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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늘 나쁜 사랑에 끌릴까

문학과 철학의 밤 산책 – 한 그루의 밤 ep.17

by lala

감정의 패턴에 갇힌 당신께


왜일까요.

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아프게 할 것 같은 사람에게 끌리는 걸까요.

그 사랑이 끝내 저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자꾸 그 방향으로 걸어가게 될까요.

어쩌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익숙함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 캐서린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히스클리프입니다. 그는 나 자신보다 나에게 더 가깝습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애정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아의 붕괴이며, 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으로만 연결되는 사랑에 대한 무의식적 진술처럼 느껴집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서로를 놓지 못한 채, 끝내 서로를 파괴하고 맙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끊어내지 못합니다.

이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왜 우리는, 그런 비슷한 감정의 늪에 자꾸 빠지게 되는 걸까요.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를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린 시절 겪은 충격이나 상처가 무의식에 남아,

성인이 된 후에도 유사한 상황을 반복하게 만든다는 이론입니다.

즉, 우리는 과거에 채워지지 않았던 사랑을 되찾기 위해,

그와 닮은 사람을 통해 회복을 시도하는지도 모릅니다.


심리학자 앨리스 밀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자신을 사랑해줄 수 없는 사람에게 끌립니다. 그 사람을 변화시켜 사랑을 얻음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회복하려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끌리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기억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조건부로만 주어졌던 애정.

충분히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자리.

그 모든 것이 감정의 패턴으로 남아, 사랑의 형태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때로 더 뜨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면, 나는 괜찮은 사람일 거야.”

그 위험한 믿음 속에서 사랑은 중독처럼 반복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처의 복제입니다.

그 감정은 치유가 아니라, 반복입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위장을 통해, 다시 그 시절의 고통으로 돌아갑니다.


『폭풍의 언덕』에서 히스클리프는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무너집니다.

캐서린은 죽음을 택하고 말죠.

하지만 우리는, 그들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먼저 필요한 것은 인식입니다.

지금 내가 반복하고 있는 감정의 패턴을 들여다보는 일.

그리고 그 감정이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오래된 슬픔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다음은 거리두기입니다.

익숙함이 진실은 아니며, 강렬함이 반드시 진심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나를 다시 상처 속으로 되돌리는 관계라면, 감정의 강도와는 무관하게 떠나야 합니다.

마지막은 재구성입니다.

이제는 내가 주체가 되어, 나의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가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랑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이상 아프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익숙한 상처에게 작별을 고하셔도 괜찮습니다.

만약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면,

이번에는 나를 해치지 않는 사람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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