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철학의 밤 산책 – 한 그루의 밤 ep.16
언젠가부터 내 하루를 '무용한 것'으로 자주 판단하게 된다.
성과가 없는 문장, 누군가에게도 닿지 않을 감정, 아무 결과도 남기지 않는 한낮의 멍한 순간들.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급해진다. 지금 이 시간, 이 감정, 이 일이 과연 나에게 어떤 ‘쓸모’가 있는가.
자꾸 그런 질문을 하게 된다.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을 ‘쓸모’라는 기준으로 측정한다.
이 일이 수익으로 이어졌는가, 이 말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었는가,
이 시간이 결과로 환산될 수 있는가.
익숙한 듯한 이 질문들은 어느샌가 내 일상에 스며들어,
내 감정과 생각을 하나씩 효율이라는 잣대로 잘라내고 있었다.
하지만, 문득 나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혹시 지금 이 ‘쓸모없어 보이는 시간들’이야말로
내가 나로서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꽃을 바라보는 일,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는 일,
의미 없는 문장을 반복해서 쓰는 일.
그 모든 ‘무용함’ 속에서 나는 비로소 숨을 쉰다.
프랑스 철학자 시몽 바일은 “진정한 아름다움은 목적을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항상 효율적이거나 즉각적이지 않다.
그것은 쓸모에서 벗어난 감정이며,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다.
그저 거기 있기만 해도 좋은, 어떤 것.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한, 침묵 속의 무언가.
어린 시절 나는 종이접기를 좋아했다.
색종이를 자르고 접으며 혼자만의 구조물을 만드는 시간.
어른이 된 지금 돌아보면 아무 소득도 없는 놀이였지만,
그 시간 안에서 나는 세상의 복잡함을 잠시 접어둘 수 있었다.
그건 예술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자신에게조차 자주 말한다.
“이 감정은 별 의미 없어.”
“이 말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 거야.”
“이건 너무 비효율적이야.”
그러나 가끔은, 그 무가치해 보이는 말들이
우리 안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다.
정확한 문장이 되지 못한 기억 하나가,
오랫동안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것을
나는 여러 번 겪어왔다.
삶이 무용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가장 깊은 질문을 시작하게 된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그리고 이 살아있음의 감각은 무엇인가.
그 질문은 어느 하나도 ‘쓸모’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더 절실하고, 아름답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는 전혀 의미 없어 보일 일을 한다.
아무런 목적 없이 문장을 쓰고,
내 안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조용히 지켜본다.
그 시간에 차라리 돈을 벌라는 말,
다른 일을 하라는 조언.
그 모든 것들을 들으며도 나는 이 자리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 무용한 순간 안에서
나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아무 역할도 하지 않고,
아무 결론도 남기지 않는 이 고요함이
내 안의 인간성을 가장 단단하게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무용함은 무기력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대로 존재할 수 있음’에 대한 조용한 선언이다.
나는 그 선언을, 오늘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