가 말했다. 나는 <아니, 아직도 이 노래를 안 들어봤단 말이야?> 하며 바로 음원사이트에 들어가 노래를 틀었다.


나는 마음에 드는 노래가 있으면 그 가수의 모든 음악을 재생목록에 추가해 듣는다. 그런데 버스커버스커의 여수밤바다가 처음 나왔던 2012년엔 그렇지 않았는지, 버스커버스커의 다른 곡들은 분명 좋아하고 있었지만 이 노래를 처음 듣게 된 건 음원사이트를 통해서가 아니라 노래방에서였다. 대학교 동아리 선배와 갔던 노래방에서 선배는 그날따라 외롭고 슬픈 느낌의 음악을 선곡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여수밤바다’였다. 선배는 다리를 꼬고 앉아 한 손으로 마이크를 쥐고 가사를 읊었다. 반복되는 가사와 조금은 긴 간주가 끼어있는 곡이었지만 우리는 그 어느 구간도 점프하지 않았다. 선배의 목소리는 장범준의 담백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가늘고 느끼했지만 버스커버스커의 여느 곡처럼 ‘여수밤바다’ 역시 곡 자체에서 묻어나는 청춘의 향이 짙은 곡이어서 어느 목소리로 부르든 이 음악이 퍼지는 모든 상황은 그 즉시 청춘의 한 장면이 되는 묘한 힘이 있었다. 알록달록한 노래방 화면이 어둠을 비추고, 여수밤바다가 흐르고, 그렇게 내 청춘의 일부가 대구의 어느 좁은 동전노래방 안에서 새겨졌다.



노래방에서 여수밤바다를 들은 날부터 나는 여수의 밤바다를 꿈꿨다. 잔잔한 여수의 밤바다를 둘러 난 길을 걸으며 밤공기를 들이마시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한적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곳, 밤이면 사색에 잠긴 사람들이 저마다의 내면을 마주하는 곳, 그런 곳이 여수일 것만 같았다. 여수밤바다라는 곡에 꽤 오래 빠져 있었고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여수의 모습을 그리다보니 낯선 도시였던 여수는 내 마음 속에서는 이미 익숙하고 아련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느 것도 알지 못하는 채로 나는 언젠가 여수에 갈 날만을 기다리며 꿈을 꾸듯 음악을 들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여수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모든 기억 속의 여름은 유독 덥지만, 그 해의 여름은 정말 더웠다. 여수에 도착해 기차역에서 나오자 마자 그늘로 도망가고 싶었을 뿐더러, 기차역 바로 앞에 있는 관광 안내소까지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온 몸의 체온이 순식간에 올라갔다. 원래 같았으면 관광안내소에서 여수의 볼거리를 소개받은 뒤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계획이었지만, 여수의 시티투어버스가 주요 관광지를 모두 지나기도 하고 관광안내소 맞은 편에서 탈 수 있어서 바로 투어버스에 올라탔다. 푹푹 찌는 여름날 새로운 도시를 관광하는 데에는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투어버스가 제격이었다. 중간중간 흥미로워 보이는 곳에 내려 짚라인도 타고 아쿠아리움도 보고 이순신광장도 구경했다. 밤에는 바닷가를 걷다가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듣다가 사진을 찍곤 했다. 알차고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그러나 내가 꿈꾸던 ‘여수밤바다’의 여수는 아니었다. 여수는 사색을 즐기기에는 상업시설이 많아 시끌벅적한 관광도시였고 여수의 밤바다는 생각보다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버스커버스커의 여수밤바다를 듣고 여수를 찾은 게 뻔한 내 또래의 사람들과 예상과는 다른 여수의 모습에 제각기 다른 표정을 짓는 그들의 얼굴이 보였다. 분명 좋은 도시지만 ‘여수밤바다’의 여수는 아닌 도시, 그게 나의 여수에 대한 감상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여수밤바다를 들으니 여수에 대한 환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너무 짙은 이 음악은 내가 실제로 보았던 여수의 감상을 지워버리고 예전에 품었던 환상을 다시 칠하려 한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 속에는 노래방에서 새긴 청춘과, 여수를 그리던 날들과, 여수로 떠난 발걸음이 떠오른다. 밤을 가로지르는 어느 자동차 안에서 여수는 다시 내게 찾아왔다. 어쩌면 가까운 시일 내에 여수의 밤바다를 보러 갈지도 모르겠다.




#여수밤바다 #버스커버스커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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