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속도보다 책 사는 속도가 빠른 것에 관하여

by Lakoon

1. 책을 산다. 읽는다. 책 속에 다른 책들이 등장한다. 또 산다.


책은 자가증식을 하는 듯하다. 한 권만 읽었을 뿐인데, 읽고 나면 읽고 싶은 책이 몇 권으로 불어난다. 그 책중에서 고르고 골라 몇 권의 책을 사고 나면, 책장은 어느새 읽은 책 보다 읽을 책들로 가득 채워진다.


2. 읽지 않은 책은 늘 읽은 책 보다 관심이 쏠린다. 더욱이 사지 않은 책은 사놓은 책 보다 더 관심이 쏠린다. 그렇기 때문에 책 읽는 속도보다 책을 구입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당장 읽고 싶어도 사고, 당장 읽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산다. 결국에 책은 사게 된다.


그런데 책을 구입하는 욕구에 대해서 단순히 소비욕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책이라는 것은 독특해서 베스트셀러라고 모두 좋은 책은 아니고, 좋은 책이라고 해서 많이 알려지는 것도 아니다. 몇 년 전 서점의 서가에서 우연히 꽤나 흥미롭고 좋은 책을 만났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좋았던 내용만큼이나 뻔한, 혹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다시 꽂아두고 나왔다. 그런데 이제와서는 간간히 그 책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그 내용이 궁금해 서점에 갈 때마다 그 책의 행방을 찾아보는 것이다. 물론 작가의 이름도 책의 제목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은 관심이 생겼을 때 구입해야 한다. 만약 그 순간을 놓치게 되면, 다시 그 책을 만나기란 해변에서 바늘 찾기처럼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내 책장에 꽂혀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 뜻에서 독서에는 비독서도 포함된다.


3. 독서는 독서와 비독서로 구성된다. 독서는 읽은 책이고, 비독서는 읽지 않은 책이다. 비독서는 독서에 비해 조금 더 복잡하다. 일련의 무지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메타인지의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독서는 메타인지를 잘 나타낸다. 책장에 꽂혀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 '아 저 책은 아직 읽지 않은 책이지.'라고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메타인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은 자꾸 늘어난다. 하지만 무한정 늘어나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읽지 않은 책이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지, 그저 사두기만 하는 것은 메타인지가 아니다. 그러면 어디까지 비독서의 한계가 되는지 테스트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만약 같은 책을 두 번 산 적이 있다면, 그것이 비독서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증거다. 책장에 아무리 몇천 권 몇만 권이 꽂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나지 않고, 산 책을 또 사게 된다면 그것은 그저 마구잡이로 잡동사니를 모으는 수집광에 불과하다. 수집가는 자신이 수집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end. 오늘은 서점에 들러 몇 년 전 스친 책을 구입해야겠다. 만약 찾을 수 있다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달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