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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정해져 있다

영화 <테넷>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미국, 2020, 2시간 30분

by Lak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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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흐름을 뒤집는 인버전을 이용하여 세상을 파멸시키려는 사토르를 막는 임무를 맡은 작전의 주도자는 인버전에 대해 알고 있는 닐과 함께 목숨을 건 사투를 시작한다. 작전팀은 인버전의 원리를 터득하여 사토르의 계획을 무효화시켜 제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Intro. 미래는 정해져 있다. 현재는 정해진 미래에 의한 결과이며, 미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원인이다.


1. 개봉 당시 테넷을 봤을 때는 도저히 어떤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영상을 뒤로 되돌리기 한 듯한 액션씬 만이 기억에 남았던 그런 영화였다. 그러다 문득 얼마 전 테넷이 다시 생각났다. 놀란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의도가 뭔지 궁금해졌다.


2. 타임 워프에 관한 영화는 꽤나 많았다. 그런데 유독 테넷만이 난해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다른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시간을 이동한다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의 흐름과 일치하는 행동을 한다. 즉, 시간의 시점만 변할 뿐 인물들의 활동과 사건은 실제 시적적 흐름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테넷에서는 인버전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음원을 거꾸로 틀어놓은 것처럼, 말의 처음과 끝이 뒤집어지고, 인물들은 거꾸로 행동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흐름과 혼재돼 있어 어떤 게 원인이고 결과인지, 한 번에 알아채기 어려운 이유다.


3. 결론적으로 말하면,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처럼 미래가 과거가 되고, 과거는 미래가 되는 전형적인 타임 워프적인 내용이다. 미래에 인류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과거로 타임 워프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즉, 미래는 과거를 바꾸기 위해 시간에 개입하고, 과거는 미래에 의해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물리적 법칙 '과거는 정해진 것이고, 미래는 현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는 통념을 뒤집는다.


4.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은 이렇다.


'현재는 미래에 대한 결과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분명히 미래는 현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미래에 대해 무지한 관계로 오히려 '미래는 정해져 있고, 현재는 정해진 미래에 의해 순응하는 결과'라고 생각해도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미래에 유명한 작가가 된다면, 나는 지금 작가가 되기 위한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어야 한다. 또 내가 늙어서도 건강한 몸을 가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오늘 건강을 위한 어떠한 행동들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5. 어떻게 보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미래는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일 뿐이다. 현재는 원인이자 결과이다. 과거에 대한 원인이고, 미래에 대한 결과이다. 과거도 미래도 현재보다 중요하지 않다. 과거는 정해진 것이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일 수 있다.


우리는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의 모든 세부 사항을 이해할 수도 없고, 기억할 수도 없다. 오히려 과거 역시 변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듯이, 과거의 어떤 사건도 당시에는 비극이었을지언정 먼 훗날에는 오히려 그 사건으로 인해 좋은 현재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건은 그대로이지만 의미는 변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주식이나 경제 전망을 예로 들 수도 있다. 주식을 해보거나 경제지를 구독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갖은 전망이 난무한다. 올해는 경제 호황이라느니, 경제가 최악이라느니 말들이 많다. 그러나 그 사건의 정체가 드러난 후에는 모두 예견됐던 결과라고 한 입으로 외친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누구도 그 사건을 정확히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는 나중에 뒤돌아 봤을 때, 모든 것이 예견된 퍼즐처럼 딱 맞아떨어지지만, 그런 이유라면 우리의 미래 역시 퍼즐처럼 딱 맞아떨어져야 한다. 모두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주식으로 모두가 부자가 돼야 하고, 모든 경제는 위기를 미리 예견해서 극복함으로 늘 호황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도 모르고 미래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른다. 오직 현재의 선택만 할 수 있다.


6. 성경의 가장 마지막 책은 요한계시록이다. 이 책은 사도 요한이 세상의 마지막 때를 미리 보고 적은 계시록 편지인데, 미래를 예언한 책이지만 문체는 독특하게도 과거형으로 서술되었다. 즉, 미래의 일이지만 사도 요한이 이미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서술한 것이다. 성경 역시 미래가 정해져 있다고 증언한다.


end.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말이 현재의 의미를 희석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듯, 미래 역시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사람은 과거와 미래의 사건을 바꿀 수 없지만 그 의미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고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현재에 충실해야 하고 올바르게 선택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더 나은 미래, 희망적인 미래를 꿈꾼다면, 현재는 그 희망적 미래의 결과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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