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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가 없지 않나, 사과 같은 건?

영화 <세계의 주인> 2025

by Lakoon

*스포 주의*


1. 담임 선생님은 사과농사를 짓는 부모님이 보내주셨다며 학생들에게 사과를 나눠준다.

한 명당 두 개씩, 자리마다 새빨갛게 익어 살짝 반짝거리는 사과가 놓여있다. 주인이(주인공)는 사과를 먹지 않고 친구들에게 나눠준다.

"사과는 호불호 없는 과일 아냐? 사과를 안 먹는다고?" 친구는 의아해한다.


2. 사과

내 고향에서는 사과가 특산물이다. 그래서 사과는 어려서부터 흔한 과일이었고, 찾아먹는 과일이라기보다 먹을 게 없으면 먹는 것에 가깝다. 취향적으로 호불호를 정하자면 호다.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과일로 꼽기는 애매한 면이 있다.


사과 싫어하는 사람은 못 봤던 것 같다. 그만큼 무난한 과일이니까. 그런데 주인이는 사과를 싫어한다. 그런 주인이에게 사람들은 "왜 사과가 싫냐"며 집요하게 물어본다. 모두가 좋아하는 일반적인 취향을 거부하는 주인이는 어쩌면 이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상과 이상의 기준은 어떻게 정한 걸까. 친구들은 보통의 사람이라면 사과를 싫어하지 않는다며 주인이가 사과받기를 강요한다. 누가 정상인 걸까.


3. 사과, 그리고 사과하는 것


사실 사과를 주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용서를 해주는 건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사과를 강요하고, 용서도 강요한다. 가해자는 쉽게 사과를 건네고, 피해자는 쉽게 그 사과를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한다.

"사과했는데 받아줘야지." "사과하면 용서해 주어야 멋있는 사람이야."

우리는 너무 쉽게 사과받기를 강요하는 게 아닐까.


용서는 어렵다. 용서는 능동적인 행위다. 용서는 고귀하다. 강요할만한 따위가 아니다.


4. 마술


주인이의 동생은 마술이 취미다. 하지만 어설프다. 손에 있던 공이 사라지는 마술을 시도하지만 팔뚝에서 공이 삐져나오고, 커다란 고민 상자를 사라지게 했지만 바닥에 떨어트려 관객에게 들킨다.


마술은 속임수다. 이것을 마술사도 알고, 관객도 안다. 마술사는 감쪽같이 속이고, 관객은 감쪽같이 속아주는 게 마술이다. 서로 속이는 것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마술을 좋아한다. 마술은 비밀을 알아내려 애쓰는 것보다 응원해 주고 바라보는 것으로 더 풍성해진다.


마술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사라지는 마술, 나타나는 마술, 다른 무엇인가로 변하는 마술 등등. 주인이의 동생은 사실 어설픈 마술사가 아니다. 지팡이가 손수건으로 변하는 마술은 완벽하게 해내기도 한다. 하지만 유독 사라지는 마술만은 늘 실패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사라지는 마술을 시도한다. 마치 세상 사람들의 고민과 상처를 없애려는 것처럼.


5.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흔적은 꽃을 시들게 하지 못한다. 적절한 환경과 영양분을 주면 꽃은 상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새싹이 돋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ps. 그래도 상처는 아프다. 그리고 경험해보지 않으면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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